[피플Q] 정진영 “8년만의 속편…‘코미디 진화’ 증명하고 싶었다”

입력 2011-01-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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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과 다시 손을 잡고 황산벌 전투 8년 후의 이야기를 그린 ‘평양성’에 출연한 정진영. 그는 김유신을 다시 맡은 것에 대해 “선을 긋고 판단하는 사전 작업이 중요했다”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털어놨다.

■ 신라 장수 김유신이 돌아왔다

흥행작 ‘황산벌’ 후속 부담 있었지만
이준익 감독 믿고 네번째 호흡 선택

노회해진 김유신, 그리고 통일전쟁
치열한 전술만큼 다극화된 스토리
개봉 가까워 올수록 긴장감 강해져

내 배우 인생에,
연기가 쉬워질 날이 올 수 있을까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속편은 감독도, 배우도 적잖은 부담을 준다. 전편과의 어쩔 수 없는 비교, 그리고 그에 대한 관객의 냉정한 평가 때문이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후속편 출연을 결정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진영(47)은 2003년 ‘황산벌’에 이어 8년 만에 후속편 ‘평양성’에 출연했다. 그는 “시간만 흐른 게 아니라 이야기와 코미디도 진화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진영은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과 다시 손잡고 황산벌 전투 8년 후의 이야기를 ‘평양성’에 담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정진영이 맡은 인물은 김유신 장군이다.

“산신령 같은 외모에 얼핏 치매에 걸린 듯 보이지만 실은 약간의 쇼를 통해 간계를 벌이는 노장군”이라고 역할을 소개한 정진영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해설자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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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서 노련함과 패기를 함께 지녔던 김유신이 ‘평양성’에서는 노쇠하고 노망기 있는 모습 뒤에 치밀한 계략을 숨긴 70대 노인으로 등장한다.



# “캐릭터와 이야기, 양극화 아닌 다극화된 영화”

한 번 연기한 인물을 다시 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정진영은 “이미 했던 역이라 선을 긋고 판단하는 사전 작업이 중요했다”며 “전편보다 편안해진 느낌이길 원했다”고 말했다.

‘평양성’은 백제와 통일한 신라가 고구려를 손에 넣기 위해 당나라와 힘을 합쳐 평양성을 공격하는 게 큰 줄거리다. 영화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벌이는 치열한 자존심 싸움, 그것을 이용해 고구려를 점령하려는 신라의 또 다른 전술이 얽혀 있다.

“선·악의 대결로 정리되지 않는, 다극화된 영화”라는 게 정진영의 설명이다.

“‘황산벌’이 계백과 김유신이 싸움이었다면 ‘평양성’은 인물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어요.”

정진영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확신을 준 건 연출자인 이준익 감독이다.

“기획단계 때 이준익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우리의 말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데 믿음을 가졌어요. 흥행 영화의 후속편이란 점도 잘 알려져 있다는 인지도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잖아요.”

정진영과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부터 ‘즐거운 인생’, ‘왕의 남자’, ‘님은 먼 곳에’까지 네 편의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 배우로 만났다.

“익숙한 감독과의 작업은 장, 단점이 분명해요. 대화가 쉬운 면도 있지만 반대로 ‘알아서 하겠지’란 마음에 느슨해질 때도 있어요. 이준익 감독과도 ‘이제 떨어져야지’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하하.”


# “대중에게 숨길 일이라면 아예 하지 말아야죠”

정진영에 따르면 ‘평양성’ 주요 출연진의 평균 연령은 42살에서 43살.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등 다른 연기자들도 정진영과 마찬가지로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영화를 시작했다.

“서로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예요. 전쟁 장면을 찍을 때도 한 쪽에서는 활 쏘고 대포 쏘는데 카메라 밖에서는 윷놀이 하며 놀았어요. 왁자지껄하게 찍었고 그만큼 유쾌했습니다. 자신감이라면 오만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찍은 영화에요.”

정진영은 ‘평양성’을 찍은 지난해 가을, MBC 드라마 ‘동이’도 같이 촬영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장르는 다르지만 ‘겹치기 출연’을 했다.

“드라마는 자극이 있죠. 즉각적인 시청자와의 싸움이고 밤샘 촬영을 하면서도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고요. 그동안 사극에서 극적인 캐릭터를 주로 했지만 현대극도 해볼 생각입니다. 설 단막극 ‘영도다리를 건너다’를 찍었는데 천연 같은 예쁜 이야기가 나왔어요.”

정진영은 홍대 앞에 작은 공부방을 갖고 있다. 소속사가 없는 그에게 그곳은 사무실이자 책을 읽는 서재다.

“집에 있으면 한 없이 늘어져 공부방을 마련했다”는 그는 “배우란 직업이 얼굴을 드러내고 남의 시선을 받다보면 스스로를 올리기도 하는데 그냥 내가 사는 모습대로 살면 된다”고 했다.

“가끔 다른 배우를 만나면 자기를 알아보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해요. 저는 그와 달리 ‘내 친구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알아봐 주고 먼저 인사해주는 내 친구들이 많다고요. 사람들에게 숨길 일이라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해요.”

정진영은 ‘평양성’ 개봉을 앞두고 “의외로 긴장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관객의 선택이 이번만큼 긴장됐던 순간은 드물다는 설명이다.

“배우는 남을 이해하는 직업이잖아요. 자신이 납득이 되어야 연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연기가 쉬워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요즘엔 ‘배우는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재미가 있다’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평양성’이 개봉한 뒤 정진영이 도전할 다음 영화는 액션스릴러 ‘독종’이다. 공소시효가 지나기 직전의 미궁 속 사건을 추적하는 독한 형사 역. 4월부터 촬영을 시작하는 정진영은 “눈이 시뻘게진 독한 형사”라며 새 역할에도 기대를 드러냈다.


● 정진영은 누구?

연극배우였고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지만 연기자가 된 배우. 1964년생으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 무대서 활동하다 1997년 연출부로 참여했던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어 연기를 시작.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1998년 박신양·전도연 주연의 ‘약속’부터다. 박신양의 충직한 부하 엄기탁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매년 적어도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꾸준히 변신하는 부지런한 배우.

2001 년 코미디 ‘달마야 놀자’, 2003년 액션 ‘와일드 카드’ 등 사극과 코미디, 액션, 스릴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2005년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08년에는 드라마로 무대를 옮겨 KBS 2TV ‘바람의 나라’ 유리왕 역으로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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