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임상수는 모순덩어리”

입력 2012-05-04 15: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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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죽지 못해 드라마 두 편 찍고 있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대체!”

“임상수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니까.”

“천만해, 만만해! 임상수는 모순덩어리야. 내가 모든 걸 폭로해야지.”

“베드신? 그냥 아주 잠깐인데 너무 그 쪽으로 몰지 마!”

“이 나라는 나중에 다 벗고 다닐 건지, 왜 그리 운동을 해. 하하.”

“늙은 남자배우들이 ‘멜로 하고 싶다’는 말, 정말 듣기 싫어!”

‘달변’의 ‘달인’. 일말의 망설임 없이 쏟아내는 배우 윤여정의 말을 한정된 지면 안에 담는 일은 역부족이었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돈의 맛’(감독 임상수·제작 휨므빠말)을 들고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으로 향하는 배우 윤여정을 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 시간을 조금 넘긴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드라마 두 편을 찍고 있는 ‘살인 스케줄’부터 ‘돈의 맛’에서 경험한 베드신과 재벌의 이야기, 연출자이자 팬을 자청하는 임상수 감독을 향해 던지는 애정과 애증을 쉼 없이 꺼냈다.

단 하나의 답변도 자를 수 없는, 메시지 강한 말들이다.

KBS 2TV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MBC ‘더킹 투하츠’ 속 윤여정에게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혹은 세계 영화의 중심에 서는 당당한 60대 여배우의 ‘포스’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윤여정과의 인터뷰 전체를 한 마디도 자르지 않고 ‘일문일답’으로 공개한다.
(주의사항:‘스크롤의 압박’)

-영화 개봉과 칸 국제영화제 준비에 드라마 두 편까지.

“죽지 못해서 찍고 있어요.(한숨) 이 노구를 이끌고 촬영장에 울면서 다녔어. 칸에 간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자! 기운내자’ 하고 있지.”

-2년 전 ‘하녀’와 ‘하하하’로 칸에 갔는데, 두 번째라 좀 더 달라진 기분은?

“처음엔 ‘가나보다’ 했지. 지금은 기쁨이 두 배고. 20일 출발해서 27일까지 머물 생각인데 그 전에 ‘더킹’ 끝내야 하고, 막바지 촬영이 몰리니까 정신이 없잖아.”

-‘돈의 맛’은 재벌의 탐욕을 들추는 자극적인 이야기, 파격노출과 베드신도 있는데.

“임상수의 시나리오는 언제든 파격적이고, 어떤 사람에겐 ‘불편한 진실’이잖아. 꺼리는 배우도 있고 보는 사람 중에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감독의 세계이니까 난 상관없어. 다만 어떤 장면 하나가 걸려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어. ‘꼭 찍어야 해? 보는 사람도 불쾌하고 거부감도 들 수 있다’고 하니까 감독 왈, ‘그러라고 쓴 장면입니다’. 하여튼 임상수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니까.

‘와이 미? 왜 내가 해야 돼?’ 나는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인데? 임상수가 그러더라고. 사람들이 ‘뭐야 저거’ 하면서도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랄 거라고. 나는 임상수를 귀여워하는 노배우니까. 반론을 이야기했다가 받아들여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그가 막을 열고 막을 내리니까.

막장 드라마 출연할 때 이해 안 되는 경우는 많아도 임상수 작품에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 한 번 있었다. ‘바람난 가족’ 때 아이를 떨어트리는 그 장면. ‘너무 갑작스럽다’고 하니까 그때 임상수 왈, ‘우린 다 갑자기 죽죠’. 할 말이 없어.”

-2년 전 출연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돈의 맛’은 연장선상에 놓은 작품으로 이해된다. ‘하녀’ 때는 가정부였다가 지금은 재벌가 사모님인데. 혹시 신분상승의 쾌감이라도?

“내가 진짜 하녀였수, 내가 진짜 재벌이 됐수? 제작보고회 때 임상수가 그러대. ‘대체로 배우들은 하녀를 했다가 이번엔 부자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질문을 하는데 윤여정은 한 번도 묻지 않는다’고. 임상수의 말은 좀 생각해봐야 칭찬인지 아닌지 알아. 그건 칭찬이더라고.

나는 ‘하녀’ 때 그 역할을 했던 여자였고 이젠 다 잊었지. 지금은 ‘내가 재벌이라면’ 하는 기분으로 내 감성으로 연기를 하는 거고. 논리로 연기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언제든지 내 역할을 받았을 때 ‘윤여정이 이 여자라면’만 생각해.”

-‘돈의 맛’이 재벌에 대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나.

“재벌이라고 나쁘다는 건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이야. 아직 우린 정돈이 안 된 상태니까. 부자에 대해서. 재벌이 더 많은 도네이션을 해야 하고 페이백도 필요하고. 그래야 우리도 부자가 되고 싶어지지 않겠어요? 우린 늘 억울한 민족이잖아.”

-칸 국제영화제가 자꾸 임상수를 택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임상수의 팬이니까 그걸 나한테 묻는 건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바람난 가족’ 때 처음 임상수와 해보고 ‘참 솜씨가 좋다’ ‘아! 정말 영화를 잘 찍는다’ 싶긴 했지. 시나리오 때보다 나를 더 터치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니 나에게 묻는 건 새누리당끼리 이야기하라는 거야. 우스워.”

-젊은 비서를 연기한 김강우와의 베드신이 있는데.

“잠깐 나오는 건데. 나를 왜 불쾌감의 상징으로 해? 그래도 시나리오 읽으면서 이해했어. 내가 맡은 백금옥은 돈을 갖고 태어났고, 돈에 중독됐는지도 모르는 사람. 자본주의니깐 돈이 권력이잖아. 그녀가 해보지 못한 게 뭐가 있겠어? 돈이 만능인 시대인데. 그 여자가 그 아이(김강우)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잠깐, 순간, 자신의 파워 혹은 만행을 보여주려고 찍은 장면이니 중요하지 않아.”

-김강우를 평가한다면?

“참 많은 배우들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영화를 찍어요. 그런데 운동을 너무 하더라고. 이 나라는 좀 있으면 다들 벗고 다닐 건지. 하하. 강우는 계속 굶고 운동하나봐. 스태프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우리 남자배우는 계속 굶고 있는데 여배우는 계속 먹는다’고.

비서로 들어와서 돈에 놀라 어리 둥절하는 그 상황을 잘 표현한 것 같아.
며칠 전 기술시사회 때 가서 봤지. 그 장면이 어떻게 나왔는지 사전 검사 차원? 흠. 자를 수도 없어요, 그 장면. 단 한 장면이고 한 번에 찍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찍다가 영화로 오면, 다른 연기하며 카타르시스도 느끼지 않나.

“TV는 계속 나가고, 그러다가 끝나고. 그 뒤에 기자들이 본대로 느낀 대로 막 쓰잖아! TV는 시작만 하면 굴러가는 거잖아. ‘끝나라 끝나라’ 하면 딱 끝나고. 그런데 영화는 나 같은 늙은 배우가 하기 너무 힘들어. 인터뷰도 해야 하고 할 게 많아. 나 빨리 집에 가서 대본 외워야 하는데.”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더킹’에 동시 출연 중인데.

“어쩌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다녔어. ‘넝쿨당’은 보는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 작가가 잘 써요. 모든 캐릭터를 예쁘게 그리고, 흉한 사람이 없고. 어른들 대사도 참 잘 써. 인물에 ‘답게’ 대사를 써. 부끄럽지 않게 연기하고 있지.

‘더킹’은 이재규 감독을 정말 좋아해서 몇 번 같이 하려고 했는데 못 하다가 만났지. 내가 밤을 새고 촬영하면 이 감독이 너무 가슴 아파하니까. 자기 일에 미쳐있을 땐 남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는데 이재규 감독 보면 ‘쟤는 말라 죽지 않을까’ 싶어. 내 노구를 잊고 욕심을 내서 크게 후회하고 있지.”

-드라마 현장을 더 어렵게 하는 건 ‘쪽대본’에 있지 않나.

“큰 문제이긴 한데. 우린 세계에서 일주일에 그것도 통틀어 150분씩 드라마를 방송하는 유일무이한 나라에요. 편당 60분씩 하다가 어느 순간 70분이 되고 이제는 서로 더 늘리려고 싸우고 난리야. 영화 한 편 꼴인데 그걸 일주일에 소화해. 배우도, 감독도 다 해. 온 스태프가 얼마나 끔찍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거야. 그런데 화면은 대단해. 할리우드 영화 ‘찜 쪄 먹게’ 만들잖아. 그걸 해내는 민족이니 이만큼 발전을 했잖아.”

-‘넝쿨당’의 아들 유준상과 함께 칸에 가는데?

“그러게. 드라마에 유준상을 추천한 건 나에요. 쭉 후보가 있는데 준상이 좋겠다고 했지. 내가 촬영장에서 얼마나 걔 눈치를 보는데. 얼마나 내 건강을 챙기는지 몰라.”

-힘든데도 드라마를 계속하는 이유는.

“내 친구들은 다 고고한 교수님들이라 나를 보면 ‘얘! 너는…’ 하는데. 나는 그냥, 아마, 이 일이 나의 천직인가보다, 하는 상황이에요. 시스템은 내가 얘기해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돈의 맛’에서 남편인 백윤식과는?

“나이는 동갑인데 방송사 공채 기수는 나보다 어리죠. TV에서 한 번도 연기해 본 적 없는데 영화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어.”

-칸 레드카펫 의상은 골랐나.

“큰 아들이 브랜드 도나카란에서 일해요. 다행히 아들의 도움을 받았고. 유준상이랑 김남주가 고맙게도 어머니 드레스 골라 준다고 나와서 어제(1일) 같이 다녔어요. 하나를 골랐는데 그날 저녁에 홍상수 감독 만날 일이 있어서 사진 보여줬더니 한 마디 하더라고. ‘너무 길지 않아요?’ 흥….”

-이번에 칸에 가면 꼭 해보고 싶은 건?

“뭘 할 시간을 안 주니까. 2년 전엔 (전)도연이랑 어슬렁거리며 뒷골목 노천카페에 앉아서 낮부터 샴페인 세 병을 마셨던 기억도 나고. 밤마다 파티를 갔는데 하루는 심사위원장인 팀 버튼 감독이 나한테 와서 ‘하녀’ 재미있게 봤다고 하잖아. 그래서 난 임상수한테 아마 상 탈 것 같다고 말했지. 하하.”

-올해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가 모두 경쟁부문에서 상영된다. 수상 욕심은.

“칸은 감독의 영화제니까. 나야 이 나이에…. 우리 어릴 때 상상이나 했겠어? 시체스 국제영화제 2회 때 내가 ‘화녀’로 상을 받았는데 나는 못 갔지. 시체스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을 때이니까. 그 트로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때 우린 약소국가였고 찌들어 산 시대라서. 나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고 이제 부강한 나라가 됐잖아.

지난 번 칸에 갔을 때 파티에서 제니퍼 로페즈랑 그 남편을 봤는데. 어머, 나는 정말 놀랐어. 스타일도 그렇고 그 남편보다 (이)정재가 훨씬 훤칠하고 멋있어. 내가 정재더러 ‘얘! 너 저기 옆에 가서 서봐라. 네가 더 멋지다’고 했잖아. 하하.”

-60대 여배우로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나는 1947년생이야. 생각을 해보슈. 한국전쟁 때 세 살이었어. 피난 나가는 기억이 부분
부분 난다니까. 1960년대 외국에 나갈 때 심사대에 여권 내놓으면 입국할 때 여권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속까지 다 까서 살펴보고. 그러면 얼마나 사람이 작아지고 비참해지는데.

칸에서 아침을 먹는데 베트남 여배우가 다가와서 ‘TV에서 많아 봤다’고 사진을 같이 찍자는 거야. 내 옛날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팠어요. 위압감 같은 걸 느낄 거 아냐. 사진 여러 장 찍어도 되니 많이 찍으라고 했지.”

-‘투상수’ 임상수 대 홍상수를 각각 평가한다면.

“인간 내부, 내면의 본성을 표현하려는 점은 같아요. 표현하는 게 임상수식과 홍상수식이 다르지. 임상수는 시니컬하게, 많은 사람들이 ‘우린 저기까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잖아. 임상수의 대사는 세고, 비아냥 같고.

홍상수는 쉽게 풀지. 그래서 그렇게 영화에서 술을 마시나?(웃음) 홍상수는 우리가 들어도 철학적인 대사들을 그냥 쉽게 풀잖아. 굉장히 달라요. 둘 다 아직 더 발견해봐야 할 것 같아. 뭐, 둘 다 늘그막에 나를 아주 중히 여겨주는 감독이지.”

-임상수 감독과 계속 작업하는 이유는?

“불러주는 데가 없다오. 뭐가 들어와야 하지. 요즘에 안 건데,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때 내가 연기한 식모 명자는 그 시대에 없던 캐릭터야. 진일보한 여성상이지. 집안일 하는 하녀가 집 주인더러 같이 죽자고 하고 여주인 행세하잖아.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에서 했던 늙은 엄마도 그래요. 그 엄마는 ‘나도 어릴 때 남자친구 만나서 엔조이할 거야’ 라고 하잖아. 앞서는 거지. 두 여자가 굉장히 페미니스트적인 여자라고 생각해요.”

-‘돈의 맛’도 그 연장인가?

“그럴 거예요. 김효진이 연기한 재벌가 딸 역할도 진일보했지. 흔히 쿨하다고 이야기하는 여자야. 임상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야. 현존하는 캐릭터를 10년 앞으로 가게 해줘. 감독은, 예술가는 좀 앞서가야 하잖아. 난 임상수의 작품에 대해 아무 반감이 없어. 김효진 역도 우리나라에서는 없던 여자 캐릭터일텐데, 젊은 여배우로서는 특히.”

-여전히 원하는 역할 혹은 장르가 있나?

“내가 꿈을 꾼다고 이뤄지지도 않고. 나는 실용적인 사람이에요. 나는 남자배우들이 나와서 ‘멜로를 하고 싶다’는 말 듣기 싫어 죽겠어. 하하. 나에게도 멜로 하겠느냐고 묻는데 안 해. 나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역할을 흥미롭게 생각해.

돌이켜보면 어릴 때 나는 청춘의 상징이었고 팔십 먹은 할머니도 연기해봤어. 별로 역할에 대한 불평은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임상수 감독의 것들, ‘돈의 맛’의 백금옥을 중년 여배우에게 하라면 다들 안하겠다고 하겠지.

그런데 임상수는 천만해 만만해. 모순덩어리라니까. 임상수는 굉장히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고 따듯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남자라니까요. 촬영장에 임상수의 형님이 찾아와서 같이 밤을 새. 나한테 고개를 숙이면서 고생한다고 인사하고. 미국에서 교수님이라는데. 하여튼 임상수는 자신의 영화와는 너무 달라. 모든 걸 내가 폭로해야지. 하하.”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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