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이야기를 내세운 ‘일요일이 좋다-아빠를 부탁해’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아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이야기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다. 사진제공|SBS
‘아빠를 부탁해’ ‘동상이몽’의 고민과 갈등
미래의 나 보는 듯…가족 소통 예능 공감
지난해 9월, 아이를 낳고 2주간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이제 막 ‘엄마’라는 세계에 입문한 산모들을 위해 가끔 소아과전문의, 아동사회복지학 교수의 강의가 진행됐다. 한 교수가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약속이나 한 듯 산모들은 “친구 같은 엄마”라고 답했다. 교수는 말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가 되어주세요.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엄마랍니다.”
교수는 엄마가 아무런 대가나 짜증 없이 100% 아이의 소리에 집중하는 기간은 약 100일에 불과하다는 다소 ‘무정한’ 얘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실전 육아’에 돌입한 후 하루 종일 누워 보채는 아이의 소리에 즉각 미소로 화답한 건 100일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잠깐만’, ‘나중에’라는 말이 나왔고, ‘엄마도 힘들어’라는 투정을 부렸던 것 같다.
최근 SBS ‘일요일이 좋다-아빠를 부탁해’나 ‘동상이몽-괜찮아 괜찮아’ 등 가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프로그램이 시청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부녀지간의 어색함을 애써 웃음으로 넘기려는 ‘아빠를 부탁해’ 딸들의 모습에선 지금의 나를, ‘동상이몽’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욕심과 집착으로 바뀌어 버린 부모에게선 가까운 미래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대체로 출연자들이 겪는 갈등은 아주 작은 오해와 무관심에서 시작됐다.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으로 미룬 부모자식 사이의 ‘마음 듣기’는 결국 소통의 부재를 만들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게 했다. ‘아빠를 부탁해’나 ‘동상이몽’의 고민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닌 내 것, 우리의 것이 되어 공감의 눈물과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
‘소통’을 위한 첫 단계로 꼽히는 ‘들어주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수동적인 의미의 ‘히어(Hear)’가 아닌,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능동적인 ‘리슨(Listen)’의 태도가 필요하다.
생후 10개월에 접어들면서 이곳저곳 기어 다니며 온갖 물건을 입에 갖다대는 아이에게 나는 언젠가부터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다. 세상이 온통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난감처럼 보일 아이의 눈에 난 얼마나 많은 것을 ‘들어주고’ 또 ‘이해하려’ 하는 엄마일까.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