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의 명장면과 명대사가 공개됐다.
●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관객들이 만장일치로 꼽는 최고의 명장면은 클라이맥스 10분이다. 롱샷, 롱테이크 기법으로 인물의 감정에 깊이 개입하지 않은 채, 담담하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일관하던 영화가 엔딩에 이르러 참아왔던 감정을 쏟아낸다. 아무에게도 속내를 말하지 못한 채 아픔을 삭여왔던 ‘유미코’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영화는 억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관객들의 가슴에 진한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이때, 지금껏 묵묵히 ‘유미코’를 지켜 봐주었던 새 남편 ‘타미오’가 건네는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대사는 한줄기 단비가 되어 내린다. 이 클라이맥스 10분은 원작소설에는 없는 영화적 설정이기에 더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의 기억, 빛과 어둠
극중 ‘유미코’는 남편이 죽은 뒤 7년 후 설정인 영화의 클라이맥스 전까지 “그가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단 한마디도 꺼내놓지 않는다. 지난 7/8(금) 씨네토크를 진행한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에서 전 남편 ‘이쿠오’가 살아있는 시간은 불과 12분 10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만일 이 영화를 배우 아사노부 타다노부 때문에 보는 관객이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웃음) 핵심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등장한 후 자살한 ‘이쿠오’의 무게를 나머지 시간 동안 ‘유미코’가 안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죽음의 수수께끼, 자살의 이유에 눌리면서 ‘유미코’는 살아가고 견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7년의 시간이 흘러 ‘유미코’는 다시금 행복한 일상을 찾은 듯 하지만, 여전히 ‘이쿠오’의 기억은 불현듯 찾아오고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이다. 무심하게 걸레질을 하던 ‘유미코’가 아무 이유 없이 계단에 툭 주저 앉는 순간, 관객들은 그녀의 상처를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또한 근경에 어둠, 원경에 빛을 배치한 ‘환상의 빛’의 미쟝센은 영화가 이야기하는 삶과 죽음, 그 사이와 공존의 메시지를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 “날씨가 많이 풀렸죠” “좋은 계절이 왔어”
‘환상의 빛’은 시종 검고 어두운 계열의 의상만을 입는 ‘유미코’의 모습에서 그녀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에 말미에 이르러 흰 옷을 입고 등장한 ‘유미코’는 “날씨가 많이 풀렸죠”라고 말한다. 이에 할아버지가 “좋은 계절이 왔어”라고 답한다. ‘유미코’의 마음에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온 것일까? 이 마지막 장면은 많은 관객들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영화 ‘환상의 빛’은 가족, 상실,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울려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클래식’의 첫 번째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하며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절찬리 상영 중.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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