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혜수 “거침없는 혜수?…마음이 왔다 갔다 오두방정 혜수”

입력 2017-11-1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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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생활 31년째인 김혜수는 ‘톱스타’이자 ‘여배우’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원동력은 매 작품마다 보여준 변신이다.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나 잘 하고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 액션 느와르 영화 ‘미옥’ 김혜수

배우생활 31년째, 난 아직도 벅차고 떨린다

좋은 대본 보면 겁부터 나고
출연 계약 해놓고 후회하고
‘미옥’ 주인공처럼 은퇴 고민도…
죽을것 같던 액션, 쾌감 있던대요
약점? 이름·숫자에 치명적
헷갈리면 무조건 ‘자기야’죠


김혜수(47)는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배우다. 대중이 느끼는 익숙함과 친근함의 근원은 그가 연기자로 활동한 시간의 힘이다. 올해로 배우생활 31년째. 작품을 통한 과감한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톱스타’이자 ‘여배우’의 자리를 지킨 저력은 김혜수를 상징한다.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 그는 여성들의 워너비로 통한다. 단순히 표현하면 ‘멋진 언니’. ‘거침없는 배우’라는 평가도 따른다. 이에 손사래 치며 “왜요, 저 거침이 정말 많아요”라는 항변부터 꺼내는 김혜수는 “끊임없이 ‘나 잘하고 있나’, ‘맞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9일 개봉한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제작 영화사 소중한)은 김혜수에 여러 생각을 안기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여배우의 액션 느와르라는 사실부터 매년 한 편씩 작품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배우로서의 고민도 적지 않아 보였다.

“극의 주인공 나현정이 조직에서 은퇴하려는 마음처럼 나도 고민을 한다. 다시는 연기를 못할 것 같은 한계를 느낄 때도 있고. ‘어떻게 그리 오래 버텼느냐’고 직접 묻는 후배도 있었다. 나도 철없이, 정신없이 방황하고 갈등한 시간이 꽤 길었지. 다만 정신 차리고 성장하면서는 솔직히 내 앞에 놓인 것만 잘하기에도 벅찼다. 지금도 그렇다.”

김혜수는 30년 동안 한 번도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1990년대 ‘닥터 봉’ 같은 코미디영화부터 2000년대 ‘타짜’ 등 대표작을 만들었고 최근 원톱 주연작 ‘차이나타운’과 ‘굿바이 싱글’로 연속 흥행도 맛봤다. ‘도둑들’ ‘관상’같은 메가히트도 기록한 스타다. 영화에 뜸할 땐 드라마 ‘직장의 신’이나 ‘시그널’로도 소위 ‘대박’을 맛봤다.

대단한 자신감을 충전해두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좋은 대본을 보면 지금도 겁부터 난다”고 했다.

“최근에 더 그렇다. 용기 내서 선택하지만 막상 결정을 하고 나면 ‘내가 어쩌려고’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가능성을 찾다가 촬영 직전이 되면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했나, 안했나를 따진 적도 있다.(웃음) 정말 마음이 오두방정이다.”

배우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2년 전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차이나타운’으로 여성 느와르를 처음 경험한 김혜수는 ‘미옥’으로 같은 장르에 다시 나섰다. 거친 남자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액션 연기는 이번이 처음. 이래저래 김혜수에게는 도전이다.

“그간 액션 시나리오는 꽤 받았다. 데뷔 때 태권도를 하다 우연히 태권소녀처럼 연기를 시작했으니까. 체격 조건도 연약한 그림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나는 액션 자체에 특별히 흥미를 못 느꼈고 용기도 못 냈다.”

하지만 몸을 쓰는 액션 연기는 그에게 전혀 경험하지 못한 “쾌감”을 줬다.

“평소에 몸 쓸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고 게으르다보니, 안 쓰던 근육 움직여서 액션을 하니까 첫날엔 아파 죽겠더라. 다음날 또 하면 막 풀리는 것 같고, 또 다음날엔 가벼워지고. 아, 액션은 이런 거구나 생각 되더라. 하하!”

‘미옥’은 조직을 기업으로 키운 한 여인과 그를 둘러싼 네 남자가 벌이는 사랑과 욕망의 이야기다. 첫 주 성적은 아쉬운 수준에 그쳤지만 그 기록과 무관하게 김혜수는 여배우의 도전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여배우가 이끄는 또 다른 영화들에도 관심이 이어진다.

“여배우 영화가 많아진다는데, 정말 체감할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만드는 사람끼리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영화를 소구하는 관객이 목소리를 내는 건 반갑다. 관객은 볼 준비가 돼 있는 데 합당한 콘텐츠가 있는지가 문제다.”

김혜수는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여자 영화가 늘어나는 것보다 여성이 영화에서 비중에 상관없이 소비되지 않고 캐릭터로 존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캐릭터가 지향하는 바가 분명치 않으면 관객은 전달받을 게 없으니까 말이다.”

김혜수는 올해 본 최고의 영화로 제작비 1억원으로 만든 ‘용순’을 꼽았다. 육상부 체육 교사와 사랑에 빠진 열여덟 소녀의 이야기다.

“특별한 소재도 주제도 없는 작은 영화인데 많은 감정을 깊이 담아냈다. ‘한공주’나 ‘캐빈에 대하여’처럼 여성 캐릭터가 만드는 엄청난 영화들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김혜수는 12월부터 새 영화 ‘국가 부도의 날’ 촬영을 시작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협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그린 영화다. ‘차이나타운’부터 ‘굿바이 싱글’ ‘미옥’에 이어 다시 한 번 신인감독의 손을 잡았다.

김혜수 주변에는 사람이 많고 팬도 많다.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친근한 성격은 그의 매력. 성별, 나이를 떠나 김혜수는 마음을 표현하는 호칭으로 “자기야”를 자주 쓴다. 이런 호칭 통일에는 남모를 이유가 있다.

“약점인데 이름, 숫자, 지명에 굉장히 취약하다.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하하! 분명 얼굴은 아는 사람이고, 너무 반가운 마음을 표현해 인사하고 싶은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정말 괴롭다. 마음을 표현하려고 ‘자기야’라고 부른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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