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①] ‘짝코’, 한국전쟁 30년 만에 던진 ‘인간 화해’ 메시지

입력 2019-05-08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짝코’ 사진|한국영상자료원

■ 7. 1980년작 임권택 감독의 ‘짝코’

1919년 10월27일 ‘의리적 구토’ 이후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걸작을 선사해왔다.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감동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대표적 작품들이 여기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감독, 제작자, 평론가 등 100인의 영화 전문가에게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요청해 얻은 답변이기도 하다. 이를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빨치산 짝코와 토벌대 송기열
이념 갈등과 대립 넘어선 우정
시대 관통한 임감독의 대표작

어두컴컴한 밤, 골목길로 경찰차가 들어선다. 구석진 모퉁이에 남루한 차림으로 누운 초로의 남자. 갈 곳 없다는 그를 경찰은 갱생원으로 이끌고, 남자는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짝코를 만난다.

남자의 이름은 송기열(최윤석).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대원이었던 그는 악명 높은 빨치산 대장 짝코(김희라)를 붙잡아 호송하던 중 놓치고, 일부러 풀어줬다는 누명을 쓴 채 30년간 짝코를 쫓았다.

긴 세월 두 남자의 삶은 스산했다. 송기열의 아내는 스스로 생을 졌고, 그의 삶도 피폐해졌다. 짝코 역시 도망자로 살아왔다. 함께 병까지 깊어지자 이들은 갱생원을 탈출하고, “고향으로 가서 억울함을 구명하자”는 송기열의 손에 이끌려 기차에 오른다. 인생의 마지막 길, 짝코는 송기열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는다.

임권택 감독의 1980년작 ‘짝코’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두 남자가 한국전쟁의 한 복판에서 비극적으로 만난 뒤 일생에 걸쳐 벌인 추격과 도피의 이야기다. 이들은 전후 격랑의 시간을 보내며 4·19와 5·16 등 굴곡진 시절을 통과한다. 감독은 이들과 시대적 변곡점을 통해 이념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는 ‘인간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짝코’는 종군작가 김중희의 두 장짜리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임 감독은 이를 토대로 전쟁의 혼돈 속에서 대립하다 그 광기를 지난 이들이 결국 이념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1980년 8월9일자 매일경제는 “6·25의 상처를 3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재조명한 사회 드라마”로 평했다.

‘짝코’는 대종상 우수반공영화상을 받는 등 반공영화로 인식됐다. 반공이데올로기가 확고했던 시기 빨치산을 바라보는 감독의 ‘인간애적인’ 시선을 두고도 해석이 뒤따랐다. 193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감독이 유년기 시절 부친의 좌익활동으로 고초를 겪은 경험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후 이념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주목하게 했다.

‘짝코’는 ‘만다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등과 함께 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품을 통해 시대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감독의 도전은 후배 영화인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과 힘이 됐다. 강제규 감독은 “1980년대 이후 긴 시간 웰메이드 영화를 통해 후배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선엽 영화평론가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 시대성까지 예민하게 포착해온 작품들의 다양성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