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가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7일 방송된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는 홍천에서 대안학교를 운영 중인 인순이를 찾아간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순이는 홍천에 기숙형 대안학교를 설립, 이사장으로 있다. 인순이는 학교를 소개하며 “6회 졸업식까지 치렀다. 첫해에는 5명이 졸업해 남학생 2명이 군대에 갔다. 한 친구는 군 복무 중 월급을 모아 학교를 후원했다. 너무 감사해서 후원을 해야 된다더라”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홍천에 학교를 세운 이유를 묻자 인순이는 “여러 군데를 다녔다. 공주, 이천, 홍천을 다녔다. 홍천 김치 체험장, 농기구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절친 혜은이는 인순이의 대안학교 설립 근황을 몰랐다고 말했다. 인순이는 “많이들 모른다. 나를 만나면 '후원 해달라고 하는 거 아냐?'라고 부담스러워할 까봐 말을 못 한다. 아는 분들한테는 만원씩 길게 해달라고는 한다. 마음만 우리 학교와 갖고 계시면 밖에서 다문화 아이를 봤을 때 달리 보이지 않겠냐. 그걸 원한다”고 털어놨다.
인순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대안학교를 세웠다고 밝혔다. 인순이는 “내가 아팠으니까 아파본 사람의 심정을 안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 나라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나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시소 타는 느낌이 있다. 엄마이기도 하고 다문화 2세로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거 같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문화 2세로서 차별도 고백했다. 인순이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는데 뒷자리 남자 둘이 내 좌석을 발로 차고 온갖 별소리를 다했다. 18살쯤이었다. 싸움이 붙었다. '왜 날 갖고 그러냐'고 뭐라 하니까 더 재밌어했다. 울면서 싸우다가 '저 사람들이 날 갖고 놀리는 게 틀린 말은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해탈을 했다. 내가 나를 인정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사람들이 생판 남이 아닌 나를 두고 놀리는 거다. 그게 나인 거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인정하라는 이야기다. 남들에게 상처를 인정할 수 있게,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서 덜 흔들리게 하는 게 우리 학교 정신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날 멤버들은 “딸도 노래를 잘할 거 같다”며 딸의 근황을 물었다. 인순이는 “노래를 좀 한다. 어렸을 때 가수가 되고 싶다 해서 '가수 생명력이 너무 짧다'고 이야기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을 갔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10%만 주는 상까지 받았다. 3학년 때 시애틀 M사 본사에 인턴을 갔는데 잘 됐다. 4학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며 “엄마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해서 퇴사 후 한국에 왔다. 아깝더라”고 웃어보였다.
인순이는 인생에서 인생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슬럼프를 겪던 중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인순이는 “1992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그때 '내가 죽으면 뉴스 한 줄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잘 살았는지를 묻고 싶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상담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데이트 하면서 내가 남긴 밥을 먹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결혼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남편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남편의 노력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인순이는 “남편 작은 아버지가 반대했다. 남편이 무릎 꿇고 빌고 나는 안 한다고 했다. 내가 뭐가 부족한가 싶었다. 반대하는 결혼을 안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허락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7일 방송된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는 홍천에서 대안학교를 운영 중인 인순이를 찾아간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순이는 홍천에 기숙형 대안학교를 설립, 이사장으로 있다. 인순이는 학교를 소개하며 “6회 졸업식까지 치렀다. 첫해에는 5명이 졸업해 남학생 2명이 군대에 갔다. 한 친구는 군 복무 중 월급을 모아 학교를 후원했다. 너무 감사해서 후원을 해야 된다더라”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홍천에 학교를 세운 이유를 묻자 인순이는 “여러 군데를 다녔다. 공주, 이천, 홍천을 다녔다. 홍천 김치 체험장, 농기구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절친 혜은이는 인순이의 대안학교 설립 근황을 몰랐다고 말했다. 인순이는 “많이들 모른다. 나를 만나면 '후원 해달라고 하는 거 아냐?'라고 부담스러워할 까봐 말을 못 한다. 아는 분들한테는 만원씩 길게 해달라고는 한다. 마음만 우리 학교와 갖고 계시면 밖에서 다문화 아이를 봤을 때 달리 보이지 않겠냐. 그걸 원한다”고 털어놨다.
인순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대안학교를 세웠다고 밝혔다. 인순이는 “내가 아팠으니까 아파본 사람의 심정을 안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 나라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나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시소 타는 느낌이 있다. 엄마이기도 하고 다문화 2세로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거 같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문화 2세로서 차별도 고백했다. 인순이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는데 뒷자리 남자 둘이 내 좌석을 발로 차고 온갖 별소리를 다했다. 18살쯤이었다. 싸움이 붙었다. '왜 날 갖고 그러냐'고 뭐라 하니까 더 재밌어했다. 울면서 싸우다가 '저 사람들이 날 갖고 놀리는 게 틀린 말은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해탈을 했다. 내가 나를 인정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사람들이 생판 남이 아닌 나를 두고 놀리는 거다. 그게 나인 거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인정하라는 이야기다. 남들에게 상처를 인정할 수 있게,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서 덜 흔들리게 하는 게 우리 학교 정신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날 멤버들은 “딸도 노래를 잘할 거 같다”며 딸의 근황을 물었다. 인순이는 “노래를 좀 한다. 어렸을 때 가수가 되고 싶다 해서 '가수 생명력이 너무 짧다'고 이야기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을 갔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10%만 주는 상까지 받았다. 3학년 때 시애틀 M사 본사에 인턴을 갔는데 잘 됐다. 4학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며 “엄마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해서 퇴사 후 한국에 왔다. 아깝더라”고 웃어보였다.
인순이는 인생에서 인생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슬럼프를 겪던 중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인순이는 “1992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그때 '내가 죽으면 뉴스 한 줄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잘 살았는지를 묻고 싶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상담하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데이트 하면서 내가 남긴 밥을 먹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결혼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남편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남편의 노력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인순이는 “남편 작은 아버지가 반대했다. 남편이 무릎 꿇고 빌고 나는 안 한다고 했다. 내가 뭐가 부족한가 싶었다. 반대하는 결혼을 안 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허락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