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C9엔터테인먼트
지난 1일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윤하가 그렇게 말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너무 중견 같아 보이잖아요”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앳된 외모만 보면 20년이나 활동했단 사실을 믿기 힘들지만 ‘비밀번호 486’ ‘혜성’ ‘오늘 헤어졌어요’ ‘사건의 지평선’ 등 수많은 히트곡이 치열했던 지난날을 설명해준다.
최근 서울 중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하도 2004년 9월 1일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데뷔한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의 내가 고맙고 대단해서 가끔 울컥한다”고 털어놨다. 또 “답을 찾으려 홀로 고군분투했던 시절을 지나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조금 더 신나고 희망적인 기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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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흘러 찾은 여유와 희망을 1일 발매한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에 담았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를 비롯해 ‘맹그로브’ ‘죽음의 나선’ 등 묵직하고 강렬한 록 선율을 담은 10개 자작곡을 실었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개복치의 영어 이름(SUNFISH)에서 따왔어요. 수면부터 심해까지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에 끌렸거든요. 이 친구가 ‘바다의 태양’ 같은 존재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죠. 하늘이 되진 못해도 바다에 비친 태양 정도는 되고 싶단 마음을 투영했어요.”
앨범을 만들며 2022년 ‘사건의 지평선’의 역주행 인기로 느낀 부담감도 털어냈다. 지난해 호주 여행 중 처음 본 맹그로브 나무가 그에게는 “전환점”이 됐다.
“‘사건의 지평선’ 엄청난 인기를 보면서 ‘여기서부턴 운의 영역이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 다음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부담감이 커졌죠. 그러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를 본 거예요. 수만 번의 밀물과 썰물에 담금질 당하면서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을 가진 나무의 인생을 상상해보니 내가 가진 고민들이 작게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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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속사 갈등, 음악 트렌드의 변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묵묵히 버텨내 결국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게 됐다. 최근에는 ‘꿈의 무대’로 꼽아온 체조경기장에서 공연도 펼쳤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노래하는 ‘장기 레이스’를 준비하는 마음”도 새로 갖게 됐다.
음악 앞에선 한없이 진지하지만, 실제로는 엉뚱한 매력이 가득하다. 컬래버 작업을 원하는 가수를 묻자마자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를 외치기도 했다.
“20살 때 주민등록증 쥐고 술 마시러 가면서 어른이 된 거 같아 우쭐하잖아요. 지금이 그래요. 조용필 선생님도 아직 노래하시는데, 20주년은 ‘청춘’이죠. 지금이야말로 제 음악 인생의 새 시작점이에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