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하. 사진제공 | 씨제스 스튜디오
넷플릭스 드라마 ‘트렁크’에서 공유와 서현진 못지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낸 이가 있다. 바로 정윤하.
그는 극중 공유의 전 부인이자 건축가 이서연 역을 맡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멜로 스릴러를 표방한 드라마는 한정원(공유)과 기간제 결혼 매칭 회사 직원 노인지(서현진)가 1년간 계약 결혼 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극중 정윤하는 공유와 이혼하고, 재결합하고 싶으면 1년짜리 가짜 결혼을 하라 강요한다.
남편을 완벽하게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시험하는 등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원초적인 인물이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에요. 저와 이서연의 간극을 줄이고 싶어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수차례 상담하며 ‘자기성 인격장애’, ‘공격성 장애’를 지닌 캐릭터란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유튜브, 책까지 다 찾아 공부했어요.”
정윤하는 이번 드라마에서 수위 높은 베드신을 펼쳤다. 해당 장면은 서연의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됐다.
“굉장히 신중하고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대본에는 ‘서연과 지호의 관계 중’, ‘서연에게 뜨겁지는 않다’ 정도 지문이 전부였어요. 그걸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하는 지가 저에게 더 큰 문제였어요. 그게 그렇게 (화제가)커질 줄은 몰랐어요. 촬영 당일엔 대역 배우들과 함께 회의하고, 액션 연기처럼 합을 맞췄어요.”
치열함을 넘어 집요하게 파고든 덕분에 해외 매체의 뜨거운 관심도 받았다.
미국 연예매체 콜라이더와 영국 가디언은 “냉철하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뛰어난 감정 표현으로 몰입감을 더한다”, “전형적인 케이(K) 드라마 캐릭터를 넘어서며 이야기의 중심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며 정윤하의 연기를 호평했다.
사실 이런 평가는 정윤하가 20여 년 동안 부단히 걸어오며 얻은 결과물과 맞물린다.
2007년 미국 광고를 통해 데뷔한 그는 직접 프로필을 만들어 에이전시에 돌리며 조·단역 등 가리지 않았다. 1000만 관객을 넘은 ‘파묘’에서의 박지용 아내 역, ‘카지노’에서의 필리핀 술집 마담 역도 이렇게 얻은 기회다.
그의 노력을 ‘트렁크’ 연출을 맡은 김규태 감독이 알아봤다. 김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정윤하를 발견했고, 먼저 연락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감독님이 ‘함께 작업하자’고 하던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촬영이 끝나고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요. 냥 위로해주신 거일 수 있지만 꿈만 같았어요.”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