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 양형모 기자] 가수 츄가 데뷔 10년 차에 첫 솔로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제목은 ‘XO, My Cyberlove’.

총 9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현실과 가상이 겹쳐진 시대,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낸 작품이다. 타이틀에 ‘AI’라는 단어가 놓였지만, 츄가 반복해서 말하는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이 앨범이 붙잡고 있는 감정은 관계, 그리고 기다림이다.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대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쪽의 마음, 그 거리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데모를 들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타이틀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고백은 이 앨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불필요한 표현을 빼려고 했다”는 보컬 접근, 가장 애정 가는 곡으로 ‘Canary’를 직접 꼽은 이유까지 이어 놓고 보면, 이번 정규는 츄가 스스로를 어떤 가수로 규정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에 가깝다.

대중에게 익숙한 츄의 이미지는 밝고 더없이 귀엽다. 예능에서 보여준 발랄한 리액션과 환한 미소, ‘인간 비타민’이라는 수식어는 오랜 시간 굳어져 왔다. 그러나 노래 속 츄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타이틀곡 ‘XO, My Cyberlove’는 몽환적인 아날로그 팝 트랙이다. 신스는 반짝이면서 차갑지 않다. 전체 사운드는 오히려 따뜻한 잔향을 남긴다. 디지털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음악은 과거의 언어를 빌린다.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그 뒤에 놓인 감정을 꺼내겠다는 쪽에 가깝다.

이 곡은 앞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멜로디는 반복되고, 후렴은 터지지 않는다.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는 상태, 읽음만 남은 대화창의 침묵을 음악 구조로 옮긴 듯한 인상이다.

보컬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츄는 이번 음반에서 고음을 앞세우지 않는다. 중저역을 위주로 소리를 낮게 깔고, 호흡을 남긴다. 발음은 또렷하지만 감정은 눌러 담겨 있다. ‘AI의 시점’이라는 설정은 꽤 설득력이 있다. 밝고 발랄한 이미지로 기억된 가수에게서 이런 절제는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낯섦이 곡의 힘이 된다.

츄가 가장 공감한 곡으로 꼽은 ‘Canary’는 다크 팝 발라드다. 여기서 발라드는 느린 노래를 뜻하지 않는다. 감정과 이야기가 앞에 놓인 구조다. ‘다크’는 분위기다. 위로나 낭만보다 희생과 보호,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 깔려 있다. 카나리아는 유독가스를 먼저 감지하고 노래를 멈추던 연약한 존재다.

츄는 이 상징을 자기 자신과 겹쳐 본다. 작고 약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 곡에서 그는 감정을 끝까지 품고 간다. 울부짖지 않고, 터뜨리지 않는다. “부를 때마다 울컥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다른 수록곡들도 같은 방향을 공유한다. ‘Cocktail Dress’와 ‘Limoncello’는 리듬과 질감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Teeny Tiny Heart’는 사랑에 빠진 마음의 혼란을 가볍게 풀어낸다. ‘Love Potion’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순간을, ‘Heart Tea Bag’은 감정이 서서히 우러나는 시간을 그린다.


마지막 트랙 ‘첫눈이 오면 그때 거기서 만나’는 팬과의 약속을 담았다. 팬미팅에서 선공개했고, 후렴을 따라 부르는 장면까지 경험한 곡이다. 이 노래는 음악적 실험보다 관계의 기억이 무겁게 얹혀 있다. 9곡은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아래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왜 이미지로 소비되는 츄와 음악으로 들리는 츄는 이렇게 다른가. 예능은 에너지를 밖으로 써야 하는 자리이고, 노래는 감정을 안으로 모으는 작업이다. 츄의 보컬은 본래 외향적이지 않다. 혼잣말에 가깝고,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소리에 가깝다. 밝은 캐릭터와 함께 소비될 때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이번 정규는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게 노래할 때의 나”라고 선을 긋는다. 작곡이나 작사에 직접 이름을 올린 곡은 없지만, 곡을 고르는 단계부터 감정의 방향과 보컬의 밀도를 설계했을 것이다.

그래서 ‘XO, My Cyberlove’는 이미지 변신을 선언하는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노래하는 가수로서 츄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빠르게 소비되지 않을지언정, 시간을 두고 다시 듣게 되는 노래들이다. 데뷔 10년 차에 나온 첫 정규라는 말이 이 음반에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츄는 이제 크게 웃지 않아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수가 됐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