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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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추격자’, ‘황해’, ‘곡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감정을 송곳처럼 파고들어 온 나홍진 감독이 대작 ‘호프’로 10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다.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연내 최고 사전 예매율 기록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선 작품이지만, 개봉을 앞둔 거장의 얼굴에는 설렘만큼이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 ‘호포항’이 외계인의 습격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기존 우리 영화의 문법을 깨고 SF와 크리처물, 스릴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실험에 나선 나 감독은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한다”고 털어놨다.

영화 ‘호프’ 황정민 스틸,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 황정민 스틸,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O“황정민에게 건 1시간의 도박”

일각에서는 나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SF 장르와 크리처물을 선보이며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인간의 분노와 안타까움 등 보편적인 부정적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기존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곡성’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보여줬죠. 이미 초자연까지 갔던 상황에서 이 감정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줄 새로운 캔버스를 고민하다 보니 우주까지 가게 됐어요.”

영화의 제목이 잔혹한 서사와 대조를 이루는 ‘호프(HOPE, 희망)’인 이유 역시 나홍진 감독다운 지독한 역설이 담겨 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폭력과 비극을 줄창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동안 이것에 대해 전혀 무관한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은유이자 상징적인 정리를 보여주죠. 그 마지막 10분이 바로 이 비극에 대한 다른 개념의 요약이자 저의 바람입니다.”

영화의 전반부 1시간은 황정민의 독무대에 다름없다. 이런 과감한 구성은 전작 ‘곡성’부터 함께해 온 배우 황정민을 향한 나 감독의 절대적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연기자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코어’가 드러날 때까지 계속 파헤치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 배우 본연의 모습이 반드시 드러납니다. 황정민 배우는 영화에서 그가 맡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본연의 선(善)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런 배경에서 극 초반을 오롯이 이끄는 도박 같은 독무대를 맡길 수 있었죠.”

영화 ‘호프’ 속 외계인 스틸,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 속 외계인 스틸,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O“할리우드 배우 섭외 비하인드는요”

‘호프’는 할리우드 스타 부부인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두 배우는 모션캡처와 CG 등을 통해 ‘충격적인 외계인’의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알리시아와는 예전부터 함께 작품을 하기로 하고 친분을 이어왔어요. 사정상 그 작품은 무산됐지만, 이어 ‘호프’ 시나리오를 보내자 그가 ‘출연 의사’를 밝히더군요. 여기에 그의 남편인 패스벤더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힘을 써줬어요.(웃음) ‘호프’ 제작비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규모지만,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독립영화 수준이라 두 배우 모두 거마비 수준만 받고 흔쾌히 참여해 주었죠.”

하지만 정작 외계인 크리처를 첨단 VFX 기술로 구현하는 과정은 감독 인생에서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였다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크리처 콘셉트 및 디자인 단계부터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중국에서 키 크신 분 모셔다가 탈 씌워서 촬영할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예요.(웃음) 사운드 트랙만 1700개에 달하고 CG 작업 때문에 단 하루도 쉬지 못했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이 다음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하신다는데, 진짜 와… 너무 대단하십니다. 존경심이 절로 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에요.”

‘호프’의 최종 러닝타임은 나 감독의 대표작인 ‘황해’, ‘곡성’과 같은 156분이다. 팬덤 사이에서는 완벽주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나 감독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기이한 우연”이라며 웃었다.

“‘황해’와 ‘곡성’의 러닝타임이 같았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호프’ 역시 심의를 넣고 나서야 156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정도의 시간과 리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도록 몸에 익어 있는 것 같아요.”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