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윤병희(40)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꼽자면 단연 ‘신스틸러’일 것이다. 적은 분량에도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뜻이다. 2019년 SBS ‘스토브리그’의 열혈 스카우트 팀장과 지난해 tvN ‘악의 꽃’에서는 살인마 등을 통해 저력을 과시해왔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로도 이름값을 했다. 한동안 트레이드마크처럼 유지했던 콧수염도 깨끗하게 밀고 시청자 앞에 나타났다. 극중 독종 변호사인 전여빈의 곁을 지키는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사무장으로 톡톡 튀는 엉뚱한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변호사녬”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말투가 주인공 송중기와 출연자 동료들 뿐 아니라 시청자 사이에서까지 유행어로 번졌다. ‘원조’로서 뿌듯하다는 그는 “‘님’으로 끝나는 이 세상 모든 단어들이 ‘녬’으로 대체됐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포부(?)까지 드러냈다.
다음은 최근 서울시 서대문구 스포츠동아 사옥에서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엉뚱한데 일처리는 확실한 남주성 캐릭터가 독특했다.
“제게는 운명 같은 캐릭터였어요. 연출자 김희원 PD님께서는 제가 문을 열자마자 ‘남주성이다’라는 생각이 스치셨다고 해요. 캐릭터에 딱 맞는 연기자를 좀처럼 찾지 못해서 진행한 추가 오디션의 마지막 주자가 저였거든요. 극적으로 캐스팅이 된 거죠. 저도 ‘이런 말투나 행동을 담은 연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유감없이 꺼낸 무대였어요.”
-극중 돋보였던 독특한 말투는 어떻게 만들었나.
“촬영 중에 즉흥적으로 탄생했답니다. 제가 신호에 맞춰서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넋 놓고 있다가 당황해서 살짝 발음이 ‘삐끗’했어요. 그게 바로 ‘변호사녬’이에요. 송중기 씨가 그걸 듣고 웃음이 빵 터진 거예요. 스태프들도 엄청 만족스러워하더라고요. 그대로 말투가 정착했어요.”
-시청자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다.
“원조로서 뿌듯하죠.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이 서로 ‘감독녬’이라고 부르는 문자 메시지를 저한테 보여주시더라고요. ‘우리도 쓰고 있어요’라면서요. 어떤 시청자 분께서는 실제로 회사에서 ‘과장녬’이라고 말한 적도 있대요. 우연히 얻어걸린 건데 좋아해주시니 감사하죠.”
-드라마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소품 하나에도 제가 이름을 붙일 만큼 정말 애정이 많았어요. 출연자들끼리 서로 아이디어도 엄청나게 내면서 열정적으로 촬영 했고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켜켜이 녹아든 드라마니까 애착이 유난히 가네요. 당연히 시즌2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출연자들은 하나 같이 ‘대하드라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니까요.”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도 꼽을 수 있겠다.
“맞아요. 2017년 영화 ‘범죄도시’로 ‘윤병희라는 사람이 있어’라는 것까지는 알렸다면, ‘빈센조’는 제게 소중한 사람들과 기회를 마련해준 선물 같은 작품이죠. 물론 그 와중에 만난 ‘스토브리그’나 ‘악의 꽃’ 같은 드라마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를 맞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올해로 10살과 8살이 된 딸과 아들이 있는데요. 제가 나갈 때 마다 ‘빈센조 찍으러 가?’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딸은 제 클립 영상을 다 찾아보던데요? 물론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송중기 오빠’이지만요. 하하하!”
-아내의 지지도 큰 원동력이 됐겠다.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달려 왔을 거예요. 저에게 늘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줬죠. 인터뷰 같은 데에서 언급하면 쑥스럽다며 핀잔을 주곤 하는데, 올해 결혼 10주년이기도 하니 고맙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어요.”
-2007년 데뷔해 14년을 연기 한 우물을 판 비결은.
“처절하고 힘들긴 했지만, 모든 우리네 삶이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빈센조’에도 이런 대사가 있죠.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고요. 저에게는 참 와 닿는 말이었어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따르지만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서 ‘더 잘해야겠다’고 버텨왔더니 ‘빈센조’도 만날 수 있었어요.”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되나.
“영화 ‘새콤달콤’, ‘외계+인’ 등에 출연해요. ‘빈센조’에 함께 출연한 (곽)동연이 하고 영화 ‘6/45’(육사오)에도 출연하고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은 많은데요, 그것만큼 이루기 힘든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정성을 다 해서 준비한 모습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