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이제훈 “김병지컷? NO 맥가이버…올드함 노려” (종합)

“19금 인간? 그저 잘 봐주시길”
“유품으로 이제훈 작품집 남기고파”

"'모범택시'에 이어 '무브 투 헤븐'까지 많은 사랑과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 이제훈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SBS '모범택시'에 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이 전세계 공개됐다. '무브 투 헤븐'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 분)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 분)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 공개된 후 한국 넷플릭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사랑받았다.

이제훈은 그루의 삼촌이자 후견인 상구 역을 맡아 연기했다. 극중 상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불법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다 결국 징역살이를하는 인물. 형 정우(지진희 분)에게 버림받은 상처에 막무가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세상을 떠난 형의 아들 그루와 만나 고인들의 유품 정리를 하며 점차 변화하는 인물이다.

시청률 16%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모범택시' 속 김도기(이제훈 분)와는 비슷하지만 사뭇 결이 다르다. 김도기는 성범죄, 감금 등 범죄 피해자들에게 의뢰를 받아 복수 대행 서비스를 해주는 캐릭터. 하지만 상구와 도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연이 있는 이들을 위로한다. 통쾌한 복수와 유품 정리, 이제훈은 어떤 위로에 공감이 갔을까.


"'모범택시'는 복수를 의뢰 받아 직접적으로 응징해요. 상구는 고인의 메시지와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고인의 주변인들에게 유품과 이야기를 전하죠.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우리가 봐야될 긍정적인 부분은 상구의 위로라고 생각해요. 상구는 아픈 사연들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이에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이전에는 장례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무브 투 헤븐'을 통해 사연들이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고 공감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상구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더 좋지 않나 싶어요"

상구의 유품 정리가 위로가 됐다면 김도기의 통쾌한 복수는 대리만족이 됐다고.

"시청자들이 사회의 울분을 해소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모범택시'가 사이다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죠.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셨음 좋겠어요(웃음)"

극중 상구는 시도때도 없이 담배를 피고 그루의 잔소리 없인 널부러져 있다. 이런 상구의 막무가내 삶은 이제훈에게 변곡점이 됐다.

"캐릭터 시작 자체가 지저분하고 부정적이지만 극 후반부로 갈수록 변화해요.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아이들에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지만 그 변화에 끄덕일 수 있었던 건 유품정리사의 이야기가 진솔했기 때문이죠. 변화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어요.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할 거라는 기대감을 갖는 배우가 되고 싶었죠.


상구를 떠올렸을 때 짧은 머리를 예상하셨을 거예요. 그런 이미지는 제게 익숙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더 과감한 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뒷머리를 길게 잘랐어요. 요즘 전혀 하지 않는 스타일이죠. 누가 김병지 컷이라는데 저는 맥가이버를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뒷머리를 기른 적이 있는데 올드해 보였음 했죠. 의상도 '누가 저렇게 입어' 할 정도로 비호감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그런 인물의 변화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픈 마음에 과감하게 시도했어요"

격투기 선수라는 설정 상 이제훈은 극중 여러 차례 상의를 탈의한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떡 벌어진 어깨. 평소보다 더 다부진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확실하게 각인돼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촬영 넉달 전부터 강하게 운동했죠. 2020년 1월 2일부터 과할 정도로 일주일에 6일을 거르지 않고 계속했어요. 보여주고 싶은 표현의 최고치를 보여주고 싶었죠. 태닝은 안 했어요. 하얀 피부톤으로 제대로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욕심있었거든요. 또 그렇게 운동하라면 쉽지 않을 거 같아요(웃음)"

이제훈은 이번 작품으로 '19금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법 격투기 선수, 흡연, 거친 언행 등 상구의 행동 때문에 '무브 투 헤븐'이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에서 비롯된 애칭이다. 현재 방영 중인 '모범택시' 역시 격한 액션신과 가혹한 피해 장면 때문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런 별명이 있는 줄 몰랐네요.(폭소) 작품을 읽었을 땐 그런 지점을 염두 하지 못했어요. 등급을 나누는 부분에 의견을 드리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잘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이제훈은 배우로서 작품을 유품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내가 떠나고)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고인 이제훈의 작품 리스트'가 뜨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값지고 원하는 부분이에요. 세상을 떠났는데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아닌 '작품이 이렇게 좋았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실물 DVD 같은 게 있어도 좋겠어요. 넷플릭스 구독권을 끼워줘서 '이제훈 작품 모음집'을 볼 수 있게 말이에요(웃음)"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