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은 영화 ‘소풍’에서 관록 있는 연기로 대중들에게 대한민국에서 노년의 삶과 존엄사에 대한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연기할 때 인물에 빠져서 피곤한 줄 모르고 한다. 연기를 안 했으면 나는 할 게 없었을 것 같다. 내세에 생이 있다면 다시 연기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는 주인공도 많이 하고 스타가 되어서 빌딩도 사고 싶다”면서도 “그래도 바짝 하고 끝나는 배우는 되기 싫다. 나는 여기저기 발 걸쳐 놔서 쉬지 않고 작품을 해서 다행이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영역을 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자부심은 있다”고 고백했다.
김영옥은 “정말 못하겠다고 해야겠다 싶어도 대본을 들이밀면 미친 사람처럼 내가 해야겠다고 자아도취가 된다. 잘못 생각하는 거지만 ‘다른 사람은 표현을 못할 걸’ 싶은 오만도 있다. 감독과 작가가 나를 추천했다고 하면 나를 믿으니까 준 것 아니냐. 저버리기가 안 된다. 딱 잘라 말하는 성격도 못 된다. 힘들면서도 작품을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느 작품을 해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할 때는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집중이 된다. 그거 하나로 버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배우로서 즐기면서 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영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이 졸작이든 우수작이 되든 ‘소풍’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하고 임했다. 나 하는 대로 했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영화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1961년 MBC 성우극회 1기 동기로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나문희와 호흡을 맞췄다. 60년 넘게 친분을 쌓아온 두 사람은 2016년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와 2022년 JTBC 음악 예능 ‘뜨거운 씽어즈’에도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김영옥은 “나문희와 힘든 줄 모르고 연기했다. 대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즐기면서 연기했다. 감독님은 우리가 놀면 노는 대로 내버려두고, 간섭하지 않으셨다.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했다”며 “틈나면 같이 밥 먹고 매운탕도 먹고 담소 나누고 그런 시간이 좋았다. 영화만 찍고 다닌 게 아니라 끼니가 돌아올 때마다 서로 챙기면서 우정을 돈독하게 했다”고 현장을 회상했다.
‘소풍’은 나문희 매니저의 부인이 초고를 쓴 작품이라고. 5년 전부터 영화화 논의가 진행됐지만 초반에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영옥은 “초고를 볼 때부터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나문희도 ‘소풍’에 반했다”면서 “젊은 사람도 언젠가 노인이 되지 않나. 그 누구도 ‘나이듦’을 피할 수 없다. ‘소풍’은 전 세대에게 생각할 부분을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김영옥이 소개했듯 ‘소풍’은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에서 노년의 삶과 존엄사에 대해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김영옥은 “‘소풍’은 우리 이야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흘러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리지 않았나 싶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건강하고 좋게 백세를 맞이하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건강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돈이 있어도 자식이 있어도 배우자가 있어도 자신이 다스릴 수 없을 때는 대처할 길이 없다는 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 나이에 나도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까 계단 내려오면서도 꿍얼꿍얼했다. 나이 먹으면서 오는 벽은 똑같이 느낄 것”이라며 “나도 어머니가 관절염으로 애쓰시는 모습도 봤고 작은집 할머니가 고혈압과 중풍으로 고생하시다 10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시는 모습도 봤다. 돈이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풍’을 통해 챙길 수 있는 대로 본인이 챙겨야겠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영옥은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유언을 할 정도로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였던 김영옥.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위장이 아픈 시기가 있었다. 주변에 유언을 수도 없이 장난처럼 해왔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을 어루만져주기라도 해달라고. 박원숙이 ‘유언은 젊을 때 수도 없이 하시더니 똥칠할 때까지 사신다’고 하더라”고 농담했다.
그는 “연명치료에 대해서는 아들딸에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말도 못하고 의식이 오락가락할 때 오래 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풍’이 우리 사회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존엄사를 찬성한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을 의료행위로 끌고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꼼짝도 못하는데 살려놓는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화두를 던지는 ‘소풍’은 지난 2월 7일 개봉해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정희연 동아닷컴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