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 삽입된 LG G3로 촬영한 원본 사진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롬에서 더욱 원활합니다)
"이건 취재가 아니라 납치야"
해외 출장을 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느 취재와 다르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되는 스마트폰, 'LG G3'로 '활화산'을 촬영하는 과정을 취재하는 거란다. 처음에는 멍- 했고, 뒤이어 '정글의 법칙'이 떠오르며 막연한 불안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장에서 만날 화산 탐험가 제프 맥클리(Geoff Mackley)를 검색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영상이 나오더라. (http://www.youtube.com/watch?v=VuQrUwFn6bU)
"……."
'취재 장소 = 위 영상에 나온 장소'라는 불행하고도 명백한(?) 현실을 알게 됐을 때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난 이제 죽었구나. 설마, 나도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옥으로 향한다는 건 사실 아닌가!) 대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가혹한 현실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출국을 이틀 남기고 받은 일정에는 '정글 탐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저기, 잠시만요?) 하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하루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쫄깃해지기만 했다.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너 내셔널 지오그래픽 직원이었냐"라며 내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는 "모험가가 찍은 사진은, 그 사람이 죽었을 때 더 비싼 값에 팔린다더라"라며 겁을 주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여행자 보험은 꼭 들고, 명의는 내 앞으로…. 알지?"라며 검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괜찮을 거야. 요새는 한국이 더 위험해"라며 현실적인 이야기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왜 굳이 스마트폰으로 화산 촬영을 하는 걸까. 일반인이 스마트폰으로 화산을 찍을 일도 드물 텐데, 우리 그냥 평화롭게 살아가면 안 되나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G3 카메라의 극한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G3 카메라는 '어떠한 제약 조건에서도 가장 빠르게 양질의 사진을 제공하는' 목표로 개발됐다. 따라서 화산이라는 척박한 환경은 가장 흥미로운 카메라 테스트 조건인 셈이다. 화산이라는 장소는 위험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날씨도 변화무쌍해, 용암의 모습을 온전하게 포착해내기 까다롭다.
(본 기사에 삽입된 LG G3로 촬영한 원본 사진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롬에서 더욱 원활합니다)
Day 1. 05/11
바누아투? 거기가 어디예요?
D-Day.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번 G3 프로젝트를 수행할 목적지는 '바누아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바누아투란 생소한 나라다. 필자도 그랬다. 하지만, 바누아투에 대해 오해할 필요는 없다. 바누아투는 피지 섬과 뉴칼레도니아 섬 인근에 위치한 휴양지다. 특히 호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는데, 최종 목적지를 말하니 A항공사 직원이 어리둥절했다.
"네? 도시 이름 말고, 나라 이름으로 말해주세요"
"그러니까, 바누아투요"
당황한 직원이 옆 사람을 불렀다. "바누아투가 어디야?" (참고로 바누아투의 수도는 포트빌라다)
결국, 짐 부치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밍센터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정말 미지의 나라로 떠나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바누아투에 가려면 호주 시드니를 경유해야 한다. 직항은 없다. 바누아투까지 가는 비행 시간은 약 15시간. 한국에서 호주(시드니)까지는 10시간 30분, 호주에서 바누아투(포트빌라)까지는 4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후끈후끈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TV에서 으레 보던 야자나무들이 눈 앞에서 푸르름을 가득 드리운 채 서 있었다.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리고 열대 기후 지역이 맞구나.
아담한 공항으로 들어서니 경쾌한 우쿨렐레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푸근한 인상의 여인들이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바누아투에 온 것을 환영했다. 실제로도 바누아투 사람들은 여유롭고 온화하다. 따뜻한 미소와 신나는 음악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이내 걱정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일행들과 반가움을 다 나누기도 전, 아무리 기다려도 캐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돌아가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자 불안은 현실이 됐다. 물어보니 다 끝났단다. 짐을 부칠 때 항공사에서 보인 반응이 불안해서 ‘짐을 목적지까지 다 부쳐주는 것이 맞냐’며 거듭 확인했건만, 어떻게 된 거지?
Where, is, my, bag?
필자를 비롯해 3명의 승객들이 짐을 받지 못한 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바누아투에 오는 비행기는 하루에 단 1편. 바누아투는 열대 기후 지역으로, 5월은 우기에 속해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다음 날로 미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아니, 그럼 내 짐은 언제 오지?
공항 센터에 문의했더니 잠시 기다려보란다. 헌데 여전히 다른 일만 하고 계시더라.
"언제 알아봐주실 수 있어요?"
"5분만 더 기다리세요"
10분, 15분을 더 기다렸다. 다시 기다리란다. 그리고 반응이 없었다.
"미스터….'
답답했다. 짐 태그만 검색하면 캐리어가 어디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바늘처럼 졸아들고 있는 필자에게 일행 중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바누아투 사람들이 여유로운 성격이라 좀 느려요. 이해해야 해요" 느긋한 성품이란 장점이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여행객들에게는 아득할 수밖에 없었다.
약 1시간을 기다렸건만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량하게 분실신고서만 받아왔다. 날씨는 끈적이는데, 당장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등이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기가 하루에 1번밖에 안 오니, 최소한 내일까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캐리어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빌린 것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 불안함과 찝찝함, 경험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구에게 절절하게 호소할 수 없다.
야속하게도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 시간은 오후 4시. 그래도 낮이니까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화산을 가나요? 빨리 가야 뭐든 되지. 하지만 다른 일행에게서 이어진 말은 계획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바누아투는 5시면 해가 져요. 오늘은 어쩔 수 없어요. 저녁 먹고 회의 하고, 그냥 자야 해요. 화산은 내일 출발해요"
5시에 해가 진다? 지금 이렇게 밝은데?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리조트 직원이 머리에 화환을 씌워주고 망고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웰컴!" 한 송이 꽃처럼 밝은 미소를 짓는 이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짐이며 일정이며 잔뜩 꼬여 있던 심보가 약간 누그러졌다. '그래, 내일이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그냥 기다리면 되지. 너무 마음 졸이지 말자' 조금은 내려놓기로 한다. 바누아투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을 보고나니, 내가 이토록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던가 새삼 깨달았다.
인터넷이 20MB에 100만 원?
G3 화산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앰브림(Ambrym) 섬에 있는 마룸(Marum) 분화구. 이 곳은 활성 용암 호수를 볼 수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다. 멀리 떨어진 섬인데다 화산이라는 곳이 험준하다 보니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해가 지면 헬리콥터가 뜨지 못하므로, 본격적인 일정은 다음 날(12일)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일단, 회의도 해야 하고 한국에 연락도 해야 하니 인터넷부터 연결하기로 했다. 바누아투는 아직 LTE 데이터 무제한 로밍이 지원되지 않는다. 로밍센터에서 ‘요금 폭탄을 피하려면 데이터를 차단해 두어야 한다, 카카오톡을 3번만 실행해도 1만 원이 나올 수 있다’고 신신당부를 받았다. 음성이나 문자는 된다고 들었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통신 3사 모두 연락이 안 되더라.
결국 의존할 수 있는 건 리조트 와이파이 뿐. 헌데 프론트 데스크에 와이파이 사용을 문의하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와이파이 이용료는 1시간에 (한국 돈으로) 1만 원, 3일에 5만 원입니다"
응? 와이파이가 1시간에 1만 원이라고?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골똘하고 있는데, 바누아투에 거주하는 교민인 이협 씨의 말을 듣고선 그게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누아투는 인터넷 망이 잘 구축되지 않아서 인터넷 이용료가 비쌉니다. 인터넷을 20MB 사용하면 100만 원이 나와요. 예전에는 1MB에 50만 원이었는데, 최근에 3G망이 구축되면서 나아졌죠"
그래도 인터넷을 안 할 수는 없으니, 3일에 5만 원을 내고 와이파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그나마도 불안정해 로그인하는 데 한참 걸렸다. 모든 일행들이 스마트폰을 모아두고 마치 기도하듯이 연결을 기다렸다. 새삼 한국이 IT 강국임을 느꼈다.
도마뱀과의 동침, 그리고 비
인터넷 연결도 되었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방에 들어가서 생각 좀 정리하자. 방을 찾아서 문을 여는데, 웬 작은 생물체가 나보다 앞서 재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벽을 살펴보니 몸집이 작은 도마뱀이 보란듯이 붙어 있었다(안녕?). "으악!!!"
비명을 지르자 일행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필자는 평소 작은 벌레들도 무서워한다) 나는 방 안에 도마뱀이 들어왔다며 펄펄 뛰었다. 다들 도마뱀을 쫓았지만, 그 몸짓이 너무나 가볍고 빨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도마뱀은 팔짝팔짝 인간 무리를 놀리더니 벽장 뒤로 쏙 들어갔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도마뱀은 물지는 않는다니까 그냥 자요"
아니 그래도! 어떡해! 설마 녀석이 마구 뛰어다니다가 내 얼굴에 달라붙지는 않겠지! (다행스럽게도 도마뱀은 끝끝내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도마뱀 걱정은 차츰 스러져가는데 빗줄기는 그치지를 않았다.
'내일 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간절히 빌었다. 그래야 짐을 찾고 화산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캐리어가 시드니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약 내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캐리어가 오는 비행기가 안 뜰 수도 있고, 무엇보다 화산에 갈 수가 없으니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이번 프로젝트는 화산뿐만 아니라 해변, 정글 촬영까지 예정되어 있는데다, 해가 빨리 지는 만큼 시간이 더욱 부족했다. 바누아투에 머무는 날은 14일까지. 빠듯했다.
Day 2. 05/12
출입부터 난코스, 앰브림 화산
'쏴아…'
바누아투는 해가 일찍 지는 만큼,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 어제부터 내린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7시까지 대기하기로 한다.
"조금 전 파일럿과 통화를 했고, 앰브림 화산 쪽 날씨를 파악한 뒤 다시 전화 준다고 했습니다"
"가능할까요?"
"해는 떴는데 바람이 심해서요, 헬리콥터 가능 여부 지속적으로 체크 중입니다"
그리고 8시. 포트빌라는 차차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앰브림 화산 쪽은 어떨까.
"파일럿과 다시 연락했어요. 포트빌라는 괜찮은데, 앰브림 쪽 상황이 나쁘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 참여자들 중에는 이미 앰브림 화산에서 4~5일째 지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현지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화산에서는 언제까지 촬영하시나요?"
"이곳 환경이 상당히 척박해서 악전고투 중입니다. 간밤에 앰브림 섬 아래에 있는 와이파이 안테나가 강풍에 부서져서 인터넷도 안 되고요…."
앰브림 화산의 날씨는 왜 좋지 않을까. 해안가에 있는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오면 분화구로 빨려 들어가는데, 용암이 워낙 뜨겁다 보니(온도 1200도) 분화구에 빨려 들어갔던 공기도 뜨거워진다. 뜨거워진 공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비가 되어 내린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다 보니, 앰브림 화산은 날씨 좋을 때가 드물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안전상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으니, 화산까지 가는 것 자체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이날 앰브림 화산에 가지 못했다. 속이 탔다. 출장을 왔는데 이틀 동안 공식적인 일정을 밟지 못한 셈이다. 불안정한 와이파이 망을 붙잡고, 출국 일정을 16일로 변경하기로 요청했다. (필자 외에도 대부분의 일행들이 앰브림 화산의 기상 조건 때문에 이틀 가량 귀국을 미뤘다)
G3 카메라로 포트빌라의 전경을 담다
앰브림 화산에 가지 못하는 대신, 포트빌라의 전경을 G3로 담아보기로 했다. 바누아투는 휴양지답게 각종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날 둘러본 곳은 이튼 비치(Eton Beach)과 블루 라군(Blue Lagoon).
이튼 비치로 향하는 길목에는 야자나무들이 위태로운 만큼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넓은 잎사귀를 흩날리는 모습 자체가 대자연의 장관이었다. G3로 이 장면을 담아본다면 어떨까. 물론 카메라가 향하는 풍경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진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찍어도 오롯이 그 장면을 담아낼 수 있을까.
참고로 이번 프로젝트에서 G3로 사진을 촬영하는 인력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있었다. 화산 근접 촬영은 제프 맥클리와 그 팀원들이, 나머지는 박정원 사진작가가 담당했다. 촬영에 함께 동행한 관계자 2명이 찍은 사진은 다음과 같다.
촬영을 함께한 LG전자 연구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을 간편하게 기록할 때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따라서 스마트폰 카메라는 특별한 모드를 작동하지 않고 촬영 버튼만 누르더라도,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G3 카메라는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설명했다.
G3는 스마트폰 후면에서 레이저 빔을 쏘아 피사체까지의 거리를 측정, 빠르게 초점을 맞춰주는 '레이저 오토 포커스'를 적용했다. 레이저 오토 포커스는 빛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초점을 정확히 맞추도록 한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G3의 QHD(Quad HD) 디스플레이로 감상할 수 있다. 세간에는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300PPI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300PPI 이상의 화소수를 인식할 수 있다. 인쇄물을 예로 들면 그 이해가 빠르다. 일반 잡지의 화소수가 300~440ppi, 아트북의 경우 440~600ppi를 나타내는데, G3는 538 PPI로 디스플레이가 선명하다.
물론 풀HD도 선명하지만, 섬세한 피부 표현이나 실물과 같은 질감을 나타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유명 미술관(리움 등)에서는 QHD급으로 아트북을 제작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QHD 디스플레이라면, 스마트폰 갤러리의 작은 썸네일 사진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일일이 사진을 확대하지 않고도 원하는 사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그 자체로도 감상이 가능하다.
참고로 PPI는 인치당 화소 수(Pixel Per Inch, 대각선 길이 1인치의 사각형 속에 화소가 얼마나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지 알려준다)로, 수치가 높을수록 화면이 또렷하다.
푸르른 투명함을 간직한 물결, 이튼 비치/블루 라군
바누아투의 포트빌라 인근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 이튼 비치(Eton Beach)와 블루 라군(Blue Lagoon)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 받는 장소다.
먼저 찾아간 이튼 비치, 그 곳에는 맑은 물빛이 엷은 에메랄드 조각을 품고 있었다. 바닥을 장식하는 조약돌들도 부끄러울 만큼 고스란히 비쳤다. 손으로 한 조각 떠 보았지만, 역시나 한없이 투명하기만 한 물이 흘렀다. 이 투명함이 모여 어떻게 청록의 신비함과 청량함을 빚어내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맑은 물감으로 겹겹이 그려낸 수채화 같았다.
블루 라군의 전경도 이에 못지 않았다. 블루 라군은 그 이름답게, 이튼 비치보다는 좀 더 짙은 청록빛을 간직한 장소였다. 로맨스 영화에서 세상 모르도록 한가로운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이 장소가 제격일 것이다. (각도에 따라 제각각 다른 빛을 뽐내는 바람에, 한 가지 풍경으로 단정짓기는 어려웠지만) 푸른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선명한 물결 위를 햇빛이 하얗게 스쳤고, 그 위에 나뭇잎들이 비추는 그림자의 빛깔은 초록빛으로 달큰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으로 감상해 보자.
(본 기사에 삽입된 LG G3로 촬영한 원본 사진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롬에서 더욱 원활합니다)
심신을 차분하게 하는 음료, '카바'
바누아투의 하루 해가 저무는 시각, 오후 5시. 이 시간만 되면 바누아투 주민들이 으레 마시는 전통 음료가 있다. 이름은 '카바'. 카바는 카바 뿌리의 즙을 낸 음료다. 진정제와 같은 효능이 있어 마시고 나면 심신이 차분해진다. 좀 더 많이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마약과 같이 취급하지만, 바누아투에는 주민들은 물론 목사들도 마음껏 즐기는 전통 음료다.
이협 씨는 "바누아투에서 카바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화"라고 소개했다. 과연 어떤지 직접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오후 5시가 되면 카바 바가 영업을 개시한다. 바 앞에 작은 전등이 붉게 반짝인다면, 카바 바가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카바는 저녁을 먹기 전, 빈 속에 마신다.
바 입구로 들어가는데 캬악, 캬악, 토악질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물을 뱉어내고 있다. 아니, 왜 이러지? 너무 많이 드셔서 그러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물을 뱉어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바가 조용했다.
"카바를 마실 때는 두 가지 규칙이 있어요. 조용히 마셔야 하고요, 오른손으로 마셔야 해요. 맛이 역하니까 한 번에 들이키는 게 좋습니다. 끊어서 마시면 다 먹기 힘들 거예요"
작은 컵에 담긴 탁한 빛깔의 회색 물. 맛있어 보이는 생김새는 아니니, 눈을 감고 얼른 들이키기로 한다. 첫 맛은 아리아리하고 생김새만큼 탁하기도 했는데, 끝 맛은 쌉쌀하고 쓰렸다. 떨떠름하기도 한 것이, 마치 치과에서 혓바닥을 마취한 양 묘하게 아린 느낌이었다. 맛 자체는 좀 밍밍한 칡즙.
이제서야 사람들이 바 앞에서 물을 게워냈던 것이 이해됐다. 끝 맛이 특히 좋지 않은데다 가래가 끓기 때문에 물로 헹구는 것이었다.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라지만, 개인적으로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평소 주량이 세다면 몇 잔은 먹어야 효과가 있다. 남자 일행들은 카바의 효과를 보겠다며 두 잔씩 마셨다. 여러 잔을 마실 때는 5분 정도 텀을 두어야 한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만약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캐리어를 못 찾아서 당황하던 순간에 카바를 마실걸! (블루 라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 들러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카바 뿌리를 입으로 우물우물 씹어서 즙을 짜냈다고 해요. 그리고 침을 뱉으면 더 발효가 잘 된다고…"
"읍, 지금 다 마셨는데…?"
"옛날 이야기입니다(웃음). 그럴…거예요.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지방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가게라서 가장 깨끗했어요"
앗! 그래도 이 사실을 굳이 다 먹고 나서야 말씀 해주시는 이유는 뭔가요? (잔인하시다) 카바를 마신 뒤에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아야 효능이 잘 발휘된다. 이것이 바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했던 이유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이 말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주량이 세서 그랬을까. 안타깝게도 남자 일행들은 카바의 효능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필자는 20분 뒤 약간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쉽다, 좀 더 마셔볼걸.
달이 차오른다, 가자
밤이 깊어갔다. 바누아투는 해가 일찍 저무는 만큼 하루가 짧았다. 필사적으로 시간을 아껴야 했다. 그렇다면 내일은 반드시 화산에 올라가야만 했다. 카바의 기운을 빌어 조용히 기도해 보았다. 과연, 내일은 앰브림 화산의 용암호수와 만날 수 있을까?
*본 기사에 삽입된 LG G3로 촬영한 원본 사진은 '여기'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크롬에서 더욱 원활합니다.
* LG G3, '무모한 촬영기' 2부 기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기사는 총 4부작입니다)
* 본 기사는 LG G3로 화산을 촬영한 취재기를 기행문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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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바누아투 포트빌라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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