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군 금산읍의 ‘모자 인삼상’. 어머니와 아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금산 | 양형모 기자

충남 금산군 금산읍의 ‘모자 인삼상’. 어머니와 아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금산 | 양형모 기자



인삼이 땅 자체라면, 그 이름은 어쩔 수 없이 ‘금산’일 것이다. 땅의 언저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린 흙 묻은 인삼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를 따라 다다른 곳은 ‘K-미식벨트’의 한 끝, 금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함께 꾸린 새로운 미식관광 지도에서 금산은 인삼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K-미식벨트 사업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니다. 지역의 향토 식자원과 식품명인, 농부,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식문화를 하나로 엮은 미식관광 프로그램이자 국가 프로젝트다. 2024년 장(醬) 벨트를 시작으로 2025년엔 금산의 인삼, 안동의 전통주, 광주의 김치가 이름을 올리거나 추진 중이다.

정부는 2032년까지 전국에 총 30개의 미식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K-Food Travel’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 고유의 재료와 음식이 세계 브랜드로 나아가는 길을 열겠다는 포부다.
금산 인삼시장 풍경. 금산은 국내 인삼 유통의 85%가 이루어지는 ‘인삼의 수도’다.     사진제공 | 지엔씨21

금산 인삼시장 풍경. 금산은 국내 인삼 유통의 85%가 이루어지는 ‘인삼의 수도’다. 사진제공 | 지엔씨21

금산인삼관에서 해설사가 세계 최대의 인삼주병을 소개하고 있다.

금산인삼관에서 해설사가 세계 최대의 인삼주병을 소개하고 있다.


금산 인삼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금산인삼관

금산 인삼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금산인삼관


그중 금산은 미식벨트의 중요한 모델이다. 인삼을 심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미 산업 구조로 완성돼 있기 때문이다. 음지성 식물인 인삼은 해가림 시설 그늘 안에서 시간을 먹으며 느리게 자란다. 사 년 동안 땅속에서 몸집을 키운 인삼은 사포닌 함량이 높고 약효 성분이 뛰어나다. 전국 인삼 유통량의 85퍼센트가 금산에서 이루어진다. 금산을 ‘인삼의 수도’라 부르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1500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진악산 관음굴에서 기도한 끝에 꿈에 신선으로부터 인삼을 전해 받았다는 금산 인삼의 설화. 금산군청은 강처사의 집과 설화를 재현한 개삼터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1500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진악산 관음굴에서 기도한 끝에 꿈에 신선으로부터 인삼을 전해 받았다는 금산 인삼의 설화. 금산군청은 강처사의 집과 설화를 재현한 개삼터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1500년 전 금산 인삼의 시조 강처사의 전설이 깃든 개삼터에서는 ‘K-미식벨트 금산 인삼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웰컴드링크로 나온 인삼 스무디가 흥미롭다. 인삼으로 만든 스무디라니. 인삼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얼음으로 누르니 고소함으로 바뀐다. ‘약재’ 인삼이 아닌 ‘식재료’ 인삼, K-미식벨트의 핵심인 ‘산업의 식탁화’와의 첫 대면이었다.

신안골모퉁이식당의 가마솥 백숙에 들어가는 재료를 설명하고 있는 사장.

신안골모퉁이식당의 가마솥 백숙에 들어가는 재료를 설명하고 있는 사장.

‘약재’가 아닌 ‘식재료’로서의 인삼은 닭 특유의 잡내를 완벽하게 없애준다

‘약재’가 아닌 ‘식재료’로서의 인삼은 닭 특유의 잡내를 완벽하게 없애준다


농부 형제가 운영하는 신안골모퉁이식당은 금산에서 백숙으로 이름난 곳이다. 새벽에 직접 따온 능이버섯, 직접 농사 지은 인삼, 우슬, 엄나무, 대추, 마늘을 넣어 토종닭과 함께 세 시간 넘게 거대한 가마솥에서 푹푹 끓인다. 장작불과 시간이 우려낸 국물은 과연 깊은 풍미를 지녔다. 식당 사장님의 “인삼은 고통 속에서 사포닌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인삼은 사람을 철학자로 만드는 효능도 있는 모양이다.

월영산 출렁다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충남문화관광재단이 제작한 금산 홍보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금산의 명소를 모아 가사로 만들었는데, 몇 번 반복해서 듣다보니 절로 외워져버렸다. 특히 ‘월영산 출렁다리~’ 하는 대목이 킬링파트였다.


월영산 출렁다리. 금강 상류의 경관에 눈이 시원해진다.

월영산 출렁다리. 금강 상류의 경관에 눈이 시원해진다.

기본적으로 출렁다리이므로 출렁거림이 있다. 그렇다고 겁먹을 것은 없다. 시원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출렁다리이므로 출렁거림이 있다. 그렇다고 겁먹을 것은 없다. 시원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사실 출렁다리를 걷는 것보다 다리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훨씬 더 힘들었다. 금산군에서 계단에 ‘좋은 글귀’를 붙여놓아 오르는 동안 피로를 덜 수 있었다. 가끔은 작자불명의 뻔한 소리가 있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출렁다리를 걷는 것보다 다리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훨씬 더 힘들었다. 금산군에서 계단에 ‘좋은 글귀’를 붙여놓아 오르는 동안 피로를 덜 수 있었다. 가끔은 작자불명의 뻔한 소리가 있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월영산 출렁다리는 금산군 제원면 금강로641에 있는 다리로 월영산과 부엉산(부엉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엉산이다)을 잇는 길이 275미터의 무주탑 출렁다리다. 금강 상류의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입장료가 없다!

기본적으로 출렁다리이므로 출렁거림이 있다. 그렇다고 겁먹을 것은 없다. 시원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사실 다리를 걷는 것보다, 다리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훨씬 더 힘들었다. 금산군에서 계단에 ‘좋은 글귀’를 붙여놓아 오르는 동안 근육의 피로를 살짝 속일 수 있다.

오후엔 금산인삼주 양조장. 김창수 명인은 세계 유일의 인삼주 전통명인이다. 인삼주라고 하면 대부분 마트에서 파는 담금주(소주)에 인삼을 넣은 것을 떠올리겠지만,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증류 인삼주를 생산하고 있다.
금산인삼주 체험관에서 직원이 소줏고리로 증류 인삼주를 만드는 전통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금산인삼주 체험관에서 직원이 소줏고리로 증류 인삼주를 만드는 전통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영만 작가의 ‘식객’에서 보았던 소줏고리로부터 갓 내린 60도짜리 증류주로 만든 인삼주를 한 모금 마셨는데 대단한 ‘펀치력’이었다. 양조장에서는 12.5도부터 43도까지 다양한 도수의 인삼주를 만들고 있다. 모두 순수한 누룩과 인삼 향의 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빚는 명인의 인삼주는 곧 산업의 표준이 된다. K-미식벨트의 산업화 모델이 눈앞에서 증류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꽃무릇(상사화)으로도 유명한 금산 보석사. 공원처럼 깔끔한 데다 곳곳의 화단이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지스님인 장곡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꽃무릇(상사화)으로도 유명한 금산 보석사. 공원처럼 깔끔한 데다 곳곳의 화단이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지스님인 장곡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보석사의 간판스타는 10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추정되며 1990년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됐다

뭐니 뭐니 해도 보석사의 간판스타는 10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추정되며 1990년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됐다

금산에서도 맛과 품격으로 손꼽히는 프리미엄 인삼 한정식당 ‘조무락’. 인삼을 활용한 요리들로 유명하다. 사진은 인삼떡갈비.

금산에서도 맛과 품격으로 손꼽히는 프리미엄 인삼 한정식당 ‘조무락’. 인삼을 활용한 요리들로 유명하다. 사진은 인삼떡갈비.

조무락의 인삼정과

조무락의 인삼정과


다락원 쿠킹체험장에서 직접 만든 ‘심마니볼’. 커다란 보울 속의 재료를 조물조물 반죽한 뒤 틀에 넣어 모양을 낸다.

다락원 쿠킹체험장에서 직접 만든 ‘심마니볼’. 커다란 보울 속의 재료를 조물조물 반죽한 뒤 틀에 넣어 모양을 낸다.


‘빠가만어죽’이라고 어마어마하게 크게 쓴 간판이 눈길을 끈다. 가게명보다 메뉴명이 더 큰 가게는 처음이다

‘빠가만어죽’이라고 어마어마하게 크게 쓴 간판이 눈길을 끈다. 가게명보다 메뉴명이 더 큰 가게는 처음이다

도리뱅뱅이는 작은 민물생선에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을 발라 구운 뒤 팬에 빙 둘러 내놓는 향토음식이다. 보는 재미도 있다. 지역에 따라 어종이 달라진다. 빙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피라미, 버들치를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파주인가 철원 쪽에서는 쉬리 도리뱅뱅이를 먹은 기억이 있다. 이 독특한 음식의 오리지널은 충북 단양이라고 한다.

도리뱅뱅이는 작은 민물생선에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을 발라 구운 뒤 팬에 빙 둘러 내놓는 향토음식이다. 보는 재미도 있다. 지역에 따라 어종이 달라진다. 빙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피라미, 버들치를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파주인가 철원 쪽에서는 쉬리 도리뱅뱅이를 먹은 기억이 있다. 이 독특한 음식의 오리지널은 충북 단양이라고 한다.


인삼으로 시작해 인삼으로 마침표를 찍었던 금산 여행. 이 모든 여정을 꿰고 있는 것은 역시 K-미식벨트의 존재감이었다. 금산은 인삼의 재배부터 유통, 식품 가공, 체험, 미식관광까지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다.

산업과 관광, 전통과 현대, 약재와 음식이 한 테이블에 올라왔다. 맛있는 한 끼를 넘어 지역이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방식의 선언. 금산의 인삼은 한 뿌리의 약초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식산업을 상징하는 기호가 됐다.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금산 | hmyang0307@donga.com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