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한국사업장, ‘생산 기지’ 넘어 글로벌 ‘두뇌’로…미래차 R&D 허브 선언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 속에서 제너럴 모터스(GM) 한국사업장이 갖는 위상이 근본적인 변곡점을 맞이했다. 단순한 ‘제조 거점’에 머물렀던 과거를 뒤로하고, 글로벌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핵심 두뇌’이자 미래 모빌리티 기술의 발신지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GM 한국사업장은 15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청라 주행시험장에서 ‘2026 비즈니스 전략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미래 기술의 요람이 될 ‘버추얼 엔지니어링 랩(Virtual Engineering Lab)’을 전격 공개했다. 헥터 비자레알 사장은 이날 2024년 1조 6000억 원의 흑자 달성을 기반으로, 한국을 GM 내에서 디자인, 엔지니어링, 생산, 판매 전 주기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핵심 거점으로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2018년 경영 정상화 계획 수립 이후 뼈를 깎는 구조 개선과 효율화 작업을 거쳐, 이제는 본사의 기술 파트너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주도할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가상·현실 융합한 ‘버추얼 랩’ 가동
이날 전략 발표의 백미는 청라 주행시험장의 리노베이션과 ‘버추얼 센터’의 개소다.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는 미국 본사에 이어 GM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연구개발 법인으로, 이번 투자를 통해 ‘가상화 중심 전략(Road to Virtual)’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렸다. 새롭게 문을 연 버추얼 센터는 그동안 사내 곳곳에 산재해 있던 전기 시스템 벤치, VR 워크-업 스테이션, 드라이버-인-더-루프 시뮬레이터 등 10여 개의 첨단 벤치 랩을 한곳에 집약시킨 공간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물리적 통합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가상 개발 환경과 실제 주행 테스트가 하나의 유기적인 프로세스로 연결됨으로써, 실차 테스트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막대한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비는 ‘드라이버-인-더-루프 시뮬레이터’다. 시제품 차량이 없는 상태에서도 실제 운전자와 유사한 피드백을 확보할 수 있어, 급변하는 글로벌 전기차 및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 GM이 우위를 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뷰익’ 등판…4개 브랜드 풀라인업
내수 시장 공략을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 또한 공격적이다. GM은 2026년부터 쉐보레와 캐딜락에 이어 GMC와 뷰익(Buick) 브랜드를 국내에 공식 런칭한다. 이로써 한국은 북미 지역(미국, 캐나다, 멕시코)을 제외하고 GM의 4개 핵심 브랜드를 모두 도입한 전 세계 첫 번째 시장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이는 한국 시장이 단순히 판매량이 높은 시장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를 테스트하고 선도하는 전략적 요충지임을 본사가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뷰익의 도입은 국내 준대형 및 대형 SUV 시장 판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GM은 2026년에만 GMC 3개 차종, 뷰익 1개 차종 등 총 4개 이상의 신차를 순차적으로 투입하며 메인스트림부터 프리미엄 라인업까지 촘촘한 방어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여기에 1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선행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Super Cruise)’의 적용 확대는 한국 소비자들이 갈망하던 하이엔드 주행 경험을 충족시키며 브랜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헥터 비자레알 GM 한국사업장 사장은  “2024년 흑자 기록은 GM 한국사업장에 중요한 이정표”라며 “앞으로도 차량 디자인과 엔지니어링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전 주기 역량을 한국에서 더욱 강화하는 한편, 차세대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한국 고객을 위한 첨단 주행 기술을 도입하며, 한국 자동차 생태계와 지역경제의 강력한 파트너로서 한국 시장과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