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 고기리 ‘불타는 강남 닭장’에서 만난 석현수 빅컬쳐엔터테인먼트 회장.

경기 용인 고기리 ‘불타는 강남 닭장’에서 만난 석현수 빅컬쳐엔터테인먼트 회장.




석현수 회장이 고기리에 세운 K컬처 성지 
편의점 참치마요 신화 뒤에 숨은 비화 
7000만 원 오븐과 명품 들기름의 조화 
불닭 밀키트로 글로벌 마트 진열대 조준
숯불 위에서 닭이 익는다. 세상의 눈과 귀를 사로잡던 손으로 닭을 굽는다.

경기 용인 고기리 계곡. 막국수를 먹기 위해 몰려든 차들이 언덕을 숨가쁘게 오르고 있었다. 전국구 막국수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를 지나치자 푸른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외관이 확 트인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요즘 인기 많은, 집 찾기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될 법한 범상치 않은 모양새다.

건물 외벽에는 불을 뿜는 근육질 닭 캐릭터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불타는 강남닭장’. 이 환상적인 집의 이름이다. 하얀 파라솔 아래 초록 잔디가 깔린 넓은 야외 테라스가 스프링쿨러처럼 이국적인 정취를 뿜어낸다.

고기리의 자연에 물처럼 스며들면서도 개성을 감추지 않은 곳. 야외 테라스에 앉은 남자의 모습 역시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다. 붉은 빛이 도는 알이 큰 사각 선글라스, 목에 볼륨감 있게 두른 검은 스카프, 검은색 반소매 셔츠의 조화가 감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테이블 위에 올린 두 손을 깍지 끼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반겼다. 우린 구면으로, 그는 빅컬쳐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석현수 회장이다.

그의 회사에는 신인선 등 트로트 스타 가수들과 뮤지컬배우 겸 가수 장향희, 황원주, 안무가 석예빈 등이 소속돼 활동 중이다.

중앙대 미래교육원 연기과 교수, 중앙대 아트센터 예술감독을 지낸 그는 문화·예술계에서 녹록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동경 라면산보’와 ‘일본어 작업의 정석’, ‘THE STAFF’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K팝과 트로트를 세계에 알리며 화려한 무대 뒤를 지휘하던 대부가 오늘은 검은색 셰프 앞치마를 단단히 둘렀다. 직원들과 나란히 서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 소년 같은 활기가 넘쳐흐른다.

도대체 문화·예술계의 내로라 하는 거물이 어쩐 일로 외진 계곡 구석에 닭집을 차렸을까. 의문을 꿀컥 삼키며 그와 마주 앉았다.
석현수 회장(왼쪽 3번째), 황유진 고기리 직영점 대표(4번째)와 ‘불타는 강남 닭장’ 직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석현수 회장(왼쪽 3번째), 황유진 고기리 직영점 대표(4번째)와 ‘불타는 강남 닭장’ 직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K푸드에 K팝을 더한 진짜 문화 성지를 꿈꾸다
“요즘 해외 나가보세요. 우리나라의 국격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하실 겁니다. 국격은 이렇게 높아졌는데, 정작 외국인들이 오면 한국 문화를 편하고 쉽게, 제대로 누릴 공간이 없더라고요.” 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국내외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늘 느끼거든요. 세계인이 K푸드와 K팝에 미친 듯이 열광하죠. 하지만 정작 그들이 한국에 오면 마땅히 즐기고 체험할 만한 거점이 없어요.”

석 회장은 “그저 명동이나 강남 거리를 배회하다가 휩쓸려 갈 뿐”이라고 했다. ‘과연 그 정도일까 …’ 싶기도 했지만, 석 회장은 “전 세계인이 일부러 찾아오는 프리미엄 K푸드의 성지, K컬처의 본부를 제대로 하나 세우고 싶었다”고 했다. 이것이 그가 경기도 고기리에 음식점을 낸 이유다.

“하필 고기리 계곡을 택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K팝의 성지를 꿈꾸며 매일 새벽 기도를 올렸어요. 그렇게 해서 아프리카에 상수도를 놓게 해달라고, 바다의 모래처럼 같은 뜻을 가진 동역자를 모으게 해달라고 간구했죠.”

그와 5분만 대화해 본다면 누구라도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 창고에 보물이 가득해져서 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거든요. 그러던 중 건설업을 하는 친한 동생이 이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해 줬어요. 터를 보자마자 하늘의 뜻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죠.”

그의 목소리에 단단한 힘이 실려 있었다. “바로 옆집 고기리 막국수를 먹으려고 사람들이 3시간씩 밖에서 대기하잖아요. 대기하면서 스트레스받는 분들에게 맛있고 좋은 음식을 쾌적한 장소에서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죠.”

‘불타는 강남 닭장’의 1층 매장 전경. 밖이 탁 트여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불타는 강남 닭장’의 1층 매장 전경. 밖이 탁 트여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2층에 마련된 프라이빗룸.

2층에 마련된 프라이빗룸.

2층에 달린 종이 눈길을 끈다.

2층에 달린 종이 눈길을 끈다.

문화·예술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석 회장이었지만 (뒤에 나오지만 그는 요식업에도 일가견이 있다) 경기도 외곽 계곡에 장차 K-문화의 성지가 될 ‘성채’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최근 두 달 동안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죽을 듯한 고통을 겪고 나니, 오히려 “몸에 좋은 진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한층 단단해졌다고 했다. “좋은 음식은 곧 약이거든요”.

이곳은 밤이 늦도록 사람들이 몰리는 유흥가도, 도심 먹자골목도 아니다. 
“오후 8시면 주변이 온통 깜깜해지는 외진 상권인데, 비즈니스 측면에서 모험 아닌가요?”
석 회장은 조금도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여기는 나의 실험실이자 연구소예요. 늦은 시간 유동 인구가 전혀 없는 이 외진 곳에서 우리가 맛으로 성공한다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긍정의 힘, 낙관의 힘이다.

“퇴로 없이 배수진을 쳤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메인 스트리트가 아닌 변두리에서부터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앞으로 신사동과 삼전동에도 직영점을 낼 계획이고, 제주의 명소 자리도 이미 계약을 마쳤어요.”

그는 “이곳 고기리는 그 원대한 비전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그랬다. 엔터테인먼트 컴퍼니 수장이 고기리 계곡에 음식점을 차린 이유는 배를 불리는 밥장사가 아니다. K팝에 K푸드를 얹어 ‘한 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K컬처의 전초기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문화적 청사진이다.

그래도 궁금한 질문들이 남아 있다.
“왜 숱한 푸드 종목 중 불닭을 고르셨습니까.” 
석 회장이 웃었다. 듣고 보니 단순한 이유였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 음식을 조사해 보니 불닭이더라고요. 삼양 불닭볶음면이 세계 2위라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고기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가 선글라스롤 고쳐 쓰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건 닭이 아니라 그저 라면일 뿐이죠. 상식적으로 ‘파이어 치킨(불닭)’이면 진짜 닭고기가 입안 가득 씹혀야 하거든요.”

그렇다. 불닭볶음면에는 불닭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 있지 않듯. 단순한 이유였지만, 이 단순함의 찰나를 잡아채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메리카인들을 비롯해 전 세계인이 모두 좋아하는 바비큐로 정면 승부를 걸 참입니다.”
석 회장은 6월 1일자로 강남불닭 도메인을 확보해 놓았다고 했다. 싸이로 시작된 ‘강남’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는 것이 석 회장의 주장이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없는 외국인들도 ‘강남’은 다 안다는 것. 한국에 오면 꼭 방문하고 싶은 곳, 강남.

“닭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청춘들이 모이던 고고장을 떠올리게 하죠. 제 경험상 유행은 35년 주기로 둥글게 돌아요. 일본도 지금 1980년대 후반 복고풍이 뜨겁거든요. ‘불타는 강남닭장’, 이름부터 딱 뇌리에 꽂히지 않나요? 으하하하!”

석 회장을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로만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그는 국내 요식업의 숨은 고수 중 하나다. 1995년. 대한민국 편의점 진열대를 강타한 최초의 삼각 참치 주먹밥을 개발하고 참치마요를 안착시킨 주인공이 바로 석 회장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참치마요를 처음 개발해 신세계백화점 지하 랩으로 당당히 들어갔어요. 오리엔탈 드레싱도 제가 최초로 고안했죠. 모 라면기업의 창업자가 저를 일주일 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비법을 배웠을 정도예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남는다.
“그 대단한 황금 레시피들을 왜 독점해 비즈니스로 키우지 않으셨나요.”

석 회장이 멋적은 얼굴을 했다.
“당시 저는 학교, 교육계에 몸담고 있었거든요. 아이디어만 툭 던져주고 남들 부자 만들어주는 일에 만족했어요.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로 키우지 못한 게 내심 아쉬웠죠.”

문화기획자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은 업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국내 트로트 붐이 불기 훨씬 이전에 그는 트로트의 가치와 폭발력을 알아챘다. 그의 남다른 감각과 안목이 이번에는 숯불 닭구이에 꽂혔다.

석 회장과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1층은 일반 매장, 2층은 좀더 고급스러운 프라이빗룸이 있었다. 단체 회식은 물론 회의에 공연까지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첫 느낌은 ‘마치 갤러리 같다’는 것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고목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모 대기업 임원이 갤러리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사들였다는 테이블이다. 사실은 ‘테이블 형태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맞겠지만, 석 회장은 이 작품을 실제 식탁으로 쓰기로 했다. 

오픈 소식에 다수의 스타들이 앞다투어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이들의 영상은 매장 밖 도로변에 설치된 대형 LED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참여한 스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유지나, 허찬미, 하루, 홍성윤, 조정민, 나상도, 윤태화, 최재명, 길려원, 일민, 임찬, 나율, 남승민, 장향희, 채윤, 남궁진, 염유리 등이다.

“가게를 연다니까 장사익 선생님이 직접 써서 보내주신 글귀입니다.”
석 회장이 내민 사진 속에는 국민 소리꾼 장사익이 쓴 친필 글귀가 보였다. 그 내용이 재밌다.
‘먹는다 꼬끼요, 먹는다 슬픔을’.

국민 가객 장사익이 석현수 회장에게 직접 써서 보내온 글귀.

국민 가객 장사익이 석현수 회장에게 직접 써서 보내온 글귀.


장사익은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슬픔마저 먹어치운다고 노래하는 가인(歌人)의 시적 감성에서 현자의 혜안이 만져지는 것만 같다. 나도 한 줄 얹고 싶어졌다. 사실은 장사익의 글을 거꾸로 읽은 것이지만. ‘꼬끼오를 먹으면, 슬픔이 사라진다’. 

2층 매장 입구에 걸린 묵직한 구리 종이 눈길을 끈다. 아마 어느 날, 가장 기분 좋은, 신의 10년치 축복을 하루에 다 받은 누군가가 저 종을 울릴 것이다. 

메뉴판을 구경해 보기로 한다. 닭구이가 메인으로 불닭구이, 양념구이, 간장구이, 소금구이 구성이다. 불닭구이는 매운맛 단계가 있다. 나 같은 맵찔 손님은 1~2단계면 족할 것이다.

식사메뉴는 국수로 유명한 전국구 명소답게 국수 리스트로 승부. 닭장 칼국수, 닭장 곰탕, 초계 국수, 초계 비빔국수가 있다. 이 밖에도 뼈없는 불닭발, 닭장 초계무침, 닭장 흑돈소세지, 닭장 오뎅탕, 닭장 떡볶이, 고추장 더덕구이도 메뉴판에서 볼 수 있다.

막국수 메뉴도 포진했다. 유명 막국수 맛집 옆에서 막국수를 리스트에 올리다니, 석 회장의 배짱이 느껴진다. 들기름 막국수, 물 막국수, 비빔 막국수뿐만 아니라 혀가 얼얼해지는 닭장 불막국수도 있다. 숯불 닭구이, 더덕구이, 불닭 오믈렛에 계란찜과 주먹밥을 묶은 세트메뉴도 있다.

7000만 원짜리 오븐과 명품 들기름의 조화
“음식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려면 결국 첫째도 재료, 둘째도 재료입니다.” 
테이블 위에 커다란 은빛 쟁반이 놓였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숯불 소금구이다.

이 집의 자랑은 닭을 구울 때 숯과 장작을 함께 쓴다는 것이다.

“오븐 한 대에 7000만 원이에요. 가장 싼 모델이 5000만 원인데 맛을 위해 최고급 특수 오븐을 과감히 들였죠. 참나무 장작과 참숯을 절묘하게 섞어 굽습니다.”
“굳이 숯과 장작을 섞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석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숯과 장작은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했다. 장작구이는 기름기가 빠져 담백하지만 자칫 고기를 퍽퍽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숯은 불향을 입히기에는 좋지만 초기 점화 시간이 필요하고, 유해 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석 회장은 셰프, 직원들과 함께 장작과 숯의 배합을 수없이 실험, 연구한 끝에 황금배합을 얻어냈다고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육즙을 완벽히 가뒀죠.”

닭장 숯 소금구이. 장작과 숯에서 구워내 담백하면서도 촉촉한 육즙을 맛볼 수 있다.

닭장 숯 소금구이. 장작과 숯에서 구워내 담백하면서도 촉촉한 육즙을 맛볼 수 있다.

석 회장이 제주도에서 공수해 왔다는 천연 암반 소금을 톡톡 찍어 닭다리를 건넸다. 입안에서 은은한 참나무 향이 기분 좋게 터진다. 씹을 때마다 바삭한 껍질 밑으로 구수한 육즙이 흘렀다.

소금구이와 함께 제공된 접시에는 얇게 썬 양배추채, 마카로니 샐러드, 베이크드 빈스가 1980년대 경양식집처럼 정겹게 담겼다. 

석 회장이 말했다. 
“치킨이 왜 항상 기름진 튀김이어야 하죠? 사실 우리의 오리지널 치킨은 구이예요.”
그는 “통닭구이야말로 진짜 한국 치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라이드 치킨은 미국 문화라는 것. 심지어 그는 “젠슨 황이 여기 들러 이 숯불구이를 맛보면 프라이드치킨은 쳐다보지도 않을 걸요”라고 자신했다.

프라이드 치킨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한국 치킨을 맛 본 외국인들이 “판타스틱”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나의 주장은 “한국 치킨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한국 치킨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의 사장님들이 튀긴 치킨”이라는 것이다.

혹독했던 IMF와 금융위기시절, 얼마나 많은 석사 박사, 대기업 부장님들이 일자리를 잃고 하루 아침에 치킨집 사장님이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분들이 ‘더 맛있는 치킨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경쟁했을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 어마어마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치킨이 오늘날 세계인의 치킨 세계관을 새로 쓰고 있는 코리안 치킨의 조상님이신 것이다.

나의 장황한 주장에 석 회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땔감 하나에도 전력을 다 하는 석 회장이 입으로 들어가는 재료를 소홀히 할 리 없다. 사실 그는 재료에 미친 사람이다. 들기름만 해도 시골 방앗간에서 100% 국내산 들기름을 공수해 오고 있다(차마 가격은 밝히지 않겠다). 매일 새로 담그는 신선한 겉절이는 기본이다. 

“셰프가 원가 생각하면 당장 적자 난다고 말렸거든요. 저는 적자만 안 나면 된다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였어요.”

그에게 음식점 운영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 베푸는 선교 사업의 일환이다.  먹는 사람이 행복해야 진짜 음식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들기름 막국수의 고소함도 훌륭했지만, 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메뉴는 뒤따라 나온 닭칼국수.

매일 직접 고아내는 뽀얀 육수 그릇에 커다란 닭 다리가 통째로 누워 있다. 
“제주 황칠나무를 비롯해 구기자 등 각종 귀한 한약재를 듬뿍 넣고 오래 끓여 낸 겁니다.”

당연히 국내산 닭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데 수입산 닭은 뼈에서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설렁탕도 한우 우족을 써야 뽀얀 국물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닭 육수도 무조건 국내 닭을 ‘통째로’ 써야 맑고 시원한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석 회장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장모에 대해 “어릴 적 부산에서 자라 자수성가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 장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맑은 이북식 닭장국. 불타는강남닭장의 닭 육수는 장모님의 레시피를 완벽하게 복원한 것이라고 했다.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날계란 노른자를 톡 터뜨린 들깨 간장 소스를 쓱 내밀었다.

큼직한 닭다리 하나가 통째로 들어간 닭장 칼국수. 면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들기름 소스에 찍어 먹으면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면을 다 먹은 뒤 육수에 찰밥을 말아주면 삼계탕이 된다. 찰밥을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큼직한 닭다리 하나가 통째로 들어간 닭장 칼국수. 면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들기름 소스에 찍어 먹으면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면을 다 먹은 뒤 육수에 찰밥을 말아주면 삼계탕이 된다. 찰밥을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소바나 일본 츠케멘처럼 면을 국물에서 건져 소스를 찍어 드셔 보세요. 제 특수 비법입니다.”
“칼국수 면을 소스에 찍어 먹다니, 확실히 기발한 방식이네요.”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가 하는 거죠. 간을 세게 먹고 싶은 사람도 있고 순수한 간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거든요. 이 황란 소스에 찍어 먹으면 들깨 향의 신세계가 열려요.”

맑은 국물에서 칼국수 면을 건져 노른자 소스에 푹 담겼다. 고소함과 감칠맛이 입안에서 펑 터지는 느낌이다.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 여성들이 환호하며 지갑을 열 맛이네요.”

불타는 강남 닭장의 숨은 비밀병기 ‘들기름 막국수’. 진짜 들기름의 향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해준다.

불타는 강남 닭장의 숨은 비밀병기 ‘들기름 막국수’. 진짜 들기름의 향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해준다.

석 회장은 나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기분 좋게 어깨를 들썩였다. “아직 놀라기 일러요. 면을 다 건져 먹었으면 이제 이 쫀득한 찹쌀밥을 남은 육수에 말아 보세요. 칼국수가 순식간에 보양식 삼계탕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삼계탕과 칼국수의 하이브리드. 원가가 높아 이 메뉴는 하루에 딱 20그릇만 한정 판매한다. 점심 시간에 고기리 계곡까지 일부러 찾아와 준 고객들에 대한 보상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숯 불닭구이’.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깊은 매운맛을 지닌 ‘코리안 스파이시(Korean Spicy)’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그니처 메뉴인 ‘숯 불닭구이’.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깊은 매운맛을 지닌 ‘코리안 스파이시(Korean Spicy)’의 정수를 보여준다.

대망의 시그니처 메뉴인 불닭이 둥근 철 쟁반에 담겨 등장했다. 새빨간 양념에 통깨가 솔솔 뿌려진 자태가 곱기만 하다. 혀 끝의 침샘이 몸부림을 친다.

“가장 순한 1단계로 준비했어요. 맵기 수준에 따라 1, 2, 3 볼케이노 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볼케이노 불닭도 맛을 보시겠어요?”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조심스레 살점 하나를 베어 물었다.
캡사이신으로 혀를 때리는, 폭력적인 매운맛이 아니다. 은은한 숯불 향이 납작하게 깔린 최고급 양념치킨 맛이다. 매운 음식을 기피하는 사람도 두려움없이 웃으며 뜯을 수 있는 맛.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시원한 동치미 육수 베이스의 물막국수를 들이켜니 개운하게 씻겨 내려갔다. 

전 세계 슈퍼마켓에 불닭 밀키트를 까는 그날까지
“7월 중순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공장이 가동됩니다. 본격적으로 해외 밀키트 사업이 전개되는 거죠.” 그의 선글라스 너머 시선은 고기리 계곡을 훌쩍 넘어 바다 밖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 대형 슈퍼마켓에 강남불닭 밀키트를 쫙 깔 겁니다. 현지 공장을 꼼꼼히 섭외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할 계획이에요.”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공장형 밀키트 시장에 진짜 닭고기가 씹히고 숯불 향이 살아있는 프리미엄 불닭으로 도전장을 내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이 석 회장의 머릿속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일본 문화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일본 바이어들도 닭곰탕, 육개장 같은 K푸드에 대한 니즈가 폭증하고 있다. 우리가 현지화된 밀키트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매장 앞 대형 돌간판과 포즈를 취한 석현수 회장.

매장 앞 대형 돌간판과 포즈를 취한 석현수 회장.

석현수 회장에게 요식업은 K컬처를 전 세계에 타격감 있게 전파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아프리카에 상수도를 놓아주고, 바다의 모래처럼 수많은 동역자들을 양성하겠다는 그의 새벽 기도가 떠올랐다. 그는 말했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매일 눈을 뜹니다. 어쩌면 이 원대한 계획은 제 인생에서 걸어보는 마지막 승부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났으니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유산 하나는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닭 한 마리로 세계를 품겠다는 그의 야심은 꿈이라기보다 유쾌한 축제에 가까워 보였다. 온몸이 부서져라 부딪치고도 소년의 얼굴로 웃어버리는 사람. 고기리에서 시작된 불닭의 뜨거운 날갯짓이 지구촌 방방곡곡 마트 진열대를 밀키트로 채우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때마침 외벽의 매장 스피커에서는 석현수 회장이 직접 작곡, 작사했다는 로고송 ‘고기요 꼬끼오’가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닭장 위에는 암탉이 고기요 꼬끼요
숯불위에는 요리가, 강남 닭장에는 사랑이 행복이~
불타는 강남 닭장은 K푸드의 메카, K푸드 성지
불타는강남 닭장, 강남 파이어 치킨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