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조연’ 차엽 “이제 깡패 대신 ‘러블리 털보’ 할래요” [인터뷰]

입력 2024-07-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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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실제로는 꽤 ‘러블리’하답니다?”

배우 차엽(김종엽·38)은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커다란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 부리부리한 눈매 때문에 그동안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악역을 주로 맡아왔다. 최근 14.2%로 종영한 SBS 드라마 ‘커넥션’의 마약 카르텔 행동대장, 넷플릭스 ‘도적: 칼의 소리’의 주먹 담당, SBS ‘스토브리그’의 까칠한 주전 포수 역 등이 그랬다.

하지만 평소 모습은 이런 캐릭터들과 정 반대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결혼한 7살 연하 아내 앞에서는 “툭하면 웃고 별 거 아닌 걸로 티격태격하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그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끌어내주는 아내는 배우 고규필 덕분에 만났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초롱이’가 그에게 ‘사랑의 큐피드’가 된 셈이다.

“아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예요. 아내와 인연이 있던 (고)규필 형이 저와 술 한 잔 하고 있을 때 ‘너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라며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대요. 만나보니 어느 순간에 제가 의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다!’ 싶었죠. 저의 비혼주의를 와장창 깨버렸어요.”

나이차 때문에 가끔은 “세대 차이가 나서 혼자 화장실에서 SNS를 뒤져보며 트렌드를 따라가려 노력”하는 ‘귀여운 남편’이다. 아내는 그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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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속사를 찾고 있는 사이에 ‘커넥션’을 찍게 돼 일정 정리부터 운전까지 혼자 다 했어요. 체력적으로 꽤 힘에 부쳤죠. 아내는 그런 저를 위해 모든 촬영 마다 메이크업을 해줬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아내 덕분에 힘이 났습니다.”

아내를 언급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새신랑의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차엽은 아내가 확 바꿔준 자신의 “부드럽고 ‘달달’한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 변신에 대한 오랜 갈증을 풀기 위해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수염까지 밀었다.

“김문교 감독님이 때마침 신혼여행 중에 전화해서 제안을 주셨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마지막에 한 마디를 하시는 거예요. ‘이번엔 수염을 미셔야 합니다!’라고요. 와, 그때부터 손에 진땀이 나던데요. 오랫동안 기른 수염을 깎으니 마치 벌거벗은 기분이 드는 거 있죠. 대신 헤어스타일은 제가 제안했어요. 극중 맡은 오치현이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속 채치수 캐릭터처럼 겉으론 우직하고, 내면엔 여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수염 밀고, 헤어스타일을 정돈한 채로 사진을 찍어 감독님께 보냈더니 0.1초 만에 ‘정말 좋습니다’라고 답장이 왔어요.”

‘커넥션’으로 얻은 자신감과 아내로부터 받은 사랑의 기운을 토대로 또 다른 이미지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코믹하고 섹시한 ‘러블리 털보’가 되는 것”이다.

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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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욱하고, 덩치 큰 악역을 주로 많이 소화했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바라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진 않았어요. 저, 사실은 코믹하고 섹시한 연기 잘하거든요. ‘차엽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어?’라고 놀랄 만큼 새로운 모습들이 많아요. ‘커넥션’에서도 정순원 배우가 맡은 허주송 캐릭터가 가장 탐나서 집에서 혼자 연습해본 적도 있어요. 앞으로는 상상한 적 없는 새로운 수식어로 불리고 싶어요. 아, ‘러블리 털보’는 어때요? 하하!”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 그는 “연기를 그만두려 쉰 적이 있어서 햇수로 따지면 20년이 채 안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20대 막바지에 방황하며 평범한 직장인부터 필라테스센터 상담원, 서촌 음식점 설거지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당시는 직접 프로필을 내러 제작사를 돌던 시절이었어요. 한 제작사에 제 프로필을 내려놓고 왔는데 열흘 뒤 가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 봤어요. ‘현타’가 오더라고요. 더 이상 연기하지 말자 마음먹고 아는 형 회사에 취직해 잡일을 도왔죠. 그런데 때마침 한 독립영화 섭외 제안이 온 거예요. 그래서 유종의 미로 생각하자 싶어 촬영했어요. 그게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였어요. 영화가 업계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으면서 제게도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시 돌아온 건 역시나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서겠죠. 연기를 준비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만큼 쾌감도 커요. 그 감정은 어떤 것과도 견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그가 달려온 버팀목은 촬영 현장을 오고 가면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커넥션’에서 마약 카르텔 ‘이너써클’ 멤버였던 박태진 역 권율, 원종수 역 김경남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극중 이름을 따 ‘태종치’로 불리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는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권율 형은 현장에서 ‘C감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연기 고민이 들 때 형한테 물어보면 뭐든지 답이 나왔죠. (김)경남이도 저보다 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냉철해요. 셋이서 아지트에서 모이는 장면을 최대한 돋보이게 준비하고 싶어서 매일 같이 모여서 연습했어요. 그러면 맛집에 일가견이 있는 율이 형이 우리를 정말 다양한 맛의 세계로 인도했죠. 형의 집에서 별의별 메뉴를 먹느라 살이 쪘어요. 이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맛집 탐방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의 출세작으로 손꼽히는 SBS ‘스토브리그’도 마찬가지다. 한 야구단의 이야기를 그린 2019년 종영한 ‘스토브리그’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홍기준, 윤병희, 하도권, 채종협 등은 그의 또 다른 “형제”가 됐다.

“우리 모두 비슷한 처지였고, 그래서 더 서로의 아픔을 잘 알았어요. 순식간에 엄청나게 끈끈해졌죠. 그런 우리가 이제는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니까 정말 기뻐요. 종영한지 5년째인데 아직도 단체문자메시지방에 ‘오늘 시간 되는 사람?’하면 우르르 나올 정도예요. 형님들은 아직 새 소속사를 찾고 있는 제게 정말 많은 조언을 주고 있어요. 일본 드라마를 주연하고 스타가 된 막내 (채)종협이는 얼마 전 모임에서 1차 식사비를 쐈어요. ‘형님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어휴, 뿌듯하던데요. 제게 많은 형제가 생긴 느낌이에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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