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 반감의 표현… 우리 스스로 자부심 깎아내려
부산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이모 경위(39)는 5년 전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 제출한 아버지 직업란에 경찰 대신 ‘공무원’으로 적어 낸 것이다. 이 경위는 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애들이 아빠가 ‘짭새’라고 놀리는 게 싫어요.” 이 경위는 “경찰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지만 어린아이들조차 경찰을 ‘짭새’로 부른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 입은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비속어는 이들의 자긍심을 깎아내리고 사기를 꺾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경찰과 군인을 각각 지칭하는 ‘짭새’ ‘군바리’ 등의 단어는 이미 일상어가 됐다.
권재일 국립국어원장은 “이들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사전에 나오지 않지만 ‘짭새’는 1970년대 학생운동가를 잡아갈 때 ‘잡는다’는 말에 마당쇠나 구두쇠처럼 남을 낮춰 부르는 접미사 ‘쇠’가 붙은 것이며 ‘군바리’ 역시 ‘시다바리’처럼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바리’가 붙은 단어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리는 ‘무리’라는 뜻의 일본어 ‘바라(輩·ばら)’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부정적인 비속어가 널리 퍼진 데는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군과 경찰의 역할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돼 실제 군인이나 경찰의 ‘직업 자부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6개월 전 제대한 박대윤 씨(23)는 “휴가 나왔을 때 ‘군바리 지나간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나 경찰청이 비속어 순화운동에 나선 적은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인이 그런 단어를 쓰지 않으면 좋겠지만 우리 문제를 내놓고 이야기하기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 1회 야학에서 강의 봉사를 하는 안양경찰서 신회식 경장(37)은 틈날 때마다 “어머니들, 제발 손자나 손녀에게 ‘말 안 들으면 경찰이 잡아간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경찰이나 군인 모두 이제는 시민들을 섬기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며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표현은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