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외교관에게 귀감이 되길” 외교영웅 이대위 선생 동상 건립 캠페인 착수한 반크

입력 2024-03-13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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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미래 외교관에게 귀감이 되도록 이대위 선생의 동상을 국립외교원에 설립하자는 ‘이대위 동상 건립 제안 캠페인’을 전개한다.

현재 미래 외교관을 양성하는 국립외교원에는 고려시대 때 담판을 벌여 땅을 되찾은 서희와 조선시대 때 납치된 조선 백성을 구한 이예 선생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 역사 속 최고의 외교관으로 평가받는 서희 선생(942·998)은 고려시대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자, 거란 적장을 찾아가 거란 장군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통해 물리적 전쟁을 하지 않고 적군을 철수시켜 옛 고구려의 영토였던 강동 6주를 되찾은 외교 영웅이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2022년 12월 27일 외교부 청사 리셉션홀의 명칭을 ‘서희홀’로 명명했다.

외교부 청사 18층에 자리한 서희홀은 신입 외교관 임명장 수여, 퇴임식, 주요 외교 사절 만찬 등 외교부의 중요한 행사가 이뤄지는 장소이다. 중요한 장소에 서희 선생의 이름을 붙여 고려시대 외교관인 서희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고자 했다.

또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국 외교관을 교육하는 국립외교원에 서희 선생 동상을 건립했다.

서희 선생 동상 외에도 대한민국 외교부는 2015년 3월 25일 조선시대 통신사 이예 선생(1373~1445)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을 국립외교원에 설치했다.

충숙공 이예 선생은 최초의 조선 통신사로 조선 전기에 대일 외교를 안정화한 인물이다. 그는 28세부터 71세까지 무려 44년 여 동안 왕의 사절로 일본을 오가며 협상을 통해 일본에 납치되었던 667명의 조선인 포로를 구출한 외교 영웅이다.

외교부는 2009년, 2010년에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고려시대 때 서희 선생, 조선시대 때 이예 선생을 각각 선정했고, 외교관을 양성하는 국립외교원에는 시대별 최고의 외교관인 서희 선생과 이예 선생의 동상이 설립되어 있다.

반크는 대한민국 외교관을 배출하는 국립외교원에 우리 역사 속 최고의 외교관으로 인정받는 고려시대 서희 선생과 조선시대 이예 선생 동상을 설치해 미래의 한국 외교관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한 것처럼, 대일항쟁기(일제 강점기) 때 재외동포에게 최고의 외교관이 되어준 이대위 선생의 동상도 건립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대위 선생은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때 조국을 빼앗긴 상황에서 미국 한인 동포들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주미 한국 대사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의 한국 통역관을 자처하며 여권이 없어 미국 입국이 거부된 한인들의 신원 보증인이자 이민 수속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12년부터 1920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입국하는 애국지사 200여 명, 유학생 500여 명, 한인 여성 70여 명이 그의 도움을 받았다. 미국에 입국하는 한인 대부분의 이민국 서류 도착지가 이대위 선생의 주소일 정도로 한인들에게 그의 도움은 컸다.



미주 한인 동포를 보호하고자 노력한 이대위 선생의 노력은 1913년 6월 25일 발생한 헤미트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 헤미트란 지역에서 한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에게 일본인 노동자로 취급되며 집단으로 배척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건과 관련해 일본 외교관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를 받으니 미국의 한인들 관련 사건 역시 일본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대위 선생은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지금 미국의 한인은 일본에 강제 합병되기 전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 일본인과는 무관하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고 설득을 시도했다. 결국 미국 국무장관이 이러한 주장을 인정했고, 이대위 선생은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려는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한인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대위 선생은 본인이 창립에 참여하고 미주지역 총회장으로 활동했던 ‘대한인국민회’가 미국에서 한국의 임시정부이자 영사관 역할을 하는 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였고, 해당 단체는 공식 정부 기관으로 위임받을 수 있었다.

1913년 7월 미주 한인 유학생 보증 입국 건을 통해서도 동포들을 보호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인 청년 6명이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채 미국에 입국했고, 그들은 이민국 격리소에 수용됐다. 이들 중 일부는 일본으로부터 고문을 받아 미국으로 피신한 독립운동가였다. 이대위 선생은 이들을 구하고자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설득했고 결국 그들은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다.

100년 전 미주 한인 동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헌신한 이대위 선생의 삶과 태도는
오늘날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대한민국 외교부와 외교관이 가져야 할 책임과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나침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반크는 이대위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미래의 한국 외교관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국립외교원에 이대위 선생 동상을 건립하는 캠페인에 착수했다. 반크는 캠페인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 배포하고, 반크의 국가 정책 청원 사이트인 울림에 캠페인 관련 청원을 게시했다.

반크가 제작한 포스터에는 “이대위 선생의 동상을 국립외교원에 세우는 것은 재외국민 보호의 시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대위 선생의 업적과 동상 건립 필요성을 함께 보여준다.

반크가 게시한 정책 청원엔 재외동포 등 해외의 한국인 보호를 위한 외교관으로서의 역량 증진과 이대위 선생의 업적을 연결 지어, 이대위 동상 건립의 의미와 필요성을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외교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해외의 사건·사고 현장에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영사 서비스를 통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외교부가 100년 전 재외동포 보호를 위해 헌신한 이대위 선생의 동상을 국립외교원에 세우는 것은 재외국민 보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이대위 선생의 동상이 세워지면, 국립외교원에서 외교관으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역량을 키우게 될 미래 외교관들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헌신한 이대위 선생의 삶을 닮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라는 청원 내용을 통해 청원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반크는 포스터와 청원을 통해 이대위 선생의 동상이 국립외교원에 건립될 수 있도록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국가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국회의원과 공무원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양형모 스포츠동아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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