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한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사진)의 냉철한 판단이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빛났다. 67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퍼거슨 감독은 준비된 전술과 전략으로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다. 박지성을 출전시킬 것처럼 말을 늘어놓은 언론 플레이와 상대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는 치밀함, 우승을 위한 필승 카드 장착까지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정상에 우뚝 섰다.
○ 모두를 놀라게 한 하그리브스 선발 출전
퍼거슨 감독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내세운 오언 하그리브스 카드는 효과 만점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하그리브스를 내세워 첼시를 공수에서 압박했다. 그의 측면 미드필더 선발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그리브스는 경기 후 평점 8을 받았을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맨유의 우승에 일조했다.
하그리브스가 출전하면서 박지성은 자리를 잃었지만 퍼거슨 감독은 “우승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그리브스의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퍼거슨 감독은 백전노장 라이언 긱스의 경험과 나니의 공격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박지성을 관중석으로 올려 보냈다. 박지성을 최소한 교체멤버로 포함시킬 것처럼 말했지만 그가 제출한 출전선수 명단은 전혀 달랐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전략적인 선택은 제대로 맞아 들었다.
○ 영리한 퍼거슨 경
퍼거슨 감독은 호나우두를 왼쪽에 고정시켰다. 첼시의 오른쪽 풀백을 맡은 에시앙을 집중 공략하기 위한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인 결정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정규리그에서 측면 미드필더들에게 위치 변경을 자주 요구했지만 이날 만큼은 호나우두의 자리는 거의 고정이었다. 전문 수비수가 아닌 에시앙은 호나우두와 에브라의 측면 돌파에 속수무책이었다. 선제골도 호나우두가 신장이 작은 에시앙을 따돌리고 헤딩슛으로 넣었다. 퍼거슨 감독의 노림수가 적중한 장면이었다. 영국 언론들은 “퍼거슨 감독이 호나우두를 내세워 에시앙을 집중 공략한 덕분에 맨유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맨유의 공격 전술에 높은 점수를 줬다.
○ 비디치와 드록바 매치업
결승전을 앞두고 유럽의 모든 언론은 맨유 리오 퍼디난드와 첼시 디디에 드록바가 방패와 창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맨유 비디치가 부상에서 늦게 회복한데다 퍼디난드가 드록바에게 유독 강했다.
그러나 퍼거슨은 드록바 수비를 비디치에 맡기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었지만 몸싸움에 능한 비디치는 임무를 120수행했다. 거친 몸싸움과 한발 앞선 수비로 드록바의 발목을 조였다. 그는 결국 연장 후반 11분 드록바를 흥분하게 만들어 퇴장까지 이끌어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