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그라운드엿보기]훈련일지=생존전략

입력 2008-07-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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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환아, 커버가 들어오니까 안쪽으로 돌파해.” “볼을 정지시키지 말고 움직이면서 플레이 해야지!” 필자가 20여년 전 현역시절 코칭스태프로부터 경기 중 종종 주문받던 얘기들이다. 최근 책장을 정리하다 프로 시절 3년 간 매일 기록한 훈련일지를 발견했다. 4-4-2나 4-3-3 전술과 세트플레이, 부분전술 등과 관련된 훈련내용이 담겨있었다. 특히 상대 선수들에 대한 장·단점, 또는 특이한 습관 등 자세한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당시 필자는 오른쪽 윙을 맡았는데 1:1 대응 상황에서 상대 수비수가 커버 플레이를 하면 안쪽으로 돌파하거나, 아니면 빠른 방향전환을 통해 주변 선수를 이용하는 것 등의 내용이다. 거의 모든 상대 선수들이 필자보다 신장이 크기 때문에 미리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악해 놓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그래야 경기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상대팀 왼쪽 수비수들에 관한 정보는 모두 꿰차고 있었다. 수비수의 습관적인 행동과 특징, 볼 컨트롤, 수비자세와 방법, 순간적인 동작, 스피드, 패스경로 등이다. 물론 K리그 초창기에는 팀 수가 적어 가능했던 일이지만, 지금도 통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훈련일지를 보면 경기 후의 느낀 점까지 포함해 3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당시 훈련일지를 쓴 동기는 경기 중 나타나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외국 빅리그에서 뛰고 싶은 희망도 있었다. 외국 진출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프로생활이 앞날 개척에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그래서 선수 시절의 모든 것이 담긴 기록을 찾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짧은 시간이나마 과거로의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은 순간이기도 했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축구 선수라면 훈련일지를 매일 쓰라고 권하고 싶다. 앞으로 지도자가 되거나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직업을 택하게 되더라도 과거 기록은 미래 설계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선수시절 훈련일지를 기록을 하지 않으면 좋은 기억이나 나쁜 일들을 잊어버리기 쉽다. 훈련일지를 기록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기량 향상을 도모할 수 있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나 지도 스타일 등에 대해 미리 성찰해 볼 수도 있다. 훈련일지가 추억의 기록이면서도 미래 개척의 참고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축구선수의 기량 향상에는 지도자의 역량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본인의 노력도 매우 중요함은 불변의 진리이다. 경기 중 마주치는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숙지하지 않으면 좋은 기량을 갖고도 경기를 지배하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조금 기량이 처져도 상대를 속속들이 알면 이길 확률이 높다. 상대방 경기를 많이 보고 분석해 훈련일지에 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 종 환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학생들에겐 늘 ‘현실적이 되라’고 얘기한다. 꿈과 이상도 품어야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도 구체적인 문제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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