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치료·인터뷰…현장 떠나니 더 바빠”

입력 2009-11-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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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독’ 김인식 한화 고문은 현장에서 물러난 뒤 제자들은 물론 야구 관계자들과의 만남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국민감독’ 김인식 한화 고문은 현장에서 물러난 뒤 제자들은 물론 야구 관계자들과의 만남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영원한 국민감독' 김인식 한화 고문을 만나다

장관이 퇴임해도, 국회의원이 낙선해도 전(前)자는 붙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들었다. 그러나 직함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신문 인터뷰에서 그러긴 어렵다. 즉 엄격히 말하자면 그에게도 고문님, 혹은 전 감독님이란 호칭이 맞다. 그러나 그를 만나는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같이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김인식 감독(62). 현장을 떠나고 나서야 ‘국민감독’은 수식어가 아닌 ‘팩트’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할일 없이 바빠”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소설 제목이 돌연 떠오른다. 누군가가 끝났다고 느낄 때는 죽거나 해고되거나 미움 받을 때가 아니라 잊혀질 때가 아닐까. 이 잣대를 적용하면 김인식 감독은 불멸이자 영원한 현역일 테다.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말리지 않는다.’ 정치 9단 김종필 전 총리의 용인술이라는데 먼저 아쉬운 소리 꺼내지 않고, 절대 남 탓하지 않는 인품은 김 감독에게 명장을 넘어 인격자의 후광을 더해준다. 그의 곁엔 늘 사람이 모이고, 언제나 적이 없다.

감독이라는 권력을 벗어던졌는데 오히려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예외적 현상은 오직 김인식이어서 수긍이 가능하다. 한국정치도 가지지 못한 어른이다.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부터 박찬호까지 만남을 청했다. 일구회 야구대상 등 여기저기서 수상자 선정을 알려왔다. SK 김성근 감독은 일본에서 “(시상식에) 꽃다발 들고 가겠다”고 약속했단다. 은퇴한 옛 제자 정수근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일본에 진출한 김태균과 이범호도,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끝까지 품어주었던 추신수도 안부를 물어왔다.

“사람들이 궁금하다네.” 사실 김 감독의 최근 일과는 오전에 집 주변 산책, 낮에 침 치료와 재활, 저녁에 언론 인터뷰와 모임 약속으로 꽉 차있다.

밀려드는 취재 요청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선별 기준’을 정했다. 감독 시절 담당기자부터 챙겨주기로. 인터뷰를 마친 뒤 저녁식사 장소도 예전 그대로였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김 감독다운 발상이다.
김인식 한화 고문.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김인식 한화 고문.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한화 이야기 안하는 한화 고문

약속을 잡은 24일 저녁. 잠실까지 가는 길은 심하게 막혔다. ‘김인식 감독을 만나러 간다’고 말하자 운전기사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차라리 한화 감독 그만두신 것이 잘된 일 같다”고 촌평했다. 김태균 이범호가 일본에 진출했고, 송진우 정민철 등이 은퇴했다. 입대 예정자도 넘쳐난다. 나가사키에 있는 한대화 감독의 한숨소리가 한국까지 들릴 지경이다.

그래서 한화를 화제로 꺼내봤는데 별말이 없었다. 두산 감독 시절 그랬듯이 한화에서 물러날 때도 먼저 김 감독이 구단에 ‘사임 보도자료 돌리라’고 했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한다. 팀이 꼴찌가 됐는데 누군가는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한화는 김 감독을 고문으로 예우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자체지침을 정했다. 현장이나 구단이 물음을 구할 때 조언해주는 것이 고문이지 먼저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믿어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권력이 있는데 그 힘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이상적 리더십으로 꼽는 무위(無爲)의 치(治)다.

다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정권 교체’에 따라 동반 퇴진한 코치 8명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유유자적을 즐기는 경지에 다다른 그이지만 고락을 함께 한 동지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린다.


○야구를 잊고 살지만…

퇴임 후 야구장에 발길을 끊었다. 한국시리즈도 보는 둥 마는 둥했다. 야구와 잠시 떨어지니 “정신이 편한 면도 있다”고 했다.

장기적 계획도 뚜렷하게 없다. 20승 남은 1000승 이야기를 꺼내자 “내가 뭐 어떻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라고 반문했다.

다만 어쩔 땐 말보다 정황이 진실에 가까운 법. 김 감독은 “부축 없이 계단을 올라가게 됐다”고 자랑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활에 얼마나 전념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훗날을 대비하는 집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극적 변화다. 더군다나 김 감독이 야구를 잠시 잊었다할지라도 세상이 그를 마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사족:첫 눈이 내리면

김성근 감독이 승부와 정면에서 맞서는 쪽이라면, 김인식 감독은 승부를 초탈하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일견 승리의 쾌감 못지않게 야구가 가져다주는 인연의 소중함에서 야구 감독의 보람을 찾는 듯한 김인식 감독이다. 그렇기에 2009년 WBC는 준우승이라는 업적 못지않게 추억으로서 김 감독의 뇌리에 새겨진 듯하다.

대회 기간 코치들은 대회 팔찌를 차고 다녔는데 김 감독은 “첫눈이 내리면 덕수궁 돌담길에 그 팔찌들 차고 모이자고 다짐했는데 기억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회가 끝났고, 아직 WBC 코치진의 공식 회합은 없었다.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처럼 첫눈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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