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마흔살에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 LG 류택현 “무모한 수술?… 내겐 행복한 도전”

입력 2010-09-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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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재활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후 다시 볼을 던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없었다. 그러나 LG 류택현은 불혹의 나이에 수술대에 올랐다.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행복한 도전”이라고 했다. 스포츠동아DB

역대 최다등판 눈앞에서 고장난 고무팔

모두가 마흔에 수술은 미친 짓이라 만류

그러나 자면서도 아령잡는 내 팔을 발견

선수인생 건 내 마지막 모험이 시작됐다역대 최다등판 2위에 올라있는 LG 좌완투수 류택현(39)이 지난 11일 서울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토미존 서저리’로 불리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1971년생으로 우리나이로 마흔 살. 지금까지 이 나이에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한 선수는 없었다. 그래서 성공사례도 없고, 성공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이다. 주위에서는 모두 “무모한 도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도전”이라고 했다.

○역대 최다등판 기록에 2경기를 남겨두고….

1994년 프로 데뷔 후 800번이 넘는 등판에도 끄떡없던 고무팔. 그러나 올 시즌 초반 갑자기 팔꿈치에 이상신호를 느꼈다. 팔을 흔들자 마치 조립된 로봇팔에 기름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힘없이 흔들거렸다. 팔꿈치 인대는 이미 끊어지기 일보직전. 보강훈련을 하며 버텨봤지만 공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1군 무대에서 73경기에나 등판했던 그도 별 수 없이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올 시즌 1군에서는 16경기에 등판한 것이 전부다. 통산 811경기 등판. 올해는 무조건 은퇴한 조웅천이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다등판(813경기)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였지만 불과 2경기를 남겨두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나이에 수술? 그냥 은퇴하라” 만류

이대로 은퇴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수술을 한 뒤 도전할 것인가. 그는 주위에 조언을 구했다. 구단에서는 야구에 대한 식견과 눈썰미가 뛰어난 그에게 “전력분석요원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하며 은퇴를 권유했다. “나이도 있는데, 지금 수술을 하면 구단에서는 기다려주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동기인 유지현 코치와 서용빈 코치에게도 물어봤다. 선배인 차명석 불펜코치의 생각도 떠봤다. 야구를 좋아하는 연예인 친구 안재욱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런데 십중팔구 돌아온 대답은 “그 나이에 수술해서 어쩌려고”였다. 심지어 도전정신이 남다른 동기생 최향남마저도 수술하려는 그에게 “미쳤다”고 했다.

○문득 발견한 자신,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선택

그는 그래서 미련을 접기로 했다. 은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에서 잠을 자다 한밤중에 일어났는데, 침대 밑에 있는 아령을 들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재활훈련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성적으로는 이미 은퇴를 결심했는데, 내 안에 있는 나는 도전하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결국 수술대에 누웠다. 힘겨운 재활과정, 그걸 이겨낸다고 한들 성공보장도 없는 도전이다. 그를 걱정하며 만류하던 사람들도 이젠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후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격려하고 있다.

현재 김진섭 정형외과 병실에 누워있는 그는 “이렇게까지 하고도 다시 마운드에 서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까지 돼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도전해보지 않고 그만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자비로 수술을 받았다. 시즌이 종료되면 그의 이름은 LG 선수명단에서 지워질지 모른다. “다시 LG 선수로 등록된다는 보장은 없고, 재활이 끝나도 다른 팀에서도 나에게 테스트 기회마저 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 마음이 홀가분하다. LG가 다른 건 몰라도 혼자 재활하기 힘들면 구리구장에서 해도 된다고 하더라. 그게 어디냐.” 그는 수술 부위 통증 때문에 “끙”하며 신음소리를 내뱉으면서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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