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가을이야기] 정글속의 ‘순둥이’ 이정민 “욕심 낼 이유를 찾았습니다”

입력 2010-10-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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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덕아웃에는 준플레이오프 엔트리 26명 외에 네 명의 선수가 더 앉아 있습니다. 투수 이용훈과 김수완, 유격수 박기혁, 그리고 투수 이정민(31·사진). 제리 로이스터 감독으로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해도 팀과 동행하라”는 주문을 받은 선수들입니다. 이정민은 예의 환한 미소로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치열한 정글입니다. 프로야구단 역시 마찬가지고요. 누군가 엔트리에 포함되려면, 다른 누군가가 빠져야 합니다. 올시즌 성적이 썩 좋지 못했으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실낱같은 희망조차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막상 엔트리 탈락을 확인한 후에는 밀려드는 실망감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플레이오프에 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다시 그를 웃게 합니다.

아쉬움이야 물론 많습니다. 어떤 선수에게나 알려지지 않은 부진의 이유가 숨어있게 마련입니다. 이정민도 그랬습니다. “시즌 초반에 어깨 통증이 왔는데 욕심 때문에 계속 던진다고 하다가 부상을 키웠어요. 그 때 2∼3주만 더 쉬었으면 올시즌 다른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뒤늦게 후회되더라고요.” 그래도 마냥 아쉬운 건 아닙니다. KIA와 치열한 4강 싸움을 펼칠 때, 잘 버티고 싸울 수 있었던 건 위안이랍니다.

요즘 이정민은 모처럼 경기 전에 배불리 밥을 먹습니다. 보직이 불펜 투수인지라,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마음껏 식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 나가야 할 지 모르는데 몸을 무겁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거 하나 좋네요.” 그가 멋쩍게 웃습니다. 대신 식사 시간은 맨 뒤로 밀렸습니다. 출전 선수들이 밥을 다 먹고 나야 이정민 차례가 돌아옵니다. 그래도 또 웃습니다. “경기 뛰는 선수들이 더 잘 먹어야죠. 저야 애국가 나올 때 먹어도 되잖아요.”

사실 이런 온화함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그동안 거친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성격이 너무 순해서, 더 잘할 수 있는데 올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거든요. 그래서 그는 이제 욕심을 좀 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저도 꼭 제 존재 가치를 보여주고 싶어요. 올 겨울에 결혼도 하는데,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죠.” 하지만 또다시 주저앉는다 해도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팀을 위해서도 ‘욕심’을 부릴 생각이거든요.

“모두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어요.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저는 행복합니다.”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누릴 줄 아는 이정민입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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