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정인욱.
선동열 감독의 진심어린 조언
삼성 2년생 투수 정인욱(20)은 3차전에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6-6 동점이던 연장 10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연장 11회초 삼성이 2점을 뽑아 승리투수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연장 11회말 무사만루로 몰린 뒤 임재철에게 2타점 동점 2루타, 손시헌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주저앉고 말았다.하루가 지난 11일 잠실구장. 혹여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알고 보니 삼성선수들은 전날 경기 후 구단버스편으로 호텔로 이동하는 사이에 마치 구호를 외치듯 일제히 오른팔을 흔들며 “정인욱! 울지마!”를 합창했다고 한다.
혈투 끝에 패하면서 1승2패로 몰린 삼성은 오히려 정인욱을 매개체 삼아 웃음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정인욱은 “정현욱 선배가 얼굴을 쓰다듬는 게 카메라에 잡혔는데, 마치 울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던 거였어요. 저 안 울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전날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임재철 선배한테 2루타 맞을 때 사실 무슨 공을 던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냥 이만 꽉 깨물고 던졌다는 기억밖에는….”
선동열 감독은 이런 상황을 성장통으로 바라봤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사를 고백했다.
선 감독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일본전때 8회 역전(한대화 3점홈런) 후 9회에 마운드에 오르는데,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했다. 9회에는 정말 어떻게 던졌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어 “일주일 후 정기 연고전에 선발등판했을 때도 1회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1학년 때는 정기전에 등판하지 않아 첫 경험이었다. 볼넷과 실책으로 무사 1·3루까지 몰렸다. 다행히 실점하지 않아 2회부터 정신을 차리고 3-0 완봉승을 거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중학교 2학년 때 동대문야구장에 처음 섰을 때였다”라고 말했다.
‘천하의 선동열’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진 순간을 딛고 국보투수로 성장한 것이었다.잠실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