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명 아무도 1루땅 밟지 못했다…이용훈 사상 첫 퍼펙트

입력 2011-09-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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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용훈이 17일 대전 2군 한화전에서 9이닝 동안 단 한명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선 20차례, 일본에선 15차례 기록된 바 있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선 1·2군을 통틀어 30년 만에 처음 퍼펙트게임이 나왔다. 스포츠동아DB

2군 한화전 111개 공 뿌려 9이닝 무안타 무4사구
“9회 등판땐 기록 의식 긴장돼…후회없이 던졌다”
양승호 감독 조만간 1군 호출…“일단 구위 확인”


‘퍼펙트게임’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자에게만 가능한 ‘꿈의 기록’이다. 9회까지 안타든, 볼넷이든, 실책이든 단 1명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 비록 2군경기였지만 롯데 이용훈(34)이 한국프로야구 30년 만에 최초로 그 ‘꿈의 기록’을 달성했다.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2군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111개의 공을 던지며 27명의 타자를 삼진 10개, 땅볼 9개, 뜬공 8개로 완벽하게 봉쇄했다. 외야플라이 타구조차 단 2개에 불과했다.


● 정말 내가 퍼펙트게임을?

7회를 마칠 때까지 투구수는 85개였다. 2군에서 5일에 한번씩 선발 등판하지만 투구수는 항상 80∼90개 맞춰져 있었다. 염종석 투수코치가 다가와 “안타 1개 맞으면 바꾸겠다”며 어깨를 쳤다. 8회를 마치니 투구수는 95개. 대기록을 앞두고 긴장될 법도 했지만 이용훈은 9회말 16개의 공으로 3타자를 모조리 삼진 처리했다. “경기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구에 신경 써서 낮게 던졌는데 4회쯤 지나니까 컨디션이 살아나더라고요. 8회까지는 의식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9회 마운드에 오를 때는 약간 긴장이 되더라고요. 후회 없이 던져본다는 생각으로 그냥 직구 위주로 정면승부를 다짐했어요.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니까 편해지더라고요. 두 번째 삼진 잡고, 마지막 타자 때는 그냥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던졌어요.”

전광판을 돌아보니 모두 ‘0’만 그려져 있었다. 퍼펙트게임. 특별히 세리머니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선발투수다보니 항상 이닝 마치고 내려오는 게 습관이 돼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고 그냥 덕아웃으로 걸어갔어요. 후배들이 달려 나와 물을 뿌리면서 축하해주더군요. 후배들이 나중에 ‘마운드에 있었으면 세리머니를 해줬을 텐데 왜 내려왔냐’고 묻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노히트노런이나 완봉승을 하면 마지막 타자는 삼진을 잡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만 퍼펙트게임…. 말이 안 되잖아요.”


● “고맙다”는 찬사에 어리둥절하다!

대기록을 작성하자 박정태 2군 감독은 “이런 게임 보게 해줘 고맙다”고 오히려 이용훈에게 인사했다. 투수가 해내기도 어렵지만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이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와 후배들도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감독님, 코치님, 2군의 동생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모두 하나가 돼 저 이상으로 좋아하고 기뻐해줬어요. 이런 기록은 저 혼자 세울 수 없잖아요.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해준 한화 선수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 어머니와 가족에게 해줄 얘기가 생겼다!

그는 올 시즌 1군에서는 단 2경기 등판에 그쳤다. 2군에선 이날까지 20경기에서 10승4패, 방어율 2.83을 기록했다. 7월초 집에서 장식장을 옮기다 왼쪽 약지 골절상을 당해 3주 가량 쉬는 불운도 겪었다. 양승호 감독은 다음주 이용훈을 일단 1군에 불러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2군에서 선발로만 뛰어 연투가 쉽지 않아 불펜기용이 어렵지만 일단 구위를 확인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용훈은 5대 독자다.

부산에 사는 어머니는 “그동안 희소식이 없었는데 그래도 현실에 충실하니까 좋은 날이 오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야구를 잘 모르는 두 살 아래의 아내도 주위의 축하인사를 받은 뒤 남편이 얼마나 위대한 기록을 세웠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 살짜리 아들 준의를 떠올리니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가 야구를 하면서 남긴 게 별로 없는데, 비록 2군경기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퍼펙트게임을 기록해 먼 훗날 그래도 아빠로서 아들에게 해줄 얘깃거리는 생겼네요.”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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