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가을야구 못해도 해피한 이유

입력 2011-10-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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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4개 팀은 가을야구를, 나머지 4개 팀은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한화, 두산, LG, 넥센 팬들에게는 어쩌면 조금 일찍 찾아온 쓸쓸한 가을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사가 그렇듯 당장 좋아보이는 일에도 나쁜 점이 있고, 불운처럼 보이는 이면에는 행운이 존재하는 법. 응원팀이 가을야구를 하지 못해 팬으로서 좋은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지막지한 긴장감과 극도의 스트레스다. 공 하나에 심장이 덜컹거리고 상대타자의 스윙 소리에 간이 오그라드는 고통, 혹은 역전패 뒤에 찾아오는 절망감은 페넌트레이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무렴. 어디 1층에서 떨어지는 고통과 4층에서 떨어지는 고통이 같겠는가! 장담하건대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면 탈모, 체중감소, 혈압상승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응원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덕분에 우리는 소중한 건강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 야구광의 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생활에 보다 빨리 복귀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같이 예매 전쟁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기시작 전에는 초조해서, 지면 분해서, 이긴 날은 기뻐서 다음날까지 지장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잊지 말자. 가을은 수험생에게는 입시의 계절이며 직장인에게는 근무평정 및 인사고과를 앞둔 중요한 시기이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일찌감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다행인가!

아직 기뻐할 일이 또 남아있다. 포스트시즌의 티켓 가격은 어지간한 중산층이 지갑을 한번 쓸어볼 정도의 가격이며 심지어 암표를 사야 할 상황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게다가 가을야구의 필수 아이템인 점퍼, 머플러라도 구입하는 날에는 당장 생계에 큰 지장을 가져온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감지되는 시점임을 고려할 때,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해 치르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 아니던가!

자. 이렇듯 우리네 가을이 쓸쓸하고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부럽고, 괜히 낙엽이나 발길질 해보는 내 신세가 처량해 진다면 있는 힘껏 빌어보자. 부디 내년에는 우리도 컴퓨터 앞에 앉아 빛의 속도로 예매창을 클릭할 수 있기를. 응원팀의 점퍼를 찬란하게 차려입고 손을 호호 불며 야구를 관람할 수 있기를.

구율화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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