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LG코치 최태원 철인 1014호…“커트신공 원조는 나!”

입력 2012-0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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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코치. 스포츠동아DB

대타 기회에 “맞고라도 나가자” 독기
피땀으로 이룬 1014연속경기 출장
대기록 멈춘 날 변기잡고 남몰래 눈물



파울 악명…투수들 기피대상 1호
눈에 보이는 빈볼도 많이 맞아

난 모자란 코치…배울 게 있어 행복해


‘철인(鐵人).’

메이저리그에 칼 립켄 주니어(2632게임), 일본 프로야구에 기누가사 사치오(2215게임)가 있다면 한국 프로야구에는 최태원(1014게임)이 있었다. LG 최태원(42) 코치는 1995년 4월 16일 광주 해태전을 시작으로 2002년 9월 8일 문학 현대전까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전무후무한 ‘1014 연속경기 출장’이란 대기록을 갖고 있다. 김기태 감독이 지난해 사령탑에 선임된 뒤, 그 전까지 KIA에 몸담았던 최 코치를 영입한 것도 현역 시절 그가 보여준 근성이 선수들에게 투영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LG에서 팀배팅 코치란 새로운 길을 시작한 ‘철인’ 최태원 코치를 만나 그의 현역 생활을 되돌아보고 지도자로서 느끼는 심정,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머리에라도 맞고 나가야 한다

성남고와 경희대를 거친 최태원은 1993년 쌍방울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아마추어 시절 태극마크를 한번도 달지 못했던 아쉬움과 연고팀 서울 지명에서 밀렸다는 현실, 이는 프로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을 꽃피우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그는 첫 시즌부터 규정타석을 채우는 맹활약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프로 3년째인 1995시즌을 앞두고 그는 2년 후배인 ‘대물신인’ 심성보의 입단으로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처지에 몰렸다. 돌이켜보면 나태함에 빠질 수 있던 자신에게 다시 채찍질을 가하는 계기였다. 그 시즌을 앞둔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룸메이트였던 김광림 현 NC 다이노스 코치와 숙소에서 경쟁하듯 밤새 방망이를 휘두른 것도 그래서였다.

1995년 4월 16일, 광주 해태전. 스타팅 라인업에서 빠진채 벤치에 앉아있던 그는 무사 1·2루(이닝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찬스에서 심성보 대신 대타로 나서 번트를 대라는 지시를 받는다. 상대 투수는 ‘까치’ 김정수. ‘여기서 실패하면 나는 곧바로 2군이다. 머리에라도 볼을 맞고 나간다’는 각오로 나섰고, 결국 그는 번트에 성공해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이 때만해도 그 자신도 미처 몰랐다. 이 대타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사실을….


변기를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다

대타로 시작한 연속경기 출장 기록은 어느덧 한해, 두해 계속됐다. 치열한 자기관리, 노력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 타석에서 유독 파울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던 그는 현역 시절 타팀 투수들의 ‘기피 대상’ 1순위였다. 상대 투수들로부터 눈에 보이는 빈볼을 제법 많이 맞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995년 최다안타 1위(147개)를 차지하기도 했던 그의 현역 생활 하이라이트는 1997년이었다. 프로 데뷔 초반, 선배들에 밀려 잠시 외야수로 외도를 했던 그는 이 해 자신의 원래 포지션이었던 2루수로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활짝 꽃을 피운다. 프로에서 유일하게 시즌 타율 3할(0.306)을 넘어선 것도 그해였다.

1995년 우연치 않게 시작된 그의 연속경기 출장은 1999년 말 소속팀 쌍방울이 매각되고, 2000년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도 계속됐다. SK의 초대 주장을 맡아 선수단을 이끌던 그는 그러나 2000시즌 마지막으로 규정타석을 채웠고, 이듬해부터는 선발 출장 회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타와 대수비로 기록이 이어지자, 2002년 초부터 ‘기록 연장을 위한 꼼수’라는 등 좋지 못한 시선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그의 연속경기 출장 기록은 결국 끝이 났다. 2002년 9월 9일, 잠실 게임이었다. 7회 쯤 지났을 때, 수석 코치가 다가오더니 “오늘은 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지휘봉을 잡고 있던 강병철 감독의 결정, 그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때 기억이 또렷하다. 그 날 게임에 우리가 이겼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게임이 끝난 뒤 내가 제일 먼저 나가 후배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나서 라커룸 뒤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부여잡고 울었다.”

한국프로야구 현역 선수 중, 현재 진행 중인 최다 연속경기 출장 기록은 삼성 최형우의 149경기다. 역대 통산 최다 2위 기록은 OB 김형석이 1989년 9월 24일부터 94년 9월 4일까지 기록한 622경기다. ‘1014연속경기 출장’이란 대기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눈물과 땀, 그리고 피로 일군 대기록. 그러나 그에게도 아쉬움이 있다. 당시 기록 연장과 관련해 강병철 감독과 갈등 모습으로 비춰진 것이 그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하면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사실 운도 많이 따랐다. 내 포지션에 특별한 경쟁자가 없었던 것도 그렇고…. 하지만 내 기록을 나중에 폄하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솔직히 섭섭하기도 했다”고 되돌아본 그는 “마지막에 내가 스스로 (기록 중단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감독님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하나의 짐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LG 최태원 코치(왼쪽)는 현역 시절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철옹성처럼 2루를 지켰다. 사진은 SK 소속으로 뛰던 당시 LG전에서의 모습.스포츠동아DB




새로운 시작, 지도자의 길

2003시즌, 그는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시간이 많았지만 줄곧 1군 선수단과 동행했다. 고참으로서 선수들을 이끌어 달라는 조범현 신임 감독의 부탁 때문이었다. 마지막 시즌 그의 1군 출장경기는 33경기 뿐이었다.

2003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최태원은 2004년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의 마이너리그팀에서 1년간 지도자 연수의 시간을 갖는다. 혈기왕성한 그 때, 말도 통하지 않는 선수들과 함께 부딪히며 새로운 기쁨을 얻었고, 코치로서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구단은 연수코치가 아닌 메인코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예정대로 1년 연수 후 귀국했고, 이듬해부터 SK에서 작전·주루코치를 맡아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년간의 연수, 그에겐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었다. “선수를 보는 눈, 가르치는 방법 등 짧은 시간에 새로운 많은 것을 배웠다. 너무도 큰 경험이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2005년 이후 올해로 코치 7년째. 그는 새 팀 LG에서 ‘팀배팅 코치’라는 직함으로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동안 주로 작전과 수비 등을 맡았던 그에게 타격코치는 올해가 처음. “아직도 난 모르는 게 많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선수들이 물었을 때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 줄 순 없지 않은가.” 모르는 게 있을 때, 그는 8개 구단 타격코치 중 가장 많은 경험과 탁월한 이론을 갖춘 김무관 메인 타격코치에게 ‘배운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고,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는 것이 너무 즐겁다. 김 코치님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현역 시절, 그는 동료로서 김기태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내가 할 일은, 감독님을 잘 보좌해 팀이 좋은 성적이 나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라는 그는 “선수들 마음을 헤아리고, 진정으로 진심으로 다가서고 느끼는 코치이고 싶다. 선수를 자식처럼 느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무한한 정을 주는 아버지 같은 코치이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모자란 게 많고, 배울 게 많다.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최 코치. 현역 시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지도자로서 그의 인생도 그렇게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항상 배우고 모자란 것을 채워가는 그의 야구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태원 코치는?

▲생년월일=1970년 8월 19일
▲출신교=미성초∼성남중∼성남고∼경희대
▲키·몸무게=178cm·82kg(우투우타)
▲현역 경력=1993년 쌍방울∼2000년 SK∼2003시즌 후 은퇴
▲통산 성적=11시즌 1284경기 출장. 통산타율 0.268, 24홈런 344타점 1133안타
▲수상경력=1995년 최다안타 1위·1997년 골든글러브(2루수)
▲코치 경력=2005년 SK∼2008년 KIA∼2012년 LG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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