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축구협…기준도 절차도 없었다

입력 2012-05-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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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가 에닝요(전북)의 특별귀화 후 대표팀 발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사안에 대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는 등 절차가 잘못됐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무리한 에닝요 귀화추진 도마에

한국어 전혀 못하는 에닝요 자격 미달
기술위 조차 안 열고 협회 독단적 추진
한국축구 첫 사례 불구 여론수렴 외면
체육회 아닌 우회귀화도 가능성 낮아


브라질 출신 외국인선수 에닝요(31·전북 현대)의 특별귀화 추진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대한축구협회는 5월 초 대한체육회에 에닝요와 몬테네그로 출신 라돈치치(29·수원)의 특별귀화 추천신청을 했다. 라돈치치가 일본에 약 5개월 임대된 적이 있어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국내에 거주해야 A매치를 뛸 수 있다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귀화해도 최종예선 4경기를 뛸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협회는 뒤늦게 이를 확인한 뒤 8일 라돈치치는 철회하고 에닝요만 단독으로 추천신청을 했다. 그러나 체육회는 9일 에닝요의 추천신청을 부결했다. 그러자 협회는 체육회를 통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특별귀화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안 되는 일을 갖고 떼를 쓰는 형국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운동선수의 특별귀화와 대표팀 발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추진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협회는 전후관계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무리하게 일을 벌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별귀화 통과 가능성 희박

협회는 체육회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체육회는 스포츠단체를 관장하는 기구로 가맹단체 입장에서 보면 부모나 마찬가지다. 가급적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는 잘 봐주고 안 봐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복수국적 취득제도의 근본 취지를 고려할 때 순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추천은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체육회의 부결 논리는 타당하다.

김 총장은 이어 “특별귀화 신청은 여러 창구가 있다. 협회가 체육회 가맹단체라서 일단 체육회 추천을 받는 게 순서라고 생각돼서 신청을 한 것뿐이다”고 했다. 체육회를 통하지 않고 다른 루트로 특별귀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별귀화 우수인재 추천권자 및 평가기준에 따르면 체육회장 추천서가 없어도 중앙행정기관의 장, 국회사무총장, 법원행정처장, 헌법재판소장의 추천을 받으면 국적심의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고 이를 통과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5월 개정된 국적법에 따라 특별귀화가 허용된 이후 지금까지 운동선수가 체육회장 추천서 없이 한국국적을 얻은 사례는 없다. 남자 프로농구 문태종과 문태영, 여자농구 김한별, 쇼트트랙 공상정 등 4명 모두 체육회장 추천서를 받았다.

만약 체육회장 추천서 없이 단독으로 심의위원회에 회부돼도 통과 여부를 장담하기 힘들다. 법무부는 특별귀화 일반적 요건으로 ‘국어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무부 국적난민과 박상원 계장은 “특별귀화를 신청할 때 일반요건은 기본적으로 갖춘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에닝요는 한국어를 아예 못 한다. 일반 요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심의위원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술위원회 절차도 무시

협회는 또 다시 절차를 무시했다.

협회 황보관 기술위원장에 따르면 최강희 감독이 에닝요, 라돈치치의 특별귀화를 요청한 것은 최종예선 조 추첨(3월9일) 직후다. 축구협회가 체육회에 공식적으로 두 선수 특별귀화 추천신청을 한 건 5월 초다. 3월9일부터 5월 초 사이에 이 문제로 기술위원회가 열린 적이 없다. 기술위는 9일에나 열렸다. 협회가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기술위는 뒤늦게 이를 추인한 꼴이다. 김주성 총장은 “이번 사항은 전력보강을 위해 코칭스태프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이지 선수 선발 기능을 갖는 기술위를 거쳐야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해명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 감독은 대표팀에 에닝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추후 대표팀 발탁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기술위에서 논의돼야하는 게 맞다. 모 축구인은 “코칭스태프가 요청하고 협회 수뇌부가 승인하면 특별귀화가 곧바로 추진되는 게 맞는 절차인가. 당연히 기술위를 거쳤어야 한다. 협회가 여전히 절차를 무시하는 행정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론수렴도 없이

한국축구 역사에서 외국인 선수가 귀화를 해서 대표팀이 된 적이 없다. 벌써부터 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 설전이 뜨겁다. 김주성 총장은 “국민정서나 여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기대치가 크고 관심이 많은데 협회 입장에서 좋은 선수가 대표팀에 뽑히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한국 축구는 협회가 혼자 이끌어가는 게 아니다. 김 총장의 말처럼 국민의 기대치가 높은 만큼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특별귀화의 조건들

법무부는 특별귀화 요건으로 학계, 경제, 문화, 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를 제시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브라질 국적 선수인 에닝요의 특별귀화 추천 요청을 한 것은 체육회가 체육계의 최상급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요건에는 ▲품행이 단정한 자 ▲국어능력 및 대한민국 풍습에 대한 이해 등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을 것 등의 조건이 있다.

에닝요는 이 같은 기본 요건부터 채우지 못해 추천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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