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 “나의 추석은 단 하루, 그래도 엄마 설거지는 내 몫”

입력 2012-09-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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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런던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이 태릉선수촌에서 한복을 입고 스포츠동아 독자들을 향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태릉|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도마의 신’ 양학선도 고향 갑니다!

휘영청 보름달 같은 금메달을 목에 건지도 반백일이 흘렀다.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효자의 아이콘’ 양학선(20·한체대) 역시 귀성길에 오른다. 훈련만큼이나 바쁜 행사일정. “올림픽 이후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던 작은 꿈은 고향에 닿지 못했다. 비록 짧은 추석 휴가지만, 그래서 가슴은 더 설렌다. 26일 태릉선수촌에서 양학선을 만났다.


10월 전국체전 훈련에 휴가는 단 하루
가족들과 사진 찍고 낚시도 갈거예요

스타덤 스트레스…도움이 부담되기도
‘왜 안 베푸나’라는 시선에 때론 속상

내가 설거지 잘할 것 같은 스타 1위?
맞아요, 뽀드득 소리나게 아주 잘해요

효도,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거라 생각
그래야 부모님 얼굴에 먹칠 안하죠ㅎㅎ



앞으로 목표요?
변치않는 선수, 항상 예의바른 선수요!



-눈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가보네요. 운동은 잘 되고 있나요?

“눈병 생긴지 3주가 넘었어요. 병원에서 각결막염이라고 하대요. 올림픽 이후 많이 피곤해서 생겼나 봐요. 많이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체대에서 생활하다가 12일 태릉으로 다시 들어왔어요. 아직 눈에 초점이 완전하지 않아서 기술훈련은 못했지만 체력훈련은 꾸준히 했고요. 10월 전국체전에선 여2(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돈 뒤 착지)를 다치지 않고 실수 없이 하는 게 목표입니다.”


-스타덤에 오르다보니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죠?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데, 솔직히 부담되기도 해요. 주변의 눈빛이 차가울 때도 있는 것 같고요. ‘돈 받았는데 베풀지 않는다.’ 이런 눈빛? 제가 그 분들께 제 마음을 일일이 설명드릴 수도 없고…. 사실 오늘 국민체육진흥공단 소개로 기보배(광주광역시청) 누나 등과 함께 보육원에 다녀왔어요. 명절을 앞두고 정말 뭉클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무척 밝아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기죽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씩씩해보여도 아이들이 단 하루라도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게 소원’이라고 하셔서 찡했어요. 말보다는 자주 찾아가는 게 제 할일인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주말에 쉬는 시간에 놀러가려고요. 애들 좋아하는 과자 사가지고요.”


-추석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사실 운동하면서 추석을 제대로 보낸 적이 거의 없어요. 이번에도 금요일(28일) 저녁에 내려갔다가 토요일(29일)에 다시 올라와요. 일요일(30일) 복귀이기는 한데, 차가 막힐 수도 있으니 하루 전에는 올라와서 (운동) 준비해야지요. 이번 추석에는 네 식구가 모두 모여요. 군대에 있는 형도 휴가를 맞췄어요. 가족사진이 너무 오래돼서 한번 더 찍으려고요. 가족과 낚시도 가고요.”


-어릴 적 추석은 어땠나요?

“아버지께서 7남매이신데, 모두 모여서 항상 북적북적 풍성한 한가위를 보낸 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항상 손자 예뻐해주셨고…. 금메달 따고 할머니께 갔더니 저를 끌어안고 우시더라고요. 너무 좋으셔서 눈물이 나셨대요. 팔순을 바라보시는데 몸이 좀 안 좋으세요. 항상 건강하셔야 할 텐데….”


-양학선에게 가족이란?

“힘들 때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존재. 저라고 왜 가족에게 화가 나는 순간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가족은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없는 존재잖아요. 제 몸뚱이와 같은…. 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힘들게 고생하시면서 가족을 부양하셔서…. 지금도 그런 모습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추석 때 설거지를 잘 도와줄 것 같은 올림픽 스타 1위에 뽑혔던데.

“어렸을 때는 어머니 바쁘시면 많이 도와드렸어요. 세제 짜가지고 뽀드득 닦고…. 그런데 요새는 집에 잘 못가다보니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손놓게 됐어요. 이번 추석에는 꼭 설거지 도와드려야죠. 제가 음식은 잘 못하니까…. 예전에 어머니께 김치볶음밥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다 잊어버렸거든요. 하하.”


-양 선수가 생각하는 효도란 어떤 것인가요?

“어릴 때는 부모님께만 잘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예전에는 선배들이 외모 가지고 놀리면 막 예의 없이 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제가 버릇없단 소릴 들으면, 부모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좀 놀려도 웃어넘겼어요. 한때 저를 오해했던 선배들도 ‘학선이가 그런 애 아니다’라고 말해줄 때 뿌듯해요. 모든 분들께 좋은 얘길 듣는 게 결국 효도가 아닐까요?”

단 하루뿐인 휴가지만 추석 때 네 식구가 모여 명절을 함께 보내게 됐다. 양학선이 손에 로진을 묻히고 있다. 태릉|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변했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항상 예의바르고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신기술도 준비할 거고요. 사실 요즘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졌어요. 눈치도 많이 보이고요. 올림픽 전과는 달리 여자친구를 밖에서 만날 때도 주변 시선이 무섭더라고요.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혹시라도 그런 모습 보시더라도, 공인이 아니라 일반인처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양)학선이가 열심히 운동하면서도 20대 또래처럼 자기 생활을 하는구나.’ 이렇게요. 저를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체조선수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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