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View]채태인, 욕만 먹다 칭찬 들으니 야구할 맛 납니다

입력 2013-05-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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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채태인(왼쪽)이 22일 대구구장 그라운드에서 일본인 코야마 트레이닝코치의 지도 아래 몸을 풀고 있다. 지난 2년간 끝없이 추락했던 채태인은 올 시즌 규정타석에는 모자라지만, 0.380의 고타율을 올리며 반전드라마를 쓰고 있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에서 그의 각오가 묻어난다. 대구|이재국 기자

■ 뇌진탕 2년 부진 씻었다… ‘채천재’로 돌아온 삼성 채태인

삼성 채태인(31)은 올 시즌 뜨거운 방망이를 과시하고 있다. 26일까지 36경기에 출장해 무려 0.380(92타수 35안타)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다. 규정타석 미달로 현재 ‘장외 타격왕’에 머물러 있지만, 삼성 타선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2010년 ‘뇌진탕 사건’ 이후 지난 2년간 끝없이 추락했던 그였기에 올 시즌의 맹활약은 그야말로 ‘반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도 “올해는 채태인이 타석에 들어서면 기대감이 든다”며 반색할 정도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21일 ‘규정타석-3’까지 다가서면서 타격 1위 진입이 눈앞에 보였지만, 뜻하지 않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부상은 경미한 상태여서 곧 1군에 복귀할 전망이다. 그러나 타격감이 최고조에 달해있을 때 전력에서 이탈한 점이 아쉽다.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난 채태인을 만나 속마음을 들어봤다.


타율 0.380 장외 타격왕 2군행
규정타석 -3…빠지기 싫었지만…

다리 내리고 타격 정확도 큰 도움
올시즌 고집 버리니 야구가 보여

딸은 아빠가 잘하는 걸로 아는데…
연봉 많이 받고 더 떳떳해지면
아내에 웨딩드레스 입혀 주겠다



○타격 1위 눈앞 1군 엔트리 제외


-타격감이 한참 좋을 때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군 가기 싫었다. 야구선수가 된 뒤 요즘처럼 이렇게 잘 맞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길게 봐야 하지 않겠나. 감독님과 팀에 미안하다. 류중일 감독님은 그동안 나를 믿고 기용해주셨는데, 최근 2년 동안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요 근래 팀에 좀 보탬이 되는 것 같았는데….”


-규정타석만 채우면 타격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솔직히 아쉽다. 시즌 중이지만 내 이름이 맨 위에 한 번이라도 자리 잡을 기회였는데…. 내가 언제 1위에 이름을 올려보겠나.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웃음) 그런데 정말로 난 타격왕을 할 선수가 아니다. 타격왕이 되려면 내야안타도 많아야 하는데, 내 발로는 어림없다. 1군 룸메이트인 (배)영섭이가 발도 빠르고 타격기술이 좋으니까, 타격왕은 영섭이가 하지 않겠나.”


-그래도 선수생활 하면서 개인 타이틀 하나쯤은 갖고 싶은 욕심이 있을 텐데.

“트로피 한 개쯤은 집에 갖다놓고 싶긴 하다. 갖고 있는 건 2008년 2군 올스타전 MVP(최우수선수) 트로피가 전부다. 올해 ‘득점권 타율상’이나 받고 싶은데, 그런 건 없나? 아니면 재기상이나 받았으면 좋겠다.”


○뇌진탕 그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2007년 삼성에 입단해 3년 만인 2009년에는 타율 0.293, 17홈런, 72타점을 기록해 ‘채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2010시즌 막바지에 파울플라이를 잡다 뒤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당했다. 그 후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2년간 고생했다. 처음엔 어지럽기도 하고, 경기하다 토하기도 했다. 경기 후 숙소에서 목욕을 하려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욕실에 쓰러진 적도 있다. 머리가 ‘띵’ 할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타석에서 공이 3D 입체영상처럼 보였다. 이젠 후유증은 없어진 것 같다.”


-뇌진탕 이후 성적도 좋지 않았고, 몇 차례 본헤드 플레이도 하면서 삼성 선수 중 팬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먹었다.

“사람으로선 할 수 있는 실수지만, 야구선수로선 해선 안 될 실수였다. 그런데 야구 못하는 걸로 욕하는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인신공격이나 가족 욕까지 하니…. 아내는 ‘안 좋은 말밖에 없을 텐데 인터넷 보지 마라’고 하더라. 이젠 팬들이 욕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이제 삼성 팬들에게 가장 칭찬을 많이 듣는 선수가 됐다.

“요즘 타격 후 덕아웃으로 들어갈 때 팬들이 환호를 해주더라. ‘이게 팬이구나’, ‘나한테도 팬이 있구나’ 싶어 감동하고 있다. 역시 야구선수는 야구를 잘하고 봐야 한다. 착해도 소용없다. 내 눈 봐라. 나름 사슴 눈망울인데.(웃음)”

삼성 채태인.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아내에게 웨딩드레스 입혀 주겠다!


-야구를 잘하니 팬들도 팬들이지만, 가족이 좋아할 것 같다.

“큰 딸(예빈)은 여섯 살이라 야구를 좀 안다. 둘째는 아들(예준)인데 네 살이다. 12월생이라 29개월밖에 되지 않아 야구를 모른다. 그런데 요즘 집에서 TV 보다가 멋도 모르고 ‘우리 아빠 최고지? 우리 아빠 최고지?’라면서 좋아한다고 한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야구 잘하고, 연봉 많이 받고, 떳떳해지면 결혼식을 올리긴 올려야지…. 모르겠다. 두 살 아래 아내(김잔디 씨)는 ‘결혼식 안 하면 어때’라고 말하면서도 요즘 살을 빼고 있더라.(웃음)”


-연봉 얘기가 나온 김에, 올 시즌 연봉 폭탄을 맞았다. 작년 1억1000만원에서 6000만원이나 깎여 5000만원짜리 선수로 추락했다.

“1군 야수 중에서 나보다 연봉 적은 선수는 우동균(4000만원)밖에 없다. 2007년 삼성 유니폼을 처음 입었을 때 6000만원부터 시작해 재작년에 1억3000만원까지 올랐다. 6년 동안 쌓아올린 걸 한방에 까먹었다.”


-의욕이 떨어지거나 오기가 생기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맞다. 처음엔 야구하기 싫었다. 삼성은 (LG식의) 신연봉제도 아닌데…. 아내한테 면목이 없더라. 월 1000만원씩 통장에 들어오다가 이제 세금 떼고 400만원 정도밖에 안 들어오게 생겼으니까. 그런데 아내가 그러더라. ‘자기보다 못 받는 선수도 많다.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까, 포기하지 말고 야구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오기가 생겼다. ‘내년에 한번 봐라. 깎인 만큼 올려놓겠다. 채태인이라는 선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고집을 버리니 야구가 보이더라!


-올 시즌 잘 치는 게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 같다.

“난 처음엔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이름이 빠져 있었다. 2군 강기웅 타격코치님이 ‘어차피 안 되는 거 이렇게 해보자’며 제안을 하셨다. 오른 다리를 들지 말고 치자는 것이었다. 힘은 있으니까 배트 중심에만 맞히면 된다고 하셨다. 사실 작년에 1군 김한수 타격코치님이나 김종훈 타격코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땐 왜 그랬는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효과가 있는가.

“작년만 해도 타격을 할 때 눈앞에서 공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어이없는 헛스윙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 공이 보인다. 미리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올해는 오른쪽 안타보다 왼쪽 안타가 더 많다.”


-원래 쾌활한 성격인데 작년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올해 다시 밝아졌는데.

“고등학교(부산상고) 1년 선배 (윤)성환이 형이 ‘왜 작년, 재작년엔 이렇게 하지 않았냐’고 묻더라. 맞는 말이다. 박석민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막상 성적도 안 좋은데 웃고 다니면 ‘저 놈 돌았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나.(웃음)”


-타율도 타율이지만 득점권 타율이 놀랍다. 무려 0.550(20타수 11안타)이다.

“작년엔 득점권에서 30타수 2안타(0.067)였다. 이것 때문에 엄청 욕먹었다. 지금은 주자 나가면 집중이 아니라 초집중이다. 예전엔 찬스에서 삼진 먹으면 벤치도 못 보고, 관중석도 못 보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젠 안 그런다. ‘못 치면 내 연봉 깎이지 팬들 연봉 깎는 것 아니다. 잘 치면 내 연봉이 오른다. 더 당당하게 치자’는 생각만 한다.”

대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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