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주말 야구여행] 김응룡 “승부를 떠나니 길가에 핀 꽃이 보이더군, 허허”

입력 2015-07-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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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의 거장이자 거목인 김응룡 전 감독이 경기도 용인에 마련한 밭에서 직접 심은 토마토를 따며 환하게 웃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농사꾼으로 변신한 야구계 거장 김응룡

후배 감독들 초청으로 18일 프로야구 올스타전 ‘화려한 외출’



요즘 토마토·참외 따먹고 이렇게 살고 있수다
옥수수·상추·양배추·고추…다 내가 심었어
욕심 버리니 세상이 아름답더군, 처음으로
야구? 잘 안봐…내가 현역 감독 같아지거든
후배 감독들이 주는 공로패…나야 감사하지
다신 감독 하지 말라고 못박으려고 그러나? 허허


“아니, 여기까지 뭐 하러 와. 그냥 조용히 살고 있는데.” 늘 그랬지만, 그의 첫 인사는 여전히 퉁명스럽다. 그러면서도 이내 “오랜만이요”라며 악수를 청한다. 그 내민 손이 따뜻한 걸 보니 그래도 모처럼 찾아준 기자가 반가운 모양이다.

김응룡(74).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야구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거장이다. 그런 그가 이제 농사꾼으로 변신했다. 치열했던 승부사의 옷을 벗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야인 김응룡’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으로 차를 몰았다. 때마침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2015 타이어뱅크 KBO 올스타전’ 때 후배 감독들이 초대해 공로패까지 준다고 하니, 더더욱 그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한국시리즈에서 9차례 정상에 올랐던 해태 시절에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압도했다. 2002년에는 삼성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3~2014년 한화 유니폼을 끝으로 ‘야인 김응룡’으로 돌아갔다(위부터). 스포츠동아DB



● 승부를 떠나니 꽃이 보이더라!

“요즘 토마토하고 참외 따먹고, 이렇게 살고 있수다. 옥수수, 상추, 양배추, 고추, 오이, …. 이거 내가 다 심었어. 감자는 이미 다 캤고, 고구마는 가을에 캘 거야. 그런데 얼마 전에 노루가 나타나서 상추하고 고구마 순을 다 뜯어먹었지 뭐야. 약을 안 치고 유기농으로 키우는 걸 그놈들도 아는가봐. 허허.”

마치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해온 촌로(村老)처럼 텃밭을 돌보는 솜씨가 익숙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저 산 위에는 더덕하고 도라지도 심어놨다”고 친절하게 자랑한다. 그런 품새를 보니 그동안 얘기가 고팠던 모양이다.

-언제 이런 밭을 마련했습니까?

“해태 시절 사놨던 거야. 한 30년 됐지. 요즘 시간 날 때 여기 와서 하루 2시간씩 일하고 들어가. 그러면 그렇게 잠이 잘 와. 잡념도 없어지고 말이야.”

-농사를 지어보셨습니까?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내가 어릴 때 이북에서 피란을 왔잖아. 이북에서 살 때 어른들이 농사를 지었으니까.”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그렇지? 운동 많이 하니까. 산에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그렇게 살고 있어. 내가 심은 이 채소들로 식단조절도 하고…. 다들 그래. 얼굴 좋아졌다고.”

-매일 매일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살다가 쉬고 있으니 어떠세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새로 사는 기분이야. 그동안 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올 봄에 마성IC에서 차를 몰고 여기로 내려오는데 말이야. 개나리, 진달래, 벚꽃 세 종류의 꽃이 한꺼번에 피었더라고. 예전엔 3월, 4월에 야구하느라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꽃이 내 눈에 안 들어왔어. 그런데 지금 보여. 욕심을 버리니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게 보이더라고. 처음으로.”

김응룡 전 감독은 은퇴생활을 즐기며 정성을 다해 농작물을 가꾸고 있었다. 직접 심고 키운 커다란 수박에서 그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동아DB



● 야구 안 보려는데 꿈엔 왜 나타날까?

그와 인터뷰를 하려고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막걸리 잔을 잡듯 투박하게 커피잔을 쥐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냉수처럼 들이켰다. 세련미는 없지만, 오히려 그런 게 그답다.


-여기 종종 오시나 봐요.

“지금처럼 더운 날, 사람들이 날 찾아오면 여기서 만나서 커피 한잔 하고 그래. 인생을 즐기고 있지. 요즘 선동열이 종종 날 불러내. 골프 약속 잡혔다고. 그래서 내가 살이 많이 빠졌어. 허허.”


-신발이 예쁘네요. 젊은 사람들 신는 구두인데요.

“올초에 (양)준혁이가 와서 선물이라고 주고 간 거야. 준혁이가 밭에서 농사도 도와주고 갔어. 경운기도 잘 몰더라고.”


-요즘 야구는 보세요?

“잘 안 봐. 1년 동안은 아예 안 보려고. 뉴스 끝나고 스포츠뉴스하면 TV 꺼버려. 야구 하이라이트 나오면 다른 채널로 틀어버리고. 야구를 보면 또 내가 현역 감독 같아지거든. 나도 모르게 승부 속으로 들어가게 되더라고. 긴장도 되고, 작전도 내고 싶고, ….”


-한 평생 야구만 하셨는데 야구가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습니까?

“그렇지. 10대 때 야구를 시작해 70이 넘도록 야구만 하고 살았으니까. 묘한 게 말이야. 현실에선 야구 생각 안하고 야구를 안 보고 있는데, 꿈에 야구가 나타나더라고. 꿈속에서 경기를 해. 욕하고, 기자들하고 막 싸우고 그래. 혼자 잠꼬대하는 거지. 마누라는 밤에 내가 전화기로 누구하고 싸우는 줄 알고 잠을 깰 때가 많아. 허허허.”


● 다시 야구장으로! 거장의 화려한 외출!

그는 부산 개성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뒤 선수로, 감독으로 늘 우승과 함께 했다. 국가대표 4번타자로 활약하며 1963년 아시아선수권대회때 결정적 홈런을 치면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국가대표 감독을 처음 맡은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선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을 지휘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이끌었다. 1983년 해태 감독을 맡자마자 우승을 일구더니 총 10차례(해태 9회·삼성 1회) 우승신화를 만들었다. 프로 감독으로 3000경기 가까이(2935경기)를 싸우면서 1567승1300패68무(승률0.547)를 기록했다.


-야구가 힘드셨나요? 진 날보다는 이긴 날이 더 많았잖아요.

“이긴 건 생각 잘 안 나. 한화에서 2년간(2013∼2014년) 많이 져 가지고. 우승할 땐 진 사람들의 심정을 몰랐어. 한화 가서 많이 지다보니까 그걸 알았지. 쉽게 생각했지. 한화에서 야구가 어렵다는걸 새삼 깨달았어. 인생이란 게 만만찮다는 걸 나이 팔십 가까이 돼서야 알았어.”


-이번 올스타전에 후배 감독들이 선물을 해준다고 하네요.

“김성근(한화 감독)이 전화로 ‘운동장 한번 오겠냐’고 묻더라고. ‘뭔데?’ 그랬더니 공로패를 준다고 하더라고. 글쎄, 감독 은퇴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다시 감독 자리 앉지 말라고 못 박으려고 그러나? 허허. 나야 고맙지 뭐.”


-NC 김경문 감독이 애리조나 전지훈련 때 거기 모인 다른 감독들에게 제의를 해서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프로야구 역사상 감독 은퇴식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기분 좋고 감사하지. 후배들이 나이 먹어가지고 감독 욕심냈다고 내 욕이나 안 하는가 싶었는데. 삼성 사장하고 점잖게 그만둬야 하는데 말이야.”


-다시 다른 팀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오면 어떡하겠습니까?

“당신 왜 그래? 허허. 이제 안 해.”

그는 한화 감독이던 지난해 10월 17일 광주 KIA전에서 4-5로 패했다. 그게 야구장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많이 이기고, 누구보다 많이 우승한 거장이었지만, 패장의 모습으로 쓸쓸하게 이 무대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에 후배 감독들이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며 그를 올스타전에 초대했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무대가 마련됐다. ‘설레십니까’라는 질문에 “나이 팔십 다 돼 가지고 그런 게 어디 있겠냐”며 겸연쩍게 웃었지만, 그의 마음은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거 하나 가지고 가. 이거 이래봬도 유기농이야. 잘 익은 것 같아.” 코끼리 같은 손으로 수박을 ‘통통’ 두들겨보더니 “틀림없다”며 확신한다. 차를 타고 떠나는 기자 등 뒤로 “올스타전 때 보자”면서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이젠 승부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겉은 퉁명스럽지만 내면의 정이 깊은 시골 아버지 같은….

용인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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