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최진철 감독 “어린선수들에게 배운 인내…얼굴이 많이 부드러워졌죠”

입력 2015-11-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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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17 대표팀 최진철 감독 파주 NFC 인터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U-17 칠레월드컵 16강 이끈 최진철 감독

과도기 선수들 위해 호통보다 격려
스포츠 심리 큰 관심…원팀 원동력
당분간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 전념


2015년 10월. 한국축구는 작지만 큰 역사를 썼다. 지구 반대편,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조별리그 1·2차전에서 브라질과 기니를 제압했을 뿐 아니라 무실점으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입했다. 대표팀을 이끈 최진철(44) 감독을 늦가을 단풍이 한창인 5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붕대 투혼’으로 기억되는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일등공신이자, 지도자로서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쓴 최 감독은 어린 태극전사들과 함께 한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며 “선수들만큼이나 나도 한 단계 성장했다”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참음과 인내의 미덕

선수 시절 최진철은 투지의 아이콘이었다. 불같은 성격, 속내를 그대로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그였다. 그러나 ‘선수’ 최진철과 ‘지도자’ 최진철은 달랐다. U-17 월드컵의 소득을 묻자 “인내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한 점”이라며 웃었다. 유니폼을 벗은 2008년 여름, 강원FC 코치로 지도자에 입문한 그는 2012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가 됐다.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게 된 계기였다.

칠레 멤버들과는 3년여 전부터 함께 했다. 15∼16세는 진짜 선수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 좋은 기술 못지않게 좋은 습관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했다. 호통보다는 격려가 먼저였고, 매사 이해를 구해야 했다. 가벼운 스킨십과 장난 섞인 욕설도 더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것은 선수들이 바뀌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어린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화를 참고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이 생겼다. 물론 시간은 꽤 걸렸다. 전임지도자로 1년쯤 생활했을 때, 황보관 선배(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께서 ‘얼굴이 밝아졌다. 부드러워졌다’는 말씀을 하셨다. 확실히 유연해진 건 맞는 것 같다.”

자연히 스포츠 심리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선수들의 마음을 컨트롤해 능력치를 극대화시키고 불리한 주변 여건도 유리하게 끌어가는 옛 스승 거스 히딩크(69) 감독을 통해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틈날 때마다 심리학 강좌에 참석했다. 보수적인 국내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이승우(FC바르셀로나)와 모두를 원팀으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에서 비롯됐다.


의외성이 가져온 결실

8월 수원컨티넨탈컵에서 한국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전국대회를 마치자마자 다시 대표팀이 소집된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경기력이 너무 안 좋았다. 주변의 기대치도 크게 낮아졌다. 이대로라면 16강은커녕 1승도 어렵겠다는 시선이 많았다. 최진철 감독도 “생각 이상으로 부족했다. 그간 과정이 전부 잘못된 게 아닌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기댈 구석은 있었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의 매력으로 ‘의외성’을 꼽았다. “축구는 모든 일이 벌어진다. 특히 어릴수록 변화가 쉽다. 스펀지처럼 다 빨아들인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역시 그랬다. 선수들은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발전을 했다. 컨디션이 올라왔고 연습경기 때 무실점의 결과를 얻으며 자신감이 살아났다. 동료와의 연계, 주변을 어떻게 돕고 어떻게 도움을 받는지 깨우쳤다. 명수비수 출신답게 최 감독은 ‘무실점’을 항상 강조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당연히 이기되, 질 경기도 비기도록 하는 건 결국 실점이 없어야 한다. 조별리그를 최대 2위, 못해도 3위에 들어 16강에 오르는 걸 목표했는데, 강호에 무실점 승리를 하면서 방향도 바뀌었다.”

그러나 벨기에와의 16강전은 두고두고 아쉽다. 아무래도 들뜬 분위기였다. 최 감독은 ‘안도’와 ‘안일함’에서 원인을 찾았다. “조별리그 통과로 팀이 정신적으로 다운된 면이 없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국내 반응을 접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에 신경 쓰지 말자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여기에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칭찬에 인색했다. 오히려 잘못된 점을 짚어줌으로써 당사자가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좀더 세심하게 칭찬했다면, 또 개인적으로 칭찬해줬다면 어땠을까. 그냥 아쉽다.”


계속될 채움, 이어질 발전

최진철 감독은 당분간 현장을 떠나 유소년 육성·강화를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축구협회 프로젝트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에 전념한다. 당장이 아닌, 10년 후를 내다본 U-17 대표팀 상당수가 이 과정을 거쳐 성장 중이다. 여기에 지도자강습회 보조강사 업무도 맡을 계획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처음 지도자강습회를 수강했을 땐 그저 지도자 라이선스 취득이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잊고 있던 부분을 새롭게 채우고 꾸준히 자극을 얻기 위해 계속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그의 철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변화, 발전, 미래는 최 감독이 좌우명처럼 삼는 단어들이다. 당연히 목표도 뚜렷하다. “끊임없이 변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변화를 느끼고 체감하면서 발전한다. 그래야 미래도 있다. 멈춤의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성장할 수 있다. 아직 (전임지도자로) 채울 부분이 많지만 얼마간 공부가 끝나면 프로에도 도전하고 싶고, 그 이후에는 학원축구 지도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청사진을 그렸다.

파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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