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준, ‘이장석과 1년’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입력 2019-01-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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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이장석 전 대표 히어로즈 구단 지분 40% 제의하며 제발 단장 맡아 달라 삼고초려
7개 구단으로 리그가 축소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어
자신했던 투자 약속 지키지 않고 선수 현금 트레이드만 고민
단 한 장의 주식도 받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나. 헌신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박노준(57) 우석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교수는 얼마 전 2만5000명의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의 단체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박 교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항상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였고 프로선수, 방송해설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선수 출신 단장, 대학교수, 대한야구협회 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 밖에도 ‘도와 달라’는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스포츠행정 등 궂은 일도 해왔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회장은 명예스러운 자리지만 그만큼 헌신해야 할 일이 많다. 박 교수는 17일 “여러 선배들께서 꼭 맡아 달라고 하셔서 사양할 수 없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와 은퇴한 선수 등 2만5000명의 회원들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학생들 가르치고 야구에 대한 연구 등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1980년대 초 박 교수는 고교생으로 전 국민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프로야구의 ‘원조 아이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때 박노준이 훗날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야구단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KBO리그 10개 팀 중 무려 7개 팀 단장이 선수 출신이다. 그러나 박 교수가 히어로즈 단장을 맡은 2008년까지 KBO리그에 경기인 출신 단장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당시 KBO 기술위원을 맡고 있었던 박 교수는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7개 구단으로 리그가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KBO리그는 800만 관중을 자랑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이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이라고 참담해했던 야구장 대신 대구와 광주, 창원에는 최신식 새 구장이 들어섰다. 리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경쟁 끝에 10개 팀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 현대 유니콘스는 현대그룹의 경영 포기로 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박 교수는 단장으로 히어로즈 창단과 네이밍 마케팅이라는 혁신적인 구단 운영을 설계했지만 이장석 전 대표와 갈등 끝에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이 전 대표의 구속과 재판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2008년 이 전 대표 앞에서 더 큰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 감수했던 박 교수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국가대표선수회 회장도 그렇고 대한야구협회 마케팅 이사 등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해왔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히어로즈 단장이라는 ‘악역’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다 털어놓고 싶다. 리그 축소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이장석 대표(이하 이 대표)를 믿었던 것이 실수였다. 제발 살려달라며 구단 지분 40%를 줄 테니 단장을 맡아달라고 했었다.”
-처음 듣는 말이다. 이 대표가 재미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내건 것도 똑같은 ‘지분40%’다. 결국 0.1%도 넘기지 않았다. 박 교수도 히어로즈 주주명부에 이름이 단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다. 욕심 보다는 야구인으로서 하루 3경기가 열리는 리그와 4경기가 열리는 리그는 향후 발전 가능성에서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프로야구 구단 가치로 800억~1000억원이 거론되지만 당시 KT, 농협, STX 모두 다 손을 들었다. 이 대표는 내게 ‘돈이 있다. 걱정 마라’고 했다. 운영자금만 벌어오면 나머지는 자신이 해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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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첫 출발부터 자금난에 시달렸다.

“돈을 벌기 위해 죽어라 뛰었다. 지금도 김동수, 송지만, 정민태, 전준호, 이숭용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후배들을 위해 100% 고용승계를 요청하며 자신들의 연봉이 크게 깎이는 것을 받아 들였다.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8개 구단 리그는 유지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일찌감치 선수 장사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작부터 현금 트레이드를 구상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단장은 언론에 ‘현금 트레이드, 선수 장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이미 다른 구단과 협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선수단 연봉으로 32억원만 줬다. 선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FA(프리에이전트)처럼 계약서에 옵션을 많이 걸었다.”

-결국 현금 트레이드 문제로 대립하다 1년 만에 단장을 사임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달라고 난리였다. 이 대표는 결제를 미뤘고 원정 숙소 호텔 지배인이 따지러 오고, 밥값 받으러 오고…. 차라리 7개 구단으로 가자는 말이 가장 아팠다. 여러 오해도 있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해설할 때보다 수입이 크게 줄었었다. 법인카드도 없었다. 급할 때는 개인 돈 먼저 쓰고 나중에 결제 받는 일이 반복됐다. ‘박노준이 있으면 선수 못 판다’는 말이 들렸다. 가입금 납부 등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거짓말 하면 함께 할 수 없다’고 하고 나왔다. 물론 주식은 단 한 주도 안 받았다.”
-선수출신 첫 번째 단장의 조기 퇴장이었다. 그러나 네이밍 마케팅 등 그 때 구축한 시스템은 히어로즈가 스포츠기업으로 자생력을 갖춰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얼마 전에 히어로즈가 700억 원 대 매각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구단이 성장하고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대표는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 지분 40%를 투자자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빨리 정상적인 구단이 돼 더 큰 발전을 이뤘으면 한다.”

돌이켜보면 2008년은 KBO리그와 한국프로스포츠의 큰 위기였다. 만약 현대가 그대로 해체돼 7개 구단 체제로 축소됐다면 지금의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박 교수는 “잊고 싶은 것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배운 점도 많았다. 앞으로도 스포츠 발전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털어놓은 기억의 조각들은 꼭 새겨야 할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의 한 단면이다.

●박노준 교수는?

▲생년월일=1962년 10월 26일 ▲출신교=봉천초~선린중~선린상고~고려대~성균관대 스포츠산업학 석사~호서대학 벤처경영학 박사 ▲프로선수경력= OB 베어스(1986~1992)~해태 타이거즈(1992)~쌍방울 레이더스(1993~1997년) ▲주요경력= ITV, SBS 해설위원~우리 히어로즈 단장~대한야구협회 기획, 마케팅 이사~ 우석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교수(현)~국가대표선수회 회장(현)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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