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은퇴식에서 기념 꽃다발을 받고 있는 조선행, 이상수, 이성일 심판(왼쪽부터). 사진제공|KOVO
11일 대한항공-OK저축은행의 도드람 2018~2019 V리그 마지막 경기가 벌어지던 날 3명 전임심판의 은퇴식이 벌어졌다. 배구 팬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경기장에 온 몇몇 관중들만 지켜봤던 행사였다.
● V리그 출범 공신들의 조용한 퇴장
심판들은 일당 7만원(주·부심)과 3만원(선심)을 받고 막 출범한 V리그의 공정한 판정을 위해 뛰어들었다. 15시즌이 지난 지금 심판의 출전수당은 40만원과 20만원으로 올랐지만, 한 시즌 동안 많이 출전해봐야 40경기다. 말은 전임심판이지만 떳떳하게 직업으로 내세울 만한 대우도 아니다. 출범 당시 4만원이었던 연습경기 수당은 지금도 여전히 4만원이다.
겨울 6개월 동안 진행되는 리그의 특성상 이들을 프로야구 심판처럼 대우해주기도 어렵다. 소수 전임심판의 연봉도 대중에 공개하기 창피할 정도다. 야구 농구와는 달리 배구는 한 경기에 많은 심판이 투입된다. 주·부심과 대기심 등 3명, 선심 4명, 기록전담 심판 2명 등 9명이 필요하다. 하루에 2경기가 열린다는 가정 아래 2개의 경기투입 팀과 1개의 예비 팀을 뒀을 때 27명이 필요하다. 팬들은 ‘왜 어제 봤던 문제의 심판이 또 나오느냐’고 말하지만 현재 KOVO가 보유한 심판 풀이 풍부하지 않다. 8명의 주·부심과 19명의 선심, 기록심으로 운영한다.
● 냉정한 대중의 시선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그들
대중은 기계보다 더 완벽한 눈을 원한다. 현장의 감독과 선수들은 판정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항의를 한다. 이는 심판에게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를 준다. 직업병으로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심판들의 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이번 시즌 있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경기 도중 선심이 과도한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만큼 심판들도 경기에 책임을 느끼고 잘하려고 하지만 현실은 결과만을 원한다.
잘해봐야 본전인 이들이 없다면 리그는 돌아가지 않는다. 간혹 오심이 날 때마다 “그 심판을 자르고 다른 심판을 데려와라” “외국인심판을 써라” “사람대신 기계를 쓰자”고 외친다.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2일 퇴임하는 심판들을 위한 송별회에서 몇몇 이들은 그동안 가슴에 쌓아뒀던 말을 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2개였다. “우리는 대접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존중받고 싶다” “우리는 일꾼보다 못 한 처지다. 부르면 가서 심판을 보고 사람들이 잘못 봤다고 하면 강제로 쉰다. 건설현장의 일꾼도 이런 취급을 받지 않는다.”
공정한 판정은 리그의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리그의 신뢰와 품격은 판정이 얼마나 정확하고 깨끗했느냐에 달려 있다.
KOVO 심판들은 그동안 충분히 노력해왔고 깨끗한 판정을 내려왔다. 다가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헌신해온 그들에게 비난 대신 자부심을 심어줄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