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 스포츠동아DB
시즌의 절반도 치르지 않은 시점. 당장 남은 시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통산기록도 쌓인 게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2020시즌 기록만은 숱한 전설들과 비교하기에 손색이 없다. 구창모(23·NC 다이노스)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퍼포먼스가 선동열(57), 구대성(51·이상 은퇴),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 등 ‘레전드’를 소환 중이다.
‘삼진은 많이, 볼넷은 적게!’ 단순한 명제지만 결코 쉽지 않다.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들은 대개 제구가 흔들려 볼넷을 내주는 경우가 잦고, 반대로 볼넷이 적은 핀 포인트 제구의 투수가 구위까지 갖추기는 어렵다.
올해 구창모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고 있다. 18일까지 12경기에서 80이닝을 소화하며 92삼진을 빼앗는 사이 15볼넷만 허용했다. 9이닝당 평균으로 환산했을 때 탈삼진은 10.35개(1위)인 반면 볼넷은 1.69개(5위·토종 1위)뿐이다. 9이닝당 탈삼진 2위 드류 가뇽(KIA 타이거즈·9.36개)의 경우 볼넷은 3.07개(19위)로 적지 않은 편이다. 반대로 구창모보다 9이닝당 볼넷을 적게 내준 외국인투수 4명의 9이닝당 탈삼진은 8개 수준으로 차이가 크다. 많은 삼진과 적은 볼넷의 공존은 이처럼 어렵다.
내용을 뜯어보면 구창모는 올해 상대한 타자의 31.3%를 삼진으로 솎아냈다. 반대로 볼넷으로 1루까지 공짜 출루를 허용한 것은 5.1%에 불과하다. 차이는 26.2%로 압도적이다. 절반 이상의 시즌이 남았지만, 이 페이스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KBO리그 39년 역사상 3번째로 높은 수치다. 1위는 1993년 선동열(33.3%), 2위는 1996년 구대성(29.9%)이다. 그 뒤로 1988·1991·1988년의 선동열이 있고, 7위가 2012년의 류현진(22.3%)이다. 애초 탈삼진 비율에서 볼넷 비율을 뺀 수치가 20을 넘은 사례가 KBO리그 역사에 12명뿐이다.
18일 창원 KT 위즈전에선 7이닝 10삼진 2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9승(무패)째를 따냈다. 올해 3번째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였다. 이대로라면 1984년 최동원(당시 롯데 자이언츠) 이후 36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기록도 사정권에 든다. 지금 페이스라면 구창모는 214삼진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매 경기 컨디션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즌 최악의 컨디션이라고 자평한 7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에도 양의지의 허를 찌르는 리드 덕에 7이닝 6삼진 1볼넷 1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이동욱 NC 감독도 구창모에게 한 차례 휴식을 주는 등 무리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발걸음만으로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가 워낙 강렬하기에 더 큰 역사를 기대할 만하다. 올해 구창모는 KBO리그 최고 투수를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