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리그 모든 팀의 숙제인 소통과 즐거운 훈련

입력 2021-02-03 0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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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 전 대한항공 감독이 들려준 얘기다. 2016년 대한항공 사령탑에 오른 뒤 가장 먼저 선수들의 소원수리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모든 선수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감독을 선임하는 특별한 과정을 거쳤다. 베테랑 감독은 선수들의 진솔한 생각을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일 네가 감독이라면 어떤 팀을 만들고 싶냐”고 물었다. 선수들이 각자 써낸 다양한 답변 가운데 공통적인 것이 2개 있었다. 첫째는 ‘소통’이었고 둘째는 “훈련장이 즐거웠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한항공 재임기간 그가 어디에 많은 신경을 썼을 지 짐작이 간다.



소통과 즐거운 훈련은 대한항공뿐만이 아니라 V리그 모든 팀의 선수들이 원하는 일이다. 감독이 앞장서고 선수들이 뒤를 따르는 리더십을 선호하던 과거와는 달리 21세기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함께 리더십’을 감독들에게 요구한다. 이를 위해 감독들마다 소통을 외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단어 자체는 간단해도 저마다 생각하는 의미가 달라서다. 가장 흔한 오류는 내가 말하고 아랫사람은 듣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오류는 평소에는 소통이 되는 듯하다가도 정작 중요한 결정 단계에서는 윗사람의 생각대로 끝내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소통은 사라진 채 공허한 말만 오간다.

선수들은 현장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해결할 권한이 없다. 위에서 물어봐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눈치만 본다. 상명하복이 존재하고 선후배 관계라는 복잡한 서열관계마저 얽혀 있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들이 먼저 마음 편하게 입을 열도록 팀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요즘 감독들이 타임아웃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밝은 얼굴로 편하게 하라”라는 말이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한술 더 떠 “코트가 너희들 놀이터다. 가서 마음껏 놀아라”고 한다. 좋은 얘기지만 훈련 때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선수가 실전에서 편하게 뛰놀기는 쉽지 않다. 훈련 때도 경기 때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하면 V리그는 그런 면에서 많이 깨우쳤다. 벤치나 웜업 존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선수들이 원하는 즐거운 훈련도 결국은 소통으로 귀결된다. 어느 팀의 외국인선수는 “V리그의 훈련방식을 존중하지만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훈련 때 다양한 기술을 시도해보는데 이를 바라보는 지도자들의 눈길이 때로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경기 때 나올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을 가정해서 평소와는 다른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이라는 얘기다.



“훈련 때 코치들이 때려주는 공을 리시브해서 공격으로 연결하는 훈련을 반복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 선수가 그렇게 정직하게 서브를 넣지 않는다. 그래서 훈련과 실전 때 리시브에 차이가 생긴다. 차라리 선수들끼리 전력을 다해서 서브를 넣고 2단 연결이 많은 상황에서 실전처럼 공을 때려야 효과가 클 것”이라고 그 외국인선수는 믿고 있다. 이런 다양한 선수들의 의사가 훈련에 반영된다면 분명 그 팀의 훈련은 즐거워질 것이다. OK금융그룹 진상헌이 유튜브에서 열심히 찾아낸 새로운 훈련방법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팀 훈련에 도입시킨 석진욱 감독의 열린 마음은 그런 면에서 좋은 사례다.

이제 5라운드가 한창이다. 모든 팀들이 ‘버티기’를 말하지만 훈련을 즐기면서 마음으로 소통하는 팀이 봄에 웃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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