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이다영(왼쪽)-이재영. 스포츠동아DB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체육 분야는 그동안 국민에게 많은 자긍심을 심어줬다”면서도 “그늘 속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왔다. 이 같은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배구계를 강타한 학교폭력(학폭) 사태를 염두에 둔 당부로 풀이된다.
최근 대한민국 체육계는 음지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로 인해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쇼트트랙 심석희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체육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에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국가대표였던 고(故) 최숙현이 소속팀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이 분노했다.
이 여파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배구계에서 국가대표급 스타 선수들의 과거 학폭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 이재영-이다영(이상 25), 남자부 OK금융그룹 송명근(28)-심경섭(30)이 가해자였다.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는 구단으로부터 무기한 출전정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무기한 국가대표 제외의 징계를 받았다. 배구협회는 지난해 열린 ‘2020 배구인의 밤’ 행사에서 이재영-다영의 어머니 김경희 씨에게 수여한 ‘장한 어버이상’ 수상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송명근과 심경섭도 일단 ‘도드람 2020~2021 V리그’ 잔여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며 자숙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되면서 V리그 구단들은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14일 오후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기존에 언급되지 않았던 선수를 지목한 “여자배구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글쓴이는 “요즘 학폭 때문에 말이 정말 많다. 그 글을 보면서 나도 10년 전 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며 “정말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선배들한테는 미움의 대상이었다”고 떠올리며 가혹행위와 폭언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글쓴이는 가해 선수를 명시하진 않은 채 자신의 과거 선수 이력을 증명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 지원 포털의 캡처 사진을 공개했다. 만약 이 폭로마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배구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최초로 학폭 사실을 알린 피해자의 이야기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2차, 3차 폭로가 이어지고 있어 배구계는 물론 국내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은 한층 더 싸늘해지고 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