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정. 사진 | 뉴시스
최인정(33·계룡시청)은 대한민국 여자 펜싱 에페의 강자다. 2012런던올림픽을 시작으로 2014인천아시안게임(AG), 2016리우올림픽, 2018자카르타-팔렘방AG, 2020도쿄올림픽 등 메이저 국제종합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리우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입상에 성공했다. 그만큼 대표팀에서 입지가 확실하다.
그러나 정복하지 못한 고지가 하나 있었다. 메이저 국제종합대회 금메달이다. 런던올림픽과 도쿄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인천AG 개인전과 단체전 은메달, 자카르타-팔렘방AG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은메달 등 번번이 목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번 2022항저우AG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던 이유다.
불운도 겹쳤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최인정에게 비난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자카르타-팔렘방AG 개인전을 마친 뒤 “나는 욕을 먹어야 한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쏟았다. 쑨이원(중국)과 준결승전에서 10-7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연속 실점한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체전 결승에서도 28-28 동점에서 골든포인트를 내줬다. 도쿄올림픽 단체전 결승전에서는 26-26으로 맞선 9라운드에 에스토니아 선수(카타리나 레히스)에게 3연속실점하는 등 징크스가 계속됐다.
그러나 항저우에선 달랐다. 여유 있게 예선을 통과한 뒤 8강전부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율리아나 피스초바(카자흐스탄)를 15-7로 제압한 뒤 준결승전에선 딜나즈 무르자타에바(우즈베키스탄)를 15-12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후배 송세라(부산시청)가 일찌감치 결승진출을 확정한 상황, 최인정의 준결승전 승리는 대표팀으로서 엄청난 경사였다.
객관적인 전력은 2022카이로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최근 상승세가 엄청났던 송세라의 우위였다. 8-8 동점으로 시작한 연장전에서도 정규시간 안에 더 많은 공격을 시도했던 송세라가 유리했다. 동점으로 연장전이 끝날 경우 송세라가 금메달을 가져가는 상황. 최인정은 반드시 득점해야 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최인정은 과감한 공격으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세리머니는 없었다. 최인정은 피스트 중앙으로 걸어가 송세라를 안았다. 본인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후배를 먼저 챙긴 것이다. 종합국제대회 금메달로 실력을 인정(認定)받은, 인정(人情) 많은 베테랑의 품격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려고 한다”고 마지막을 알렸다.
최인정의 AG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7일 단체전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개인전 결승에서 적으로 만났던 송세라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피스트에 오른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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