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파리] 母 영전에 눈물의 메달 바친 정나은, “엄마와 함께 한 파리올림픽이었다”

입력 2024-08-03 05: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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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은(오른쪽)은 파트너 김원호와 함께 3일(한국시간) 2024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에서 3년 전 사별한 어머니를 떠올린 정나은은 “지금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실 것 같다”고 울먹였다. 사진출처 |세계배드민턴연맹 공식 SNS

정나은(오른쪽)은 파트너 김원호와 함께 3일(한국시간) 2024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에서 3년 전 사별한 어머니를 떠올린 정나은은 “지금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실 것 같다”고 울먹였다. 사진출처 |세계배드민턴연맹 공식 SNS


“어머니의 기일부터 막을 올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

한국배드민턴 사상 첫 2000년대생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거듭났다. 코트 취재를 다닐 땐 기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예의와 친화력을 두루 갖춘 밝은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생애 첫 올림픽에서 메달을 걸고 울먹일 땐 흔히 말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나은(24·화순군청)의 눈물은 하늘에서 자신을 응원해준 어머니를 기리는 눈물이었다. 3일 라샤플레아레나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정나은은 파트너 김원호(25·삼성생명)와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세상을 떠난 어머니께서 이 은메달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 기쁘다”고 입상 소감을 밝혔다.

정나은은 2021년 7월 어머니와 사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창궐하던 시절 어머니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 하필 당시 유행하던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정나은은 이날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팬데믹 시기 때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당시 거리두기 규제가 심할 때라 결국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정나은(왼쪽)-김원호는 3일(한국시간) 2024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나은은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어머니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다. 사진출처 |세계배드민턴연맹 공식 SNS

정나은(왼쪽)-김원호는 3일(한국시간) 2024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나은은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어머니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다. 사진출처 |세계배드민턴연맹 공식 SNS


정나은에게 어머니는 각별했던 존재였다. 초등학생 시절 배드민턴을 생활체육으로 즐기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라켓을 잡았다. 창덕여고 2학년 겨울 첫 국가대표 선발전 통과와 고교 졸업 후 화순군청 입단 등 탄탄대로를 걸을 때마다 늘 어머니는 정나은과 함께했다. 어머니의 임종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늘 자책한 이유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정나은에게 목표가 생겼다. 생전 어머니와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정나은은 “어머니가 늘 핸드폰에 내 이름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정나은’으로 저장해두셨다. 꼭 올림픽 금메달을 어머니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생각만으로 지난 세월을 보냈다”고 밝혔다.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다. 매년 진천국가대표선수촌과 소속팀, 해외투어를 오가며 쉴 틈이 없었지만,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여자복식은 김혜정(27·삼성생명), 혼합복식은 김원호와 함께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창덕여고 1학년 시절 국가대표 여자단식 선발전에서 떨어진 뒤, 복식선수로 전향해 1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춘 그가 독기를 품고 코트에 섰으니 세계정상급 선수로 거듭날 만 했다.
정나은은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고루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28LA올림픽까지 대표팀에서 큰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가 4년 뒤엔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 스포츠동아DB

정나은은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고루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28LA올림픽까지 대표팀에서 큰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가 4년 뒤엔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 스포츠동아DB


생애 첫 올림픽인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에서도 어머니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 정나은은 “어머니의 기일이 7월 27일인데, 이날 대회 첫 경기인 조별리그 A조 1차전(인도네시아·1-2 패)을 치렀다. 파리올림픽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임했던 이유”라며 “우여곡절 끝에 토너먼트에 올라 결승까지 갔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나를 지켜줬다고 생각한다”고 울먹였다.

약속에 근접한 결과를 냈으니 마음이 가벼워질 법도 하다. 그러나 정나은은 멈추지 않는다. 파리올림픽 이후 대표팀 복식조 개편이 불가피해지면서 정나은처럼 경험과 실력 모두 갖춘 젊은 선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기 백하나(24·MG새마을금고), 이유림(24·삼성생명) 등과 펼칠 선의의 경쟁도 기대를 모은다. 정나은 자신도 벌써부터 다음 목표를 2028LA올림픽 금메달로 설정했다.

“지금 은메달도 어머니께서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정나은은 “무조건 금메달에 도전하겠다.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모두 자신있다”고 웃었다. 4년 후 LA에선 정나은이 울먹이는 대신, 환하게 웃으며 금메달을 자축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파리|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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