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와 브라이슨 디샘보- 다시 보는 US오픈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16〉

입력 2024-11-07 10: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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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트럼프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의 호명으로 연단으로 올라온 브라이슨 디샘보(앞줄 맨오른쪽). 트럼프를 지지하는 MAGA 모자를 쓰고 있다.  TV방송 화면 캡쳐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트럼프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의 호명으로 연단으로 올라온 브라이슨 디샘보(앞줄 맨오른쪽). 트럼프를 지지하는 MAGA 모자를 쓰고 있다. TV방송 화면 캡쳐



제45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됐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벤스 부통령을 먼저 불러 마이크를 넘겼고, 다음으로는 공동 선대위원장이자 비서실장으로 유력한 수지 와일스를 불렀다. 와일스는 마이크를 잡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대신에 다른 공동 선대위원장인 크리스 라시비타가 마이크를 잡고 승리를 축하했다. 다음으로 트럼프가 찾은 인물은 뜻밖에도 US오픈 챔피언인 브라이슨 디샘보였다. 디샘보는 연단에 없었다. 디샘보가 없다면 다음으로 넘어갈 만했지만, 트럼프는 끝까지 디샘보를 찾았고 디샘보는 상기된 얼굴로 뒤늦게 연단에 올랐다. 선거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론 머스크보다 브라이슨 디샘보를 먼저 언급한 것은 디샘보가 트럼프 승리에 공을 세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파인 허스트 넘버2에서 개최된 US오픈에서 로리 매킬로이는 10년 만에 찾아온 메이저대회 우승을 허무하게 놓쳤다. 16번 홀과 18번 홀에서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80cm와 1m 퍼팅을 놓쳤다. 디샘보가 18번 홀에서 1.2m의 퍼팅에 성공하면서 US오픈 챔피언에 올랐다. 그때가 6월 16일이었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대선 TV토론을 벌인 것은 6월 27일이었다. 두 후보는 골프 실력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 7월 6일에 디샘보와 트럼프는 트럼프가 소유하고 있는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같이 골프를 쳤고, 그것이 디샘보 유튜브 채널 ‘브레이크 50’에 방영됐다.
브라이슨 디샘보 유튜브 ‘브레이크 50’의 도널드 트럼프 편의 썸네일, 트럼프를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로 표시하고 있다. 사진출처 : 유튜브 화면

브라이슨 디샘보 유튜브 ‘브레이크 50’의 도널드 트럼프 편의 썸네일, 트럼프를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로 표시하고 있다. 사진출처 : 유튜브 화면


해당 유튜브 방송은 129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41만개의 ‘좋아요’를 받았으며, 48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번 대선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댓글의 주된 내용은 트럼프에 대한 칭찬이었다. 필자도 다른 칼럼에서 트럼프가 클럽 챔피언을 차지했다는 사실과 그의 핸디캡이 2.8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쓴 적 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보인 트럼프의 골프 실력은 상당했고, 그의 골프 매너는 깔끔했다. 디샘보와 트럼프는 50타를 깨지는 못했지만, 50타를 기록하여 ‘브레이크 50’ 방송 사상 가장 낮은 타수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디샘보 도움 없이 홀로 이글을 기록하기도 했다.

해리스를 지지하고 트럼프를 혐오하는 골퍼는 이 방송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의 말을 듣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그의 골프 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와 중도층 골퍼는 이 영상을 봤을 것이다. 그들이 유튜브 방송에 남긴 댓글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트럼프를 오랫동안 지지해 왔지만, 트럼프가 골프를 잘 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트럼프가 이렇게 골프를 잘 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영리하다.’
‘트럼프가 평범한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골프라는 멋진 게임을 즐기러 나와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신선했다. 캐디와 이야기하면서 캐디의 판단을 신뢰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자만심 없이, 단지 잔디 위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트럼프: 나는 좋은 골퍼다. 팩트체크: 맞네’
‘와우! 트럼프가 내 생각보다 정말 잘 친다. 티샷에서 정말 기계처럼 정확하고, 아이언과 퍼팅도 매우 일관성이 있다.’

트럼프의 골프를 보지도 않고 그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골퍼와 트럼프가 골프에 대해서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한 골퍼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이러한 이미지 개선은 골프에만 그치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우리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골프에서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면, 경제·복지·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그가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라는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을 것이다.



골프에 열성인 사람 중 상당수는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중도적이다. 골프에 진심인 사람은 골프 이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디샘보가 민주당 지지자를 트럼프 쪽으로 기울게 하지는 못했겠지만, 트럼프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고 있던 공화당 지지자와 중도층 골퍼에게 트럼프의 이미지는 확실히 개선되었다. 트럼프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승리 연설에서 브라이슨 디샘보를 누구보다 먼저 언급하고 연단으로 올린 것이다.

트럼프는 디샘보를 소개하면서 항상 ‘US오픈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잊지 않는다. 매킬로이가 짧은 퍼팅을 놓치지 않고 US오픈 챔피언이 되었으면 어떠했을까? 트럼프는 바쁜 와중인 7월 6일에 US오픈 챔피언이 아닌 브라이슨 디샘보와 골프를 쳤을까?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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