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은 V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4차례나 제패한 ‘명가’다. 삼성화재(8회), 대한항공(5회)과 함께 정상을 다투며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동시에 후인정, 권영민, 박철우, 문성민, 최민호 등 무수히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역사, 성적, 인기를 모두 갖춘 팀이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대한항공의 아성에 밀렸다. 현대캐피탈이 2018~2019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 이후 정상에 서지 못하는 사이, 대한항공은 2020~2021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사상 첫 통합 4연패를 일궜다. 현대캐피탈로선 대대적 개편이 불가피했다.
변화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 시즌 도중 최태웅 전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놓자, 현대캐피탈은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필립 블랑 일본남자대표팀 감독(65·프랑스)에게 올 시즌 지휘봉을 맡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블랑 감독 선임으로 명가 재건의 기반을 닦았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은 20승2패, 승점 58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2위 대한항공(13승8패·승점 43)과 격차가 크다. 지금의 기세라면 19시즌 만의 정규시즌-챔피언 결정전 통합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성적이 뒷받침되자, 팬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지난 시즌 홈에서 첫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관중은 2201명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2792명이다.
조급하지 않았던 게 호성적의 원동력이다. 블랑 감독은 비시즌 팀의 도약 기반을 닦는 데 주력했다. 특히 서브를 중시하면서도 리시브에 집착하지 않았던 점이 돋보인다. 나쁜 리시브와 세팅에도 좋은 공격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블랑 감독은 “리시브가 흔들리는 날도 준비해야 한다. 좋은 공격 위치 선정으로 나쁜 리시브와 세팅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지도자의 책무’를 강조한 점 역시 인상적이다. 블랑 감독은 부임 후 ‘선수들이 코트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게 지도자의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방법은 원칙주의였다. 훈련 시 선수들에게 명확한 원칙을 제시했고, 세심한 피드백도 곁들였다. 원칙대로 플레이해 이긴 경기가 많아지면서 팀 분위기는 날로 좋아졌다.
블랑 감독은 “선수들이 코트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 미들블로커(센터)들의 신장이 크기 때문에 블로킹 시 맨투맨보다는 리딩을 지시했다”며 “시즌을 거듭할수록 휴식과 운동의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을 잘 유지하면 목표에 더욱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