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여자배구대표팀

입력 2019-08-27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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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라바리니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 12일 여자대표팀 라바리니 감독과 대한배구협회 박기주 여자경기력향상 이사는 V리그 여자구단 감독들과 간담회를 했다. 라바리니 감독 부임 이후 처음 열린 모임이다. 9월 14~29일 일본에서 벌어지는 2019 여자배구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선수 차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선수들을 발리볼내이션스리그(5~6월)와 2020도쿄올림픽 대륙간예선전(8월), 제20회 아시아선수권대회(8월)를 위해 쉼 없이 지원해온 프로팀으로서는 월드컵에 또 주전들을 내보내주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혹사를 걱정했다.

9월 순천 KOVO컵 출전은 그렇다 쳐도 훈련마저 어려운 팀도 있었다. IBK기업은행은 김수지 김희진 이나연 표승주 등 주전 4명이 대표팀에 차출됐다. 표승주는 FA선수로 GS칼텍스에서 이적한 뒤 첫 시즌이다. “아직 선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주전멤버로 보름도 채 연습하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IBK 기업은행 김우재 감독은 그동안 걱정했다.

게다가 몇몇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부상을 당했다. 그 팀의 감독은 “괜히 대표팀에 데려가서 우리 선수만 바보를 만들었다. 한두 번도 아니다”고 했다. 자부심이 대단한 라바리니 감독이 “나와 함께 훈련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선수들에게 했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회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감독이라 전달하는 과정에서 좋은 의미가 왜곡됐을 수도 있기에 발언의 진위는 확인해봐야 한다. 하여튼 그날 고성이 오갈 정도로 미팅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꼭 이겼어야 했던 러시아와의 도쿄올림픽 대륙간예선전 패배 이후 프로 감독들의 시선은 좋지 못하다. 3세트 22-17에서의 역전패는 불운이 겹친 것이지만 승패의 책임은 결국 감독이 진다. 게다가 잔치판을 열어준 대한배구협회의 체면을 생각했더라면 반드시 이겼어야 할 일본과의 아시아선수권대회 4강전마저도 패했다. 그 것도 10대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배구협회는 중재에 나섰다. 라바리니 감독은 월드컵 때도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모두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 경우 반발이 거셀 것을 우려한 배구협회에서는 특정 팀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골고루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내부방침을 알렸다. 아직 라바리니 감독은 왜 대표팀 차출을 구단과 선수가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대표선수 선발은 선수에게 주는 특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쪽도 분명 있다.

국제대회 성적이 좋아야 V리그의 인기가 높아지고 한국배구의 위상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참에 지금 같은 차출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시즌 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소속팀과 손발도 맞춰보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충분한 휴식과 준비가 필요하다. 강요가 아닌 선수와 소속구단의 자발적인 의지로 대표팀이 운영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몇 년째 주장해왔지만 아직도 국제대회의 경중에 따라 대표선수를 폭넓게 선발하지 않고 몇몇 주전만 혹사시키고 있다.

4년 전의 월드컵은 참가국 12개 팀 가운데 상위 2개 팀에게 2016리우올림픽 출전권을 줬기에 전력을 다했다. 베스트멤버로 출전할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일본이 개최하는 월드컵은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대회로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와 함께 가장 비중이 크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대륙간예선전부터 시작해 3개 대회가 연달아 열린다는 것을 감안했다면 보다 폭 넓은 선수기용이 필요했다.

아시아배구연맹(AVC)이 주관하는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월드컵 가운데 어디가 중요한지는 대한배구협회도 잘 안다. 다만 아시아선수권대회는 배구협회 집행부가 대회를 유치했고 홈에서 처음으로 배구 팬에게 우승을 선물하고 싶다는 협회의 의지가 컸다. 그래서 선수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월드컵에 나가지 않는 태국은 주전멤버가 모두 출전했다. 이미 올림픽 출전을 확정한 일본과 중국은 2진을 파견했다. 우리만 피치 못할 상황에 끼어 선수들이 고생했고 결과도 좋지 못했다.

현재 한국배구의 최고과제는 가뜩이나 대체할 자원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귀한 선수를 아끼고 관리를 잘 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표팀 운영은 걱정스럽다. 대회마다 끌려 다니는 선수들이 불쌍하게 보인다. 부디 이들이 다치지 않고 내년 1월까지 잘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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