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그 선택과 여자배구 제7구단 창단의 새로운 기회

입력 2019-09-09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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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구단들이 자발적으로 V리그 연고가 아닌 지역을 찾아가서 배구의 매력을 알리는 이벤트매치는 이제 V리그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6~8일 광주 빛고을체육관에서 열렸던 여자프로배구 4개구단 초청경기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6일 1100명, 태풍 링링의 영향을 받았던 7~8일 각각 1800명, 185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은 것을 보면 광주의 배구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관중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도로공사 IBK기업은행 현대건설 KGC인삼공사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2008년 한일 톱매치 이후 처음 광주를 찾은 프로배구를 위해 지역사회가 준비한 마음 씀씀이가 눈에 띄었다. 이들은 무엇 하나 소홀한 것은 없는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물어가며 성심껏 행사를 준비했다. 대회를 주관한 광주광역시배구협회는 7일 전 선수단을 초대해 멋진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도 대접했다. V리그 시상식보다도 음식은 고급스러웠고 분위기도 좋았다. 보통의 저녁 자리라고 미리 짐작했던 선수들이 놀랄 정도였다. “손님이 오면 정성껏 대접하는 예향 남도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광주광역시 전갑수 배구협회장은 말했다. 그날 외국인선수들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프로구단도 화답했다. 7일 경기장을 채운 관중들을 위해 구단들이 관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대접했다. 선수들은 비시즌 동안 준비해온 것들을 코트에서 열심히 보여줬다. 멋진 플레이가 속출했다. 그때마다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배구를 즐길 줄 아는 수준 높은 관전태도와 사흘 동안 경기장을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중 모습에서 광주의 저력을 봤다. 프로배구팀의 연고지로 충분한 인프라를 갖췄고 V리그가 놓쳐서는 안 될 시장이라는 것을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은 확인했다. 특히 광주가 고향이거나 이 곳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백목화 김주향(이상 IBK기업은행) 문정원 정선아(이상 도로공사) 등을 향한 팬들의 사랑은 대단했다.

선수들은 경기가 없는 오전, 지역의 유소년 배구팀을 찾아다니며 배구클리닉을 해주며 좋은 추억을 남겼다. 배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역 유소년배구를 위해 배구용품 500만원 어치도 선물했다.

이번 행사를 보면서 문득 몇 달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광주시의 배구인과 정치인들이 수원시 연고의 한국전력 배구단을 광주로 가져오겠다면서 프로배구 판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당사자인 한국전력 배구단으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수원에 10년간 연고를 두고 있었고 다시 연고계약을 맺으려던 참에 구단과 선수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연고지를 옮기라고 했다. 당시 한국전력은 새로운 훈련장과 숙소 등을 수원 인근에 지으려던 참이었기에 연고지 이전 요구는 난감했다.


한국전력 본사가 광주 인근의 혁신도시에 있다는 이유로 프로배구단도 반드시 이 곳에 있어야한다는 주장은 사실 모두가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더 문제는 정상적인 연고지 이전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구단 스스로의 필요가 아니라 정치권 등 다양한 외부의 압박으로 연고지를 이전시키려고 했다. 그나마 한국전력 배구단과 선수들이 받는 혜택이 좋으면 검토라도 해보겠지만 “ 오면 다 해결해준다”는 막연한 약속이 전부였다. 훈련장과 숙소, 경기장 시설 어느 한 가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프로비지니스를 이해하지 못했고 너무 서둘렀던 연고지 이전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물론 겉으로 드러났던 내용 외에도 많은 사연이 그 속에 숨겨져 있지만 세상은 모든 것을 다 까발려서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과거의 일은 기억의 저편으로 묻어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발전이 있다.

당시 한국배구연맹(KOVO)은 광주로의 연고지 이전 의사를 전하러 온 대표단에게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신생팀 창단을 제의했다. 이는 한국전력은 물론 프로배구계 모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아이디어였다. 지방에 연고를 둔 공기업에게 향하는 다양한 압박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정말로 배구단을 원한다면 이 참에 신생팀을 만들면서 연고기업으로부터 네이밍스폰서 등 다양한 방법의 지원을 받는 것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신생팀 창단은 모든 배구인과 팬들이 원하는 축복받는 일이고 V리그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게다가 광주는 여자배구 스타를 많이 길러낸 풍부한 인적자원도 가졌기에 방향만 돌리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유치를 꿈꾸던 사람들은 여자배구팀 창단을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광주에서 유소년배구를 했던 여자배구 최고유망주 정호영은 KGC인삼공사 선수가 되어 8일 빛고을경기장을 찾았다. 만일 그때 다른 판단을 했더라면 이번 초청경기는 광주 연고의 여자프로배구단 창단을 기념하는 대회가 됐을 것이고 더 많은 지역 배구팬의 응원과 기대 속에서 열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선택이 아쉽지만 아직도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6일 빛고을체육관을 찾았던 광주광역시 이용섭 시장은 여자구단 단장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때 여자배구팀이 남자팀보다 유리한 여러 이유와 여자 신생팀 창단 움직임과 관련한 얘기도 들었다. 이용섭 시장은 즉시 관련공무원을 불러 “여자신생팀 창단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광주시의 스포츠정책 방향에서 여자프로배구팀 창단이라는 내용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이용섭 시장은 그날 관중에게 인사말을 할 때 “광주에 꼭 프로배구단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화답하듯 몇몇 여자부 감독들은 “만일 지금이라도 신생팀이 창단되면 지명했던 선수들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실현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그만큼 창단을 위해 도와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분위기는 차츰 무르익고 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느냐 마느냐는 광주시의 현명한 상황판단과 하겠다는 의지에 달렸다. 이제는 모두가 광주를 응원한다.

광주 |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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