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한국전력은 장병철 신임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아 제2의 창단과 다름없는 대대적인 변화 속 2019∼2020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새 시즌 개막에 앞서 새 유니폼을 입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는 한국전력 선수단. 사진제공|한국전력 배구단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한국전력 선수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산 썸머매치에 참가했고 제주도에서 전지훈련도 했다. 일본 전지훈련이 최근 정세와 맞물려 취소되자 발 빨리 움직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의왕 훈련장에서 보냈다.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보듯 요즘 구단의 지원과 의사결정은 빨라졌다. 많은 절차와 관계된 윗사람들의 허락이 줄어들어서다. 그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이 있다. 훈련장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영상으로 담아 훈련 도중 스스로 문제점을 찾도록 했다. 다른 구단의 것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크기와 화질이다. 구단은 명분 있는 지원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가능한 빠르게 현장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 창단과 다름없는 시즌 준비
지난 시즌 에이스 전광인의 FA 이적과 외국인선수 선택 불운이 겹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개막 이후 16연패를 했다. 토종 선수들끼리의 배구는 결정력이 떨어졌다. 선수단은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서재덕은 헌신적인 리더역할을 했다. 탄탄한 수비는 상대팀에도 감동을 줬다. 비싼 교훈 덕분에 선수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패배가 눈앞에 있는 순간에 어떻게 버텨야 하고 누굴 믿어야 할지 잘 안다.
시즌 뒤 김철수 감독이 물러났다. 장병철 수석코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팀의 문제점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생각해왔다. 감독이 되자 용감하게 개혁을 선택했다. FA영입이나 트레이드로 원하는 선수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해결방법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실력을 늘리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사진제공|한국전력 배구단
● 자율은 공짜로 오지 않는다
감독은 먼저 선수들에게 자율을 보장했다. 대신 그 책임과 함께 프로선수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것들을 주문했다. 결과를 공개된 평가시스템으로 알렸다. 새로운 정책방향을 따르지 않은 선수들과는 결별했다. 이름값과 다음 시즌 활용도, 성적보다는 한국전력 배구단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의 숙명”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요즘 장병철 감독은 ‘기브&테이크’를 말한다. “선수들에게 숙소생활 선택 등의 자유를 먼저 줬다. 그 대답은 훈련장에서 열심히 하고 프로선수로서 완벽한 몸 상태 유지와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만일 자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유도 없다”고 했다. 배구는 공을 주고받는 기브&테이크가 중요하다. 특히 잘 받는 선수가 많아야 팀이 탄탄해진다.
최근 시즌준비 과정에서 어느 선수의 경기력이 떨어졌다. 이유를 찾아봤다. 자유를 얻어 숙소 밖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주변상황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갔다. 장병철 감독은 먼저 선참들을 불렀다. “당분간 함께 숙소에서 잠을 자면서 외부요인에서 오는 문제점을 찾아보자”고 했다. 선참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감독의 진심 어린 부탁에 뒷말이 나오면 그 팀의 미래는 뻔하다. 다행히 지금 한국전력 선수단과 프런트는 감독의 말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인다.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솔선수범했기에 가능했다.
한국전력 가빈. 사진제공|한국전력 배구단
● 2번의 구슬뽑기 행운의 결과는
장병철 감독은 2번의 중요한 구슬뽑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외국인선수로 제1순위 가빈 슈미트를 뽑았다. 삼성화재 시절 보여줬던 기량이 압도적이기에 모든 팀들이 원했다.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난 시즌 서재덕의 역할보다는 모든 수치에서 앞설 것으로 기대한다. 가빈은 인성과 친화력이 좋았다. 먼저 나서서 동료들을 이끌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준비해나가는 모습에 프런트는 안심했다.
지난 시즌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시킨 윙공격수 4총사(최홍석~김인혁~공재학~신으뜸)는 깊이와 능력 면에서 다른 팀에 떨어지지 않는다. 최홍석은 8월 갑상선에 작은 종양을 발견해 수술했다. 우리카드 시절부터 추적관찰 대상이던 종양이었다. 전이를 염려해 조기에 수술을 받았다. 암에서 완치된 최홍석은 순천 KOVO컵부터 조금씩 경기감각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가빈에게 화력을 집중시키겠지만 가빈에게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이 과제다. 매끄럽고 안정적인 리시브와 수비로 버텨야 한다. 김인혁과 공재학, 신으뜸 등이 한국전력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리베로 김강녕과 함께 공을 받는 기초를 잘 다져줘야 순위상승이 가능하다.
● 가빈의 파트너 찾기와 중앙의 약점
시즌 성적의 변수는 가빈의 능력을 최대화 할 세터의 역량이다. 지난 시즌 주전 이호건과 FA 영입선수 이민욱이 경쟁한다. 현재는 이민욱이 A팀에서 훈련한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은 김명관도 있다. 장신이어서 가빈과의 하모니가 기대된다. 가빈과 가장 어울리는 선수가 주전으로 낙점될 것이다. 장병철 감독은 “보장된 자리는 없다. 잘하는 선수가 주전”이라고 했다.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미디어가이드북에 있던 선수 가운데 12명이 팀을 떠났다. 사실상의 재창단이었다. 전광인의 FA 보상선수였던 세터 노재욱은 시즌 도중 우리카드로 보냈다. 서재덕은 공익근무 요원이 됐다. 강민웅은 3명의 후배 세터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지도자로 변신한다. 순천 KOVO컵에서 은퇴경기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FA 시장에서 소득은 많지 않았다. 당시 목표는 미들블로커 보강이었다. 해결책으로 비시즌 동안 이승현과 권준형을 주고 김강녕, 정준혁을 받았다. 최석기가 나간 자리를 보강하려고 데려온 정준혁은 감독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고졸 2년차 이태호도 OPP와 MB자리에서 두루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는 조근호가 앞서 보이지만 박태환도 그 자리를 탐낸다.
지난 시즌 4승32패를 기록한 팀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 없다. 멤버구성과 선수들이 그동안 쌓아온 기록들을 봤을 때 상위권에 올라가기에는 힘이 부친다. 특히 중앙이 다른 팀에 비교하면 이름값과 기대치가 떨어진다. 다만 선수들의 달라진 정신과 새 감독의 의지가 조화를 이룬다면 예상외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의왕|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