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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의 작은 마을 바우스카스Bauskas. 하지만 이곳은 룬달레Rundale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룬달레는 바우스카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의 이름으로 바우스카스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라트비아를 여행한다면, 아니 발트를 여행한다고 해도 꼭 와봐야 하는 모든 색들을 담고 있는 색채의 궁전.
리가에서 두 시간 그리고 바우스카스 터미널에서 다시 12킬로미터. 작은 버스는 한적한 길에 나를 내려놓는다. 보일듯 말듯 일어나는 시골의 흙먼지 길과 사과나무 밭을 지나 성으로 향한다. 이토록 한적한 곳에 화려하고 거대한 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믿기지 않는다. 마침 입구의 커다란 검둥이 한 마리가 잔디에 내린 아침 이슬을 밟으며 나를 안내한다. 아침 열 시,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인 탓에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입장할 수 있었다.
룬달레성은 1730년에 이탈리아 건축가인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당시 공작의 여름궁전으로 건축했다. 바톨로메오는 그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전을 건축한 바 있어 그것에 필적하는 여름궁전을 이곳에 만든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베르사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화려한 ‘황금의 방’으로 안내된다. 실제로 룬달레는 바톨로메오가 오스트리아의 쉔브룬 궁전과 베르사유를 모델로 삼아 건축했다고 한다. 때마침 유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던 오전의 햇빛은 사실적으로 표현된 천정화와 함께 이 황금의 공간에 가득 찬다. 핑크와 황금 그리고 샹들리에에 떨어지던 빛의 적절한 조화, 어쩐지 얼핏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사람들의 구두소리보다는 짧은 감탄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곳. 붉은 양탄자가 깔린 회랑을 지나면 당시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커다란 홀이 나온다. ‘하얀 방’이라는 이름의 이 방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모든 벽면과 장식을 하얀색으로 꾸몄다고 한다. 테마별로 구성된 각 방마다 강한 원색과 파스텔 톤으로 꾸며져 성을 도는 내내 색채의 화려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시 궁전의 안주인이 중국에 관심이 많아 중국 도자기 전시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지하로 가면 당시 발굴되었던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성이라고는 하지만 박물관으로도 손색이 없는 룬달레. 당시의 주인이었던 대공작은 부인을 세 명이나 두었지만 아들을 얻지 못해 결국 한동안은 주인 없는 저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운의 성이다.
밖으로 나오면 룬달레 정원으로 이어진다. 한 이탈리아 커플은 정원에서 손을 잡고 산책하다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검둥이 녀석은 내가 떠나는 사실을 아는지 불러도 오지 않고 멀찍이 앉아 딴청만 피운다. 바우스카스로 돌아가는 버스는 무척 작은 마을버스였다. 투박한 손의 운전기사가 손에 쥐어주던 잔돈, 삐걱거리며 닫히던 문, 얼룩이 묻은 시트 그리고 버스 천장의 낡은 손잡이. 사람 좋은 인상의 기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시골길을 달렸고 사람들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동양에서 온 낯선 이에게 적당한 시선을 던졌다. 좀 더 덜컹거렸다면 좋았을 그 짧은 길에서 얻고 느끼는 감정의 작은 소품들. 언젠가 발트의 어느 곳에서 다시 너에게 닿기를...
샤울레이, 리투아니아
이문열의 소설 중에 ‘리투아니아 여인’이라는 소설이 있다. 작가는 한 여인에게서 받은 한 장의 강렬한 사진 때문에 리투아니아를 기억하고 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 속 그 여인은 몇 해 전 한국 문화계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던 박칼린이다. 그 사진 속의 장면을 보러 가는 길. 수많은 십자가가 언덕을 뒤덮고 있는 ‘십자가의 언덕’이 있는 곳, 샤울레이.
빌뉴스에서 라트비아에 못 미쳐 있는 샤울레이Šiauliai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다시 언덕이 있는 도만타이Domantai까지는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하므로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한다. 나는 한적한 일요일 오전을 택했고 도만타이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버스는 몇 명의 사람을 길 가에 내려놓고 다시 떠났다. 이곳에서 내린 사람은 모두 십자가의 언덕으로 향한다. 주변에 아무런 민가나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커다란 나무가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는 길을 따라 사람들이 향하는 곳. 30분 정도를 걷다보면 벌판 끝에 십자가의 언덕이 드러난다.
언제부터 이 십자가의 언덕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오래전부터 십자가가 세워지고 있었지만 소련 점령기 시절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과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 아무런 소식 없이 실종된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하나 둘씩 이곳에 십자가를 심으면서 이 공간은 급속도로 십자가로 뒤덮여졌다. 이후 소련이 군대를 동원해 몇 번이나 불도저로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십자가는 세워졌다. 크고 작은 십자가가 40만 개가 넘는다는 곳. 그냥 서서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이 드는 곳. 눈을 감고 서있어도 숙연함이 느껴지는 곳. 거대한 간절함과 바람이 십자가처럼 교차하는 곳.
언덕은 그다지 크지도 높지도 않다. 하지만 십자가로 빼곡하게 차있는 언덕은 그 어떤 산 보다 더 커 보인다. 딸아이를 등에 태운 아빠, 어린 아들과 손을 꼭 잡은 엄마 또 자식과 부모와 함께 온 여러 가족들. 모두 이 성스러운 언덕에서 침묵을 지키며 작은 십자가를 심는다. 누군가의 구구한 염원이 담긴 십자가는 이미 가로질러진 단순한 나무토막이 아니며 십자가를 심는 것은 이들이 이곳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한 한국인이 걸어 놓은 십자가에는 오로지 세례명만이 적혀있지만 그 이름 속에 들어있을 간절함이 눈물겹다. 나는 언덕 끄트머리의 공간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기다려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오로지 단 하나의 기도를 드린다.
주여, 사랑하게 해 주소서.
TIP
1) 언덕으로 가기 전 왼편 건물에서 다양한 십자가를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서 십자가를 미리 산다면 동선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2) 샤울레이는 당일치기가 좋다. 버스터미널에 짐 보관소가 있으므로 짐을 맡기고 편안하게 돌아볼 것을 추천하다.
3) 십자가의 언덕 근처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다. 터미널 옆 대형 쇼핑몰에 Chili picas가 있는데 이 브랜드는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훌륭한 인테리어에 비해 값이 저렴한 편으로 음식 맛도 썩 괜찮다.
4) 리가로 올라갈 경우 편수가 많지 않아 반드시 버스티켓을 미리 예매해야 한다. 한 가지 팁!! 터미널 한 편에 리가로 가는 사설버스들이 있다. 시설은 좀 낙후되었지만 다시 빌뉴스로 내려갈 필요는 없으므로 무조건 이 버스라도 타야한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발트 3국 공통 팁>
환전
3국 공히 유로를 쓴다. 현지 환전율은 그다지 좋지 않다. 많은 숙소와 식당에서 카드를 받으므로 카드와 현금을 적절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언어
발트 3국의 언어는 모두 다르며 인접국이지만 특히 에스토니아의 언어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다르다. 영어가 잘 통하지만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면 라트비아에서는 좀 더 편하게 여행 할 수 있다.
전압
한국과 같다. 220v 동일.
발트 내의 국경 넘기
버스로 발트 간 국경을 넘을 때는 특별한 검사를 하지 않는다. 버스 탑승 전 여권 검사로 대신하며 개인차량 이동시에는 불시에 검문이 있을 수 있다.
버스 이동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나라는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나라 자체가 크지 않아 충분히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리가까지는 다섯 시간, 다시 빌뉴스까지는 대략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 버스티켓은 각 나라의 버스터미널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국가 간의 이동 티켓은 일반 창구에서 팔지 않고 룩스나 에코라인 같은 개인 버스 회사의 별도 부스에서 판매한다. 버스표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과 현장 구매 모두 가능하며 버스 탑승 전 여권 검사를 하기 때문에 여권 지참은 필수. 버스 내부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다.
에코라인 http://ecolines.net/en/
룩스 http://www.luxexpress.eu/en
기차 이동
거의 전 유럽을 커버하는 유레일패스가 불행하게도 발트 국가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기차로 입국이 가능하나, 라트비아의 경우 벨로루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벨로루시 비자가 따로 필요하다. 기차로의 입국은 비 추천.
선박 이동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오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편수도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돌아가는 배편은 생필품과 맥주 등을 사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 나라와 가까운 에스토니아의 경우는 북유럽의 슈퍼마켓이라고도 불린다.
치안
표현을 잘 하는 민족들은 아니지만 러시아나 폴란드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라 치안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야간 시간의 도심 활보는 주의할 것.
인터넷
발트국가의 인터넷 사정은 꽤 좋다. 전 세계적인 인터넷 전화로 유명한 스카이프를 처음 발명한 곳도 에스토니아이다. 숙소와 레스토랑, 터미널 등지에서 쉽게 와이파이에 연결되며 국가 간의 버스 안에서도 와이파이가 지원된다. 버스 좌석에는 개인 모니터도 구비되어 있다.
비자
발트 3국 모두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90일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