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호반 케이블카 비봉산 정상 정류장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숨 막히는 절경. 마치 남해안의 다도해를 연상시키는 오밀조밀한 뭍과 호수의 어우러짐이 멋지다 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그냥 ‘경치가 좋다’고 해도 되겠지만 ‘산천경개가 수려하다’는 이 표현에는 좀 다른 ‘맛’이 있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자연의 모습에 배어있는 다양한 감정과 느낌, 요즘 표현으로 하면 ‘바이브’까지 담아내는 것 같은 고풍스러운 정취가 있다.
충청권에 나란히 이웃한 단양과 제천은 ‘산천경개가 수려하다’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고장이다. 나고 들어간 굴곡이 선명한 산과 계곡, 그 사이를 유유자적 흐르는 강, 그리고 너른 호수를 품에 안고 있는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여름 여행지로 가성비와 가심비를 두루 갖춘 단양과 제천을 함께 돌아보았다. 두 번째 방문지는 제천이다.
제천은 건강한 삶을 위한 한방 웰니스 도시를 표방하는 곳이다. 이곳은 지역의 70%가 산지인데다 청풍호 등의 호수도 지역 면적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자연 다른 곳보다 농토가 적어 황기, 당귀, 황정 등의 약초를 예전부터 많이 재배했다. 제천의 약초는 육질이 단단해 저장을 오래 할 수 있고, 향과 약효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혜의 환경과 지역 특산물을 결합해 제천은 요즘 힐링과 웰리스를 추구하는 관광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비봉산 정류장 전망대. 빼어난 전망을 자랑해 늘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제천의 명소이다 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청풍호는 1985년에 준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제천에선 청풍호로 부르지만, 충주에서는 충주호라고 부른다. ‘내륙의 바다’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담수량이 엄청나다. 면적 67.5㎢에 평균 수심 97.5m, 길이 464m이고, 저수량은 27억5000톤이다. 이중 제천시에 속한 담수 면적이 대략 48㎢에 달한다.
청풍호 주변에는 비봉산과 청풍면의 진산인 인지산, 남한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수산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 동산, 대덕산, 부산, 관봉 등 매력 넘친 산들이 청풍호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제천 청풍호의 주위 경관.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새로운 대형 유람선을 건조해 빠르면 7월 중 운항을 재개할 예정이다. 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우선,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운행한다. 케이블카 정상 정류장이 있는 해발 531m의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청풍호 중앙에 자리해 케이블카 정류장의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이 호수로 둘러싸여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오른 기분이다.
청풍호 유람선은 현재 청풍랜드 선착장을 출발해 수경분수, 케이블카, 청풍문화재단지, 폭포바위, 삼형제바위, 월악산을 돌아 볼 수 있는 청풍호 쾌속선만 이용할 수 있다. 운항 시간은 15분 정도이다. 청풍랜드를 출발해 단양팔경 중 옥순봉과 구담봉을 경유하는 왕복 코스의 청풍호 유람선 코스는 새로운 대형 유람선을 건조 중이다. 빠르면 7월 중 운행할 예정이다.
고즈넉하면서 경건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제천 배론성지.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 관련 유적이 있는 주요 성지이지만 정원과 잔디밭을 잘 조성해 종교와 상관없이 차분하게 거닐며 여행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다. 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배론 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다. 신유박해(1801년) 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서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배론이란 지명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 모양을 닮은 것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주론(舟論)으로 불리다가 이후 배론(排論)으로 바뀌었다.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이곳 토굴 속에 숨어 집필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 요셉 신학교도 있었다. 김대건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도 여기 있다.
현재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는 토굴과 옛 모습대로 재현한 신학교 등이 있으며, 정원과 잔디밭도 잘 조성해 종교와 상관없이 차분하게 산책하며 돌아보기 좋다.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한옥 누각 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피정의 집, 조각공원, 문화영성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숲속으로 난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묵상하는 길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느리게, 수산슬로시티
제천은 2012년 10월 수산면과 박달재를 중심으로 국제슬로시티연맹의 공식 인증을 받아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현재 지역 주민들이 고유의 자원을 보존하고 가꾸는 슬로시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요리 칼럼니스트 카를로스 페트리니가 주창한 개념으로 자연에서 지역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며 지역 고유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지향한다.
제천 슬로시티의 거점 지역인 수산면은 청풍호와 금수산, 가은산, 옥순봉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있고, 각종 민물 어류와 약초, 잡곡 등을 활용한 슬로푸드를 지니고 있다. 마을 태평성대와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400년 역사의 오티별신제와 솟대 등 전통문화도 있다.
각종 약초와 나물, 버섯, 죽순 등 지역서 난 자연 식재료를 적극 활용한 제천의 약선요리. 제천 시내 곳곳에서 약선요리 전문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천|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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