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내외 백악관 방문 당시 모습. 미쉘 오바마가 한국계 미국 디자이너 두리 정(Doo.ri)의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사진 제공ㅣDoo.ri
미국 동부를 강타한 태풍 ‘샌디’의 충격으로 여느 때의 선거 열풍이 조금은 식은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존 맥케인 후보를 앞세워 참패에 가까운 결과를 보였던 공화당이 이번에는 어떤 공세를 펼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막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을 부여받은 4년 전부터 올해의 대선을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온 공화당의 대항마, 전 메사추세츠 주 지사 출신의 미트 롬니 후보는 디트로이트 명문가 출신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전형적인 미국 백인 상류층이었다. 그에게 조금 특이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개신교도가 아닌 몰몬교도였다는 것. 그의 종교 때문에 롬니 후보를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미국의 엘리트 지배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롬니 후보야 말로 현재의 오마바 대통령과 상반되는 미국 백인 상류 사회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다.
이점은 비단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 간의 차이점만이 아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쉘 오바마와 새로이 대권을 노렸던 공화당 후보의 부인인 앤 롬니와의 차이이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의 새로운 퍼스트 레이디 후보들도 남편들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고, 그녀들의 장외 경쟁이 예상외로 뜨거웠다는 소식은 벌써 많은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그 장외경쟁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바로, ‘전업주부’ 소동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미쉘 오바마는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후, 백악관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기도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이전 남편보다 더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커리어우먼 출신인 반면, 앤 롬니는 결혼 후 단 한번도 바깥일을 해 본적이 없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선거전이 본격화 되었을 때, 민주당의 한 전략가는 앤 롬니 같은 한번도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전업주부가 무슨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알겠냐며 그녀에게 공격을 가했고, 그것은 결국 미국의 수많은 전업주부들을 폄하한 발언이 아니냐는 의견이 거세지면서, 전업주부 역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직업의 하나라며 여론의 역공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오바마 진영의 민주당은 서둘러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 여파로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던 공화당의 영부인 후보 앤 롬니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크게 증폭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선거일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후보들 만큼이나 후보 부인들에게도 더욱 시선이 집중됐고, 미쉘 오바마 뿐만이라 아니라 전업주부로만 살아 왔던 앤 롬니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도 말들이 부쩍 늘어나게 되었다.
앤 롬니 공화당 전당대회 모습. 사진 출처=ABC 화면 캡처
미쉘 오바마에게 있어 패션이란 이미 자신을 멋스럽게 표현하는 것 이상의 또 하나의 전략 같은 것이기도 하기에, 그간 패션을 통해 우아함과 소박함을 적절히 안배하며 꾸준히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 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반면 패션으로 전략을 꾀할 만큼은 아직 경험이 미숙했던 앤 롬니는 억만장자 사업가 부인 출신답게 평소대로 뉴욕의 매디슨가의 유명 부티크들로부터 공수되어 온 의상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다섯 자식의 어머니이자 무려 18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라는 행복한 주부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그녀였기에, 화려함보다는 자신의 이미지에 잘 어우러지는 우아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의상들을 선택해 사람들 앞에 나섰지만, 대중들은 그 드레스가 얼마나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가에 감동하기 보다는 한 벌에 2천 불(한화 220만원선)을 웃도는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의 드레스를 입고 대중 앞에 서는 그녀의 정치가 부인으로의 센스를 의심하는 것에 더욱 열을 올렸다.
어쩌면 미쉘 오바마라는 패션 전략가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기회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앤 롬니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러플이 진 레드 드레스를 피로한 것에 대해 보수적인 공화당의 이미지에 딱 맞아 떨어진다라는 의견과 상황판단이 현저히 떨어지는 패션의 선택이라는 미디어들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 미쉘 오바마는 드레스이지만 활동적인 핏에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3백 불대(한화 31만원선)의 의상을 입고 민주당의 전당대회 석상에 나타났다.
미쉘 오바마 민주당 전당대회 모습. 사진 출처ㅣfox 화면 캡처
이제는 미쉘 오바마의 대표적인 패션 전략이 되었다고 과언이 아닌,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생소한 미국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해 그 디자이너에게 주목도를 높여주면서 동시에 미국 디자이너를 홍보해서 미국 패션계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경제적인 측면까지 염주에 둔 전략이 이번에도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트레이시 리스(Tracy Reese)라는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한 이름의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고,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 중의 하나인 제이 크루(J.Crew)의 구두를 신고 연단에 올랐다. 그날의 미쉘 오바마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많은 패션 전문가와 대중들은 그녀의 남다른 ‘센스’와 시의 적절한 ‘선택’에 환호를 보냈고, 뉴욕 타임즈의 스타일 섹션을 비롯해, 많은 패션 전문 미디어들은 ‘300불의 승리’, ‘2000불보다 아름다운 300불’ 등 다소 가격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원색적인 기사들을 쏟아 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정치가의 부인으로서의 적절한 선택에 대한 환호였던 것이었고, 영부인 후보들의 장외경쟁 중, 패션에 있어서 만큼은 미쉘 오바마의 완승이 결정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미쉘 오바마의 전략들도 큰 힘이 되어 버락 오바마 후보는 다시 한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스타일에 있어서 재클린 오나시스 이후, 가장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미쉘 오바마의 아성에 도전했던 것이 앤 롬니에게는 꽤 힘겨운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앤 롬니 역시 분명 그녀만의 스타일과 멋이 있는 여성임이 틀림없기에 결코 잃은 것만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는 것이 패션 미디어의 최종 중평이다.
왕의 통치가 아닌 대통령 통치국가인 미국이기에,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가 난무하는 할리우드와 왕자와 공주가 즐비한 디즈니판의 동화의 원류인 미국이기에, 미국 국민들은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통치자들의 부인과 딸의 이미지 속에서 공주의 형상(Princess Figure)을 찾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터라 성안에 갇혀서 예쁘고 우아하기만 공주보다는 직접 전쟁터에 창과 방패를 들고 나서는 역동적인 공주에게 미국 국민들은 더욱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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